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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4월
평점 :
절판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 바로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현대문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었었는데 그 수업내용중에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고 토론하고 독후감을 쓰는 부분이 있었다.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지만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깊은 감명과 인상을 받게된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서간체의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주인공이 자신의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으로 소설이 구성되는데 이러한 서간체의 소설은 예전에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와 최서해의 <탈출기>이후 처음이었으며 그러한 낯선 문체가 상당히 신선하고 참신한 느낌을 주었으며 더더욱 재미를 배가시켜준 요소였던것같다.
주인공은 시골출신의 처녀인데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고 시골로 내려와 고민하면서 그 유부남에게 보내는 편지가 소설의 내용이 된다. 그다지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고 독자를 자연스럽게 글속으로 끌어들이는 작가의 글솜씨도 훌륭했고 잔잔하면서도 재미있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글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 구성력이나 스토리전개도 참 일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의 편지속 얘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어린시절의 새엄마에 대한 기억들과 과거의 추억에 얽매여 현실의 사랑에 고통받고 고민하는 주인공의 고뇌에 찬 목소리가 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심경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매료되었던건 주인공의 새엄마가 해주는 요리에 대한 묘사부분이었다. 몽올몽올 계란을 풀어서 만든 계란지단하며 색색깔로 멋을 내고 한껏 꾸민 음식들에 대한 묘사부분이 너무나 맛깔스럽게 읽혀졌으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들에 대한 그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미각이 한데 어우러진 공감각적인 이미지들이 전신을 휩싸며 침을 꼴깍 넘어가게 만들었는데 정말 글을 읽으며 그렇게 입맛을 다셔보기는, 그리고 그러한 공감각적인 행복감을 느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지 않나싶다.
굳이 이 소설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어차피 읽어보신 분들은 내용을 다 알고있을테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괜히 김빼는 소리가 될테니까. 아무튼 대학신입생시절 읽었던 이 책은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해준 소설이었고 무엇보다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추천하고픈 책이다. 제목이 왜 <풍금이 있던 자리>인지 그리고 과연 풍금이 뭘 의미하는지는 이 책을 읽어보고나서 각자 생각해보도록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