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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일상'이라 이를 때 '常'의 구성요소일 수 없고 그 범주에 속하여서는 아니 된다 여기는, 의식 곧 당위를 앞세운 인위가 허위를 낳음은 필연.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여기는 것들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늘상 배반. 폭력은 實在. 눈 감아도 감은 눈꺼풀 뒤로 세계는, 지.리.멸.렬은 계속, 거기 존재. 무시/배제로 극복될 수 없고 되지않는 실존. 성급히 不條理라 매듭짓기보다 부조화를 인지하는 제 감각을 외면 않고 직시하길 멈추지 않는 者. 저마다 자기 안에서 이 者를 호명, 밖으로 낼 때에야 場은 겨우 구성될 것. 公論은 이 場에서 비롯될 것. 그러지 않고는 죄다 空論에 머물 뿐.
갑:을, 소비자:(서비스)제공자, 자본가:노동자 그리고 젠더. 구별짓는 경계의 바탕, 동일한 하부구조/물적토대. 두 얼굴을 지니고 있을 뿐. 편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 뒤에 숨어 가면을 바꾸어 쓰길 주저않는 영악한 속물을 고백함이 차라리 솔직한 게 아닐지. 헌데 이 가면을 벗지않고는 가해와 피해를 거듭하는 우로보로스의 서사에 균열을 내는 자체가 불가능. 보잘것없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잘것없는 쟁투는 그치지 않고 아니 점점 격렬해질 것.
客,일 수가 있는가? 헌데도 마치 바깥에서 바라보듯, 그래 전과 다름없는 곧 如前이라면. 허위 위에 무얼 세울 수 있을지..
객관의 그늘 아래로 숨어들어 공모의 혐의를 지워본들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으니..
용서도 사랑처럼 타자와 함께일 떄에만 겨우 이루는 것이라면.. 사이(間)를 메우는 속에서 가까스로 사람(人)이 모습을 드러냄이니. 성찰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극에 달하는 자기 혐오를, 타자를 향하는 염증으로 변모시켜 쏟아붓기를 우선 그치는 것. 부족한 대로 克己를 통해 부활[復]할 것이 무엇이든 이를 기대하는 편이,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