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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음악은 얇은 합판으로 덮인 벽들에 완전하게 반향되었다. (…) 음악뿐이었다. 15번 방의 창 없는 구조는 성능 좋은 소리 상자처럼 음악을 담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침대, 그 위에 깔린 변색된 담요, d의 백팩과 점퍼를 걸쳐둔 의자, 근육통이 있는 몸. 그 방에 있는 모든 것이 음악에 공명하여 파장을 발산하고 있었고 그 파장들은 모든 벽에 부딪혀 반향이 되었다. 그게 모두 음악 속에서 음악이 되었다. (…) d는 아무렇게나 책을 펼쳤다가 힘의 범람, 이라는 구절을 보고 반복해서 그것을 읽었다. 범람. 힘의. 힘의 범람. 누군가 다시 벽을 때렸고 이번엔 다른 쪽 방이었다.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오른쪽 방과 왼쪽 방에서. d는 옆방의 거주자들을 생각하고 미소지었다. 옆방을, 15번과 똑같은 16번과 17번의 구조를, 자신의 것과 다를 바 없거나 더 더러운 침구와 벽, 합판과 시트지로 구성된 싸구려 가구와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허름한 생필품들을 생각했다. 나는 그 사물들의 일시적 소유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것보다 혐오스러운 것, 좀 더 견딜 수 없는 것, 말하자면 자신의 이웃을 향해, 그토록 열심으로 벽을 두들길 기회를 주고 있다. 재미있느냐고? 재미있다. 재미가 있다. d는 책장을 한 장 더 넘기며 생각했다. 매트리스를 짓누를 때 말고는 존재감도 무게도 없어 무해한 그들, 내 이웃. 유령적이고도 관념적인 그 존재들은 드디어 물리적 존재가 되었다. 사악한 이웃의 벽을 두들기는 인간으로.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_황정은, 『웃는 남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