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성경 읽기
김동문 글.사진 / 포이에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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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비린내가 납니다.


예수는 부활을 경험하신 자신을 보고도 비린내 나는 고기 잡으러 돌아가 버린 제자들을 만나러 갈릴리 새벽녁에 제자들을 찾아 간다. 밤이 맞도록 아무 것도 잡지 못한다. 여명이 밝아오는 수간에도 제자들은 허탈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해야했다. 그 때 누군가 다가와 소리친다. 

"고기가 있소?"

"아뇨. 없습니다."

"그럼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내려 보시오!"

"그럴까요?"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21:6)


예수는 떡과 고기를 준비해 놓고 제자들을 불렀다. 아침을 같이 먹자고. 비린내 풀풀 나는 이른 아침은 예수와 제자들은 함께 갈릴리 호수가에 앉았다. 


성경에서 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그동안 왜 물고기에서 나오는 비린내를 맡지 못했을까? 텍스트에 천착하라는 주해가들의 이야기는 귀전에 흘리고 정제된 성경 만을 읽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똥 냄새도 맡지 못했고, 우슬초의 신맛을 맛 보지 못했다. 에서가 입고 털 옷의 촉감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고도 우리는 성경을 읽었다고 자부했다. 밋밋하고 재미 없는 성경 읽기를 때문에 성경의 맛을 잃어 버렸다. 유대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에 꿀을 발라 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우린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생생한 성경 읽기를 회복 하도록 돕는다. 삶의 정황 속에서 말씀으로 살아가셨던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성경을 삶으로 읽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념화되고 교리에 종속된 성경 읽기가 아닌 민낯의 성경을 체험해야 한다. 


김동문선교사는 한국외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했고, 총신 신학대학원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구약신학을 배웠다. 이후 이집트와 요르단 등 아랍과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이 아는 중동과 중동 현장에서 보고 체험한 중동이 너무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생활을 성경 읽기와 접목한다. 성경은 단순히 문자로만 읽어서는 안 된고 삶의 정황 속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때 그 곳에서 일어났던 사람들의 소리, 냄새, 촉감 등을 상상하며 읽어야 제대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 





"음식 냄새 못지 않게 중요한 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르는 기름, 즉 '향유'입니다. 그 시절 향수는 아주 귀했는데, 이는 천연 식물성 재료를 이용하여 향유를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등불을 켤 때 사용하던 연료로서의 기름 냄새도 일상에서 맡을 수 있는 대표적인 냄새이지요. .. 질이 좋지 않는 기름을 사용하여 불을 밝힐 때는 그을음과 격한 냄새가 같이 납니다." 61쪽



아직 등잔을 밝힐 때 기억이 난다. 기름에 따라 냄새가 달랐고, 빛의 색도 달랐다. 너무 어려 무슨 기름을 사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할머니는 그 등불 아래서 항상 바느질을 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하여 중단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등잔에서 빛만 생각하고,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하여튼 이 책은 우리가 간과하고 놓치기 쉬운 성경 속 정황들을 찾도로 도와 준다. 성경을 연구하는 목회자나 신학생, 교사들과 성경을 재미있게 읽고 픈 교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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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산다는 것
크리스틴 폴 지음, 권영주.박지은 옮김 / 죠이선교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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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경작되는 것이다. 


 

위로는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한 말이다. 이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문장이 한 두 곳이 아니라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도무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었다. 독서는 이런 맛에 하는 것이다. 울림이 있는 문장은 평범함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김훈도 지난달(201410)에 있었던 나는 왜 쓰는가?’의 강연에서 중간 중간에 강한 문장을 갖다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거기에 의지해서 십여 줄이 나간다. 이러한 문장은 목마른 사막 속에서 만나는 오아시스다. 목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공동체는 없을까? 함께 비를 맞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뉴밀레니엄 시대가 되면서 한국교회는 처절할 만큼 곤두박질치고 있다. 잘나가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성추행과 폭행, 공금횡령 등의 온갖 비리에 얽히면서 영적 세계가 탁해져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교인들은 목자 잃은 양 같이 방황하고 있으며, 목자들은 자기 배만 불리고 있다. 안락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대교회 교인들에게 더 이상 헌신과 충성은 눈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지금 피상적 만남과 관계로 인해 아름다운 공동체가 요구되고 있다. 가슴 설레게 하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상처 받고 다른 교회를 떠돌아다니는 교인들을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영적 호흡이 끊어져 숨이 막혀 죽어가는 공동체는 더 이상 변화의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완전한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절대적 평가를 믿고 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거나 찾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가? 현대교회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고, 해야 할 질문들이다. 우리의 고민들을 조금 덜어줄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크리스틴 폴의 <공동체로 산다는 것>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공동체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면서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네 가지의 원리를 소개한다. 하나는 감사’, 두 번째는 약속’, 세 번째는 진실’, 마지막 네 번째는 손 대접이다. 네 축을 중심으로 공동체는 움직여진다.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나에게는 약속 지키기와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중에 어기는 약속들은 서로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친밀성을 파괴한다. 예를 들어보자. 내일 오전 열시에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약속 어김은 자신에 대한 배신이며, 상대방에 대한 무례이다. 하나님은 언약(言約,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에 근거하여 순종하는 이들이다. 공동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은 거대한 위협이 아니라 사소한 약속을 깨뜨리는 무례함이다.

 


약속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보자. 그 공동체에 매주 토요일 저녁 6시에 모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몇 몇의 불성실한 일원들 때문에 전체 공동체가 맥이 빠지고 낙담하게 된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다. 공동체는 나만의 유일함으로 영위되지 않는다. 서로의 희생과 양보, 헌신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친밀함은 높아지는 법이다. 초대교회가 강력한 힘을 발휘 했던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다. 내가 아닌 서로를 위해 존재했고, 함께 했기 때문이다.


 

 

십자가 없이 부활 없고, 고난 없이 영광 없다. 공동체도 마찬 가지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의 대가가 필요하며,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헌신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아름다운 정원은 정원사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듯 아름다운 공동체 역시 사람들의 헌신과 수고가 필요하다. 갈 길이 멀다. 몇 문장으로 공동체를 논하기는 버겁다. 그러나 방향은 잡은 것 같다. 공동체는 경작(耕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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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트란 무엇인가?

 

디베이트, 영어로는 Debate이고, 어원을 보면 '물리적인 싸움을 뜻하는 bate(to beat)에서 생겨나 말로 하는 싸움이란 뜻으로 변형된 단어다. 디베이트는 일반 토론이나 논쟁과는 사뭇 다르다. 케빈 리는 그의 책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Debate>에서 이렇게 디베이트를 이렇게 소개한다. 요약 정리해 보면 이렇다.

 

디베이트는 형식적인 제약이 큰 것이 가장 특징이다. 첫째 디베이트는 찬반이 확실한 주제를 선택해서 토론한다. 그러다보니, 참가 팀은 찬성 팀과 반대 팀, 두 팀이 된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는 갈비탕과 된장찌개 등 다양한 답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디베이트는 답이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주제로 삼을 수 있고, 아침 9시 등교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등으로 찬반이 분명하게 갈리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둘째, 디베이트는 발언 시간, 발언 순서가 미리 정해져 있다. 찬성 쪽에서 2분을 이야기하면 반대쪽에서도 2분을 이야기 한다. 준비할 시간도 서로 1분씩 줄 수 있다. 시간을 어기면 감점을 받는다.”



 











케빈 리가 예를 든 두체적인 진행 과정이다.

 

입안 4

입안 4

교차질의 3

반박 4

반박 4

교차질의 3

요약 2

요약 2

전원 교차질의 3

마지막 초점 2

마지막 초점 2

준비시간 팀당 2

 

디베이트는 단순한 생각을 나누는 정보교환이나, 다른 사람의 여러 생각을 종합하는 것이 아니다. 찬반이 분명하게 나뉘는 토론 주제를 가지고 편을 나누어 논리적 근거를 통해 정해진 시간 안에 질문하고, 반박하며, 마지막으로 합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토론이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디베이트는 합의는 약하고 논리적인 사과 합리적 논증의 과정을 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일반 토론은 상대편이 발표할 때 반대편은 부주의하게 듣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디베이트는 집중하지 않으면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없고, 2.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발표하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논리를 벗어나 싸움에서 지게 된다. 결국 디베이트는 학습이며, 과정이고, 훈련이다.


디베이트에 관련된 여러 권이 책이 출간되어 있다. 토론 문화가 현저히 낮은 우리나라에서 디베이트 훈련은 상당한 모험과 능력을 필요로 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탁월한 변증자나 철학자, 또는 교육가로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한 방법이다.


초보자를 위한 <디베이트 첫걸음>이 있고, 디베이트를 경험한 이들의 경험담이 담긴 <신나는 디베이트>가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디베이트를 구체적으로 가이드한 <디베이트 가이드>도 좋고, 한 권의 책을 끝장내고 싶은 분들이라면 <독서디베이트>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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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화 2015-03-2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디베이트가 뭔지모르겠어요..ㅡ,ㅡ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날마다 글을 올리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 어불성설한 말만 많아지면 실이 없으니 한 번 찾고 다시 오지 않으니 이것 또한 자제해야한다. 그러다보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제대로된 글도, 가벼운 글도 올라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지금 읽고 있는 책을 하나 올린다.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선어보>다. 거문도에 사는 저자는 바다에서 건져올린 어류들을 골라 밥상 위에 올릴만한 것으로 추렸다. 이 책은 원래 201년에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으로 출간된 것을 4년 흘러 다시 개정판으로 낸 것이다. 개정판을 내면서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도 함께 출간했다.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당하여 붓을 꺽지 않고 그곳에서 나는 어류를 정리한 것이다. 


































숭어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의심이 많고 민첩할뿐 아니라 헤험을 잘치고 뛰기도 잘한다. 그물 속에 들었다 해도 곧잘 뛰쳐 나간다. 그물이 조여오면 가장자리로 나와 흙틍 속에 엎드린 채 동정을 살핀다. 맛이 좋고 깊어서 생선 중에 첫째로 꼽힌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채워진 밥상 위 자선어보 꽤 쓸만하다. 아내에게 보여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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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에 책 팔기


난생처음 책을 팔았다. 그것도 알라딘 중서서점에. 책을 살 수는 있으나 팔 수는 없다는 지금까지의 금기를 깨고 과감하게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했다. 지난 주 팔려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했다. 어제는 작심하고 서면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책을 팔기 위해 주차장에 책을 주차하고 트렁크에서 팔려고 모아둔 책을 한 아름 안고 서점으로 향했다. 책을 팔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기표를 받으니 앞에 두 사람이 더 있다. 십여분을 기다리니 나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로웠다. 직원에 의하면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내가 들었던 말을 이렇다. 정확한지 모르겠다.


1. 밑줄이 5곳 이상 그어진 것은 안 된다.

2. 재고가 너무 많으면 안 된다. 

3. 증정도서이면 안된다. 

 등등


가지고 간 책 중에서 절반이 증정도서였다. 그리고 밑줄을 긋는 습관 때문에 팔지 못한 책도 여러권이다. 팔려면 일일이 다 밑줄을 지워야 했다. 다행히 볼펜이 아닌 연필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우는 수고를 하면 다음 기회에 팔 수 있을 것 같다. 파는 입장에서 싼 값에라도 팔고 싶지만 사는 입장에서 상품성을 고려해야하니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갖는 것이 좋은 듯 싶다. 




어쨋든 가지가 간 책 중에서 2/3는 가져오고 두 권을 팔 수 있었다. 정확하게 10,100원을 벌었다. 그리고 다시 사갈 책을 골랐다. 교육을 위해 아내가 고른 책과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샀다. 마일리지에 만원을 더 붙이니 8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캬~ 책도 읽고 돈 버는 재미도 있다. 이게 무슨 재수란 말인가?





곽재구 교수의 책은 무조건 사모은다. 지금까지 모은 책을 보면, <포구기행> <예술기행> 그리고 이번에 구입한 산문집인 <길귀신의 노래>다. 맨 처음 구입했던 <포구기행>을 읽으면서 곽재구라는 인물에대해 사방팔방으로 알아 보았다. 예전에 느낌표에서 "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될 만큼 인기를 누렸던 분이다. 난 그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문장 때문에 구입했다. 서정적인 문장들은 읽는 이의 영혼을 도둑질할만큼 흡입력이 좋다. 이번에 구입한 <길 귀신의 노래>는 자전적 산문입인 듯하다. 앞의 몇 장을 읽어보니 자신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근래에 들어와 여행 후기들이 뒤섞여 있다. 앞 선 두 권의 책에서 묶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쨋든 그의 문장은 깊이 돼새겨도 좋을 문장들이 즐비하다.

















박완서의 <나목>를 보는 순간 주저 없이 집어 들었다. <나목>은 박완서의 가장 최초의 소설이자 등단 소설이다. 박완서의 글은 문장력보다는 리얼리즘의 힘을 받고 싶어서이다. 삶의 생채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실존적 작가이다. 그래서 더 좋고, 돌아가신 분이라 그런지 애뜻한 마음까지 있다. 돈이 되는 대로 사 모을 작정이다.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는 통영에 살았다는 추억 때문에 저절로 손이 간 책이다. 저자인 김상현은 통영 토박이다. 통영에서 나고 통영에서 자랐다. 통영 신문인 '한산신문'의 기자이기도 하다. 취재차 떠난 섬들에서 만난 섬 부엌을 단디(확실하게, 꼼꼼하게) 촬영하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가을이 익어간다. 벌써 겨울 냄새도 난다. 가을이 더 가기 전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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