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매일성경이 나왔다.


온 가족이 함께 매일성경으로 큐티합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네요. 

재미난 사실 하나. 아이들과 함께 큐티하니 소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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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기만 해도 좋다!


믿지 않을 지 모르지만 난 책 사진만 봐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사진으로 담았다. 모두 네권이다. 두 권을 읽었고, 두 권을 읽을 계획이다. 특이한 책일 수록 좋고, 특별한 주제일수록 땡긴다. 특히 <월경독서>는 이상토 하다. 하여튼 읽고 싶다. 책은 나의 일부이며 전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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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28회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 한다


진즉에 사고 싶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머뭇거렸다. 십년이 넘기고서야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읽는 의무를 이미 마쳤다. 번역된 그의 책 중에서 두 권을 소장하고 있다. 한 권은 <독서의 역사>이고, 다른 한 권은 그의 첫 소설인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 <밤의 도서관><책 읽는 사람들>도 곧 주문할 생각이다

 













 

참 이상도하지. 그렇게 애타게 읽고 싶었던 책인데도 손에 들어오자 읽혀지지 않는다. 밀당에서 승리한 자의 교만일까. 종종 몇 군데를 읽기는 했지만 정식적으로 덤비지는 못했다. 무의하게 방치된 체로 일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우연히 독서에 관한 쓰기 시작하면서 망구엘의 책을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이다. 급하게.

 

미국의 심리학자인 제임스 힐먼은 어린 시절에 이야기를 직접 읽었거나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성장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줄거리로만 듣고 자란 사람들에 비해 예지력이 훨씬 뛰어나고 정신 발달 상태도 더 낫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기막힌 문장이다. 희비가 엇갈리는 문장이 아니던가. 그저 한 숨이 나온다. 나는 어릴 적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교과서 외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었고, 집에도 역시 책은 없었다. 누나가 한 명, 형이 두 명인데도 우리 집에 책은 없었다. 정말 없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인가. 현재의 나의 어리석음은 모두가 책을 읽어 주지도 사주지도 않는 부모 탓이다. ‘잘하면 내 탓, 못하면 조상 탓이란 속담도 있지 않는가.

 

이십대 후반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벌어 들어간 대학. 죽도록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들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을 쌓아 놓고 읽었다. 적게는 이틀에 한 권. 많게는 하루에 열권도 읽었다.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책은 10쪽 짜리도 있고, 그림만 잔뜩 있는 책도 있다. 그것도 한 권이다. 미친 듯이, 게걸스럽게, 괴물처럼 책을 씹어 먹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벌써 3년이 지났고,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수천 권을 읽었는데도 독서의 효력은 거의 없었다. 다만 어디선가 읽은 듯한 어렴풋한 기억과 잡다한 지식이 뇌에 부하를 일으켜 사고(思考)에 지장을 주었다. 그래도 좋았다. 읽는 다는 것은 곧 존재하는 거니까. 일찍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을 읽었더라면, 아니면 모티머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이라도 읽었더라면 좀더 많은 효과를 얻었을 터인데 아쉬움이 남는다.

 

애들러는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로 한정시킬 수 없다. 역사와 문화, 풍상까지 담고 있는 서사다. 독서와 책을 주제로 엮는 하나의 스토리.

 

나는 책을 읽는 데는 적어도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세부적인 사항을 속속들이 파악하려고 가슴을 죄며 사건과 인물들을 추적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어서기까지 이야기가 확대된다. ... 두 번째는 신중하게 탐험하는 방법이다. 복잡하게 뒤얽힌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텍스트를 샅샅이 조사하다 보면 단순히 단어의 발음에서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아니면 그 단어들이 결코 드러내지 않는 어떤 단서에서, 그것도 아니면 스토리 자체에 깊숙이 숨어 있다고 의심은 가지만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경이로워서 결코 직시 할 수 없었던 그 어떤 것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나는 아무래도 전자 인듯하다. 아직까지 신중하게 읽는 방법은 터득하지 못했다. 서두도 없이 막무가내로 시작하는 <독서의 역사>는 독서에 미친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책을 읽고 있는 사진 한 장으로도 흥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심으로 독서의 역사(歷史)’가 아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당돌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독서의 역사 연대기는 결코 정치적 역사의 연대기가 될 수 없다.”

 

또 독서의 역사는 문학사의 연대순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순서가 결코 연대기가 아니다. 순서도 없고, 어디서 읽어야 할지도 감 잡을 수 없다. 나는 이런 식의 책이 싫다. 목차만 봐도 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하고, 소제목만 봐도 내용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도무지 잡을 수 없다. 내가 책을 사놓고도 몇 장 읽다 방치시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독서의 역사는 장을 뛰어넘기도 하고 대충 훑거나 선별해 읽고, 또다시 읽기도 하면서 판에 박힌 순서를 따르길 거부한다.”

 

나도 거부했다. 앞을 읽다 중간으로 가고, 마지막에서 갑자기 아무 곳을 펴고 읽었다. 망구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서술방식도 아무렇게 나열했다. 저자가 들으면 불쾌하겠지만 80쪽에서 묵독의 효능과 즐거움을 언급한다.

 

하지만 소리 없는 독서를 통해 비로소 독서가는 책과 단어와 아무런 제약이 없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219쪽에서 시작하는 혼자만의 은밀한 독서에서 묵독이 다시 등장한다. 하여튼 이러한 분류 방식은 전체의 흐름 읽는 데 어려움을 주지만 퍼즐을 맞추는 재미를 깨닫는 순간 쾌감을 수백 배에 이른다. 스티프 피셔의 <읽기의 역사>가 첫 장에 집어 놓은 수메르 토판 이야기를 알베르토 망구엘은 중간에 삽입해 놓는다. 피셔가 증인으로서의 문자를 강조했다면, 망구엘은 독자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으로 판독한다. 독서가의 중요성은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문자 앞에 무지하다. 독서가가 낭독하는 순간 잠자던 문자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바알신의 죽음과 부활의 회귀와 같다.

 

이 시점에서 텍스트는 한 사람의 독서가가 읽어 줄 때까지 조용한 존재로 남는다. 기호를 읽을 줄 아는 눈이 서판에 새겨진 형상 앞에 서는 순간, 그 텍스트는 왕성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렇듯 모든 기록은 독서가의 아량에 크게 의존한다.”

 

역사는 쓰는 자와 읽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확실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러나 독자는 작가보다 위대하다. 읽어 주지 않으면 작기도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위대한 알베르토 망구엘도 내가 읽어 주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알베르토의 나에게 감사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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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25회 

내 심장이 뛴다 <그리스인 조르바>

 

작년 그러니까 201310<그리스인 조르바>를 샀다. 워낙 유명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가. 얼마 전에 읽은 <여행 작가 한 번 해볼까?>에서도 언급하고, <알파레이디 북토크>에서도, 출처가 선명하지 않지만 다른 책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는 귀가 따답게 읽으라고 잔소리 한다. 결국 작년 가을에 큰 맘 먹고 구입했다. 초반부는 ''라는 사람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지겨웠다. 무슨 설명이 그리 많은지. 이 따위 책은 읽으라고 권한단 말인가. 집어 치우라지. 고작 15쪽 읽고 보이지 않는 책장 한 쪽에 밀어 넣었다. 시간은 흘러 벚꽃이 만개한 사월의 어느 날 운명처럼 조르바를 발견했다.

 

순전히 하얀 표지 때문이다. 착시현상이 일어 날 것 같지 않는가. 벚꽃이 아닌가하는. 순전히 개인적인 기억의 데자뷰일 뿐이다. 나는 늘 하얀색을 벚꽃이라 우긴다. 아내는 분홍색도 아닌 분홍톤이란다. 색에 유난히 민감한 아내는 조금이라도 다르면 억지로라도 시켜서 교정해 준다. 가로수 아래 시에서 심어 놓은 꽃이 좋아. "와 온톤 빨간색이다" 아내가 떫은 표정으로 염장을 지른다. "분홍색!" "분홍색이나 빨간색이나. 거기서 거기지" "아니에요. 달라요!" 늘 이런 식이다. 단세포 생물인 나에게 분홍이고 뭐고 복잡할게 뭐람. 그냥 빨강이면 빨강이지. 하여튼 이런 식의 대화가 자주 오간다. 오늘도 어김 없이.

 

새하얀 옷을 입은 벚꽃 같은 책을 꺼내 지난 번에 표시해둔 뒷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검게 그려진 밑줄을 보니 기억이 되살아 났다. 6개월은 순식간이다. 밑줄친 덕분에 기억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또렷한 의식으로 읽어 나갔다. 기억은 하나도 다르지 않는데 느낌이 너무 다르다. 물컹물컹 씹혀지는 문장들이 마시멜로를 먹는 듯하다. 아니면 초장에 생선회를 찍어 먹는 느낌이기도 하고. 후각과 청각이 요동친다. 예를 들어 보자.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한다.”

 

코끝이 화끈거리지 않는가. 비오는 카페 안이라. 창문은 대부분 닫혀있어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런 곳에서 발효시킨 술 냄새라. 생각만 해도 역겹다. 시선 처리는 어떻고. 문장이 아닌 영화를 보는 듯한 절묘한 서술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

 

북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대가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보여주는 문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시선이 만나자 그 낯선 사람은 힘차게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탁자 사이를 지나 내 앞에 우뚝 섰다.”





만남! 그리고 묻는다.

 

여행하시오?”

 

그는 여행 중이었다. 그 와중에 조르바를 만났다. 기적은 언제나 운명이다. 그 항구에서 예전에 떠나보낸 친구를 회상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조르바에게서 자유를 발견한다. 줄기 세포와 같고, 태곳적 때 묻지 않는 대지와 같은 남자였다. 그를 만난 주인공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와 동행을 시작한다. 아직 시작도 못했으니 더 이상 풀 수가 없다. 다만 뭔가 신선한 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도 열심히 조르바를 따라 크레타로 들어갈 참이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시다.

 

조르바는 앞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뒷따라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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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더 찾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집에 한 권 있다. 어딘가 낯익더라니. 최후의 유혹은 예전에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 책이다. 조야하긴 했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이 담겨 있다.















<수난>도 역시 인간의 고뇌다. 예수의 사후 인간들이 짊어진 고뇌의 의미를 찾아간다. 카잔차키스의 빼어남은 역시 기행문이다.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담겨있다. 따지고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도 기행 소설이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이번참에 이 책들을 몽땅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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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사람들


따뜬한 신간. 딱 네 권. 이들은 나의 멘토이자 즐거운 삶의 소통을 들려 준다. 무뚝뚝한 소개문은 불친절하게 하지만 덕분에 호기심에 발동하여 찾아 본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간다. 특히 대지의 선물. 친 환경이 주는 특혜와 혜택을 배웠다. 윌리엄 사우더의 신간 <레이첼카슨> 환경 운동의 지평을 새롭게 쓴 여성운동가이다. 그런 힘이 어디서 온 것일까? 남자로서 부끄럽다. 
















시인의 가슴으로 지구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책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이 번역되어있고, 어린이 용으로도 간략하게 소개한 책도 적지 않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이 분을 몰랐을까? 그게 더 신기하다.  앞으로 이 분의 책을 많이 읽게 될 것 같다. 

<레이첼 카슨 평전(Rachel Carson: Witness for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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