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힌 생명의 역사 - 지구 생명체 새롭게 보기
전방욱 지음 / 책과바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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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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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욱 교수의 얽힌 생명의 역사는 생명을 이해해 온 익숙한 관점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흔드는 책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생명을 더 이상 유전자가 설계한 개체로 보지 않고, 수십억 년 동안 이어져 온 만남과 공생,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어 온 관계적 존재로 재정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책을 천천히 읽다 보면 생명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언제나 진행 중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방대한 생명과학의 내용을 단선적인 진화 서사가 아니라, ‘얽힘이라는 하나의 시선으로 일관되게 엮어낸 데 커다란 장점이 있습니다. 빅뱅과 원소의 탄생에서 시작해 물과 분자의 자기조립, 최초의 세포, 공생 발생, 미생물과 인체의 관계, 가이아 가설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마치 대서사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읽혀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앞선 장에서 제시된 개념들이 다음 장에서 다시 다른 얼굴로 등장하며 독자의 이해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읽는 동안 , 이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지는구나하고 연결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옵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기후 위기, 팬데믹, 생태계 붕괴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날의 현실은 유전자 중심주의적 사고, 즉 모든 것을 개체의 경쟁과 적응으로만 설명하는 틀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유전자를 절대적인 지휘자로 놓아온 관점이 생명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주변화시켜 왔음을 지적하며, 생명과 사회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온 사고의 한계를 짚습니다. 이는 과학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사회와 인간을 이해해 온 방식에 대한 반성으로도 이어집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생명과 인간을 바라보는 사고의 방향이 재조정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얽힌 생명의 역사우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아가 우리는 누구와, 무엇과 함께 존재해 왔는가를 묻습니다. 특히 공생 발생 이론, 후성유전학,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개인의 몸과 삶조차도 독립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타자들과의 협력 위에 놓여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는 생명을 이해하는 방식이 곧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인체와 미생물의 관계를 다룬 장들도 흥미로웠습니다. 판다의 마이크로바이옴 변화 사례나, 토양 미생물이 식물과 인간의 건강까지 이어지는 설명은 생태계의 연결성이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자연과의 접촉, 환경의 질, 일상의 선택이 생명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독자는 자신이 거대한 생명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7장과 8장에서 제시되는 유전자 중심주의 비판과 경계 없는 몸이라는 개념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장들에서 생명은 더 이상 개체 단위로 깔끔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몸은 환경과 미생물, 역사와 사건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결과물로 제시되며, 생명은 설계된 것이 아니라 빚어져 온 것임이 강조됩니다. 이는 개인의 성취나 실패를 오롯이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사고에 익숙한 사회에서, 존재를 다시 관계 속에 놓아보게 만드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얽힌 생명의 역사는 과학서를 찾는 독자뿐 아니라, 생명과 인간, 사회를 더 넓은 시야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생명과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으며,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독자에게도 충분히 풍부한 사유의 재료를 제공합니다. 특히 경쟁과 효율의 언어에 지친 독자, 기후와 생태 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생명을 설명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조용히 묻는 책입니다. 생명을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 만남의 장을 더 잘 꾸린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만드는, 오래 남는 읽기 경험을 선사하는 훌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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