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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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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이미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형 번역가의 이번 번역은 “또 하나의 번역”이라기보다, 이 작품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이 번역본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의 의미나 문장 구조 이전에, 제인 오스틴의 ‘목소리’와 ‘톤’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입니다. 원문이 가진 리듬감, 말하듯 흘러가는 속도, 인물들의 미묘한 말투 차이를 한국어의 경어체·구어체 조합으로 섬세하게 재현해, 독자가 “번역문을 읽고 있다”는 감각보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체험에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만듭니다.
즉 이 번역이 특별한 이유는 원작의 서술이 본질적으로 ‘글’이 아니라 ‘말’에 가깝다는 판단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 무렵 제인 오스틴의 편지글과 닮아 있는 이 소설의 화자는 단정하지만 경직되지 않고, 날카롭지만 냉혹하지 않습니다. 김선형 번역가는 그 미묘한 온도를 한국어 안에서 구현하는 데 집중했고, 그 결과 이 소설은 고전 특유의 거리감을 벗고, 지금 읽어도 자연스럽고 생생한 대화의 리듬을 획득합니다. 여기에 방대하고도 절제된 주석이 더해져, 당대의 계급 구조, 결혼 제도, 여성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독자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완해 줍니다.

그렇다면 왜 『오만과 편견』은 여전히 명작일까요. 이 작품이 다루는 것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오해, 사회적 시선과 개인의 판단이 어떻게 충돌하고 수정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를 오해하고, 그 오해를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벗겨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제인 오스틴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을 합리화하고, 또 얼마나 어렵게 자기 인식을 갱신하는지를 유머와 아이러니로 정확히 포착합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과 사회적 조건에 휘둘리는 인간의 심리는 여전히 유효하기에, 이 소설은 반복해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 극적인 사건 대신 대화, 태도, 말의 뉘앙스 같은 미세한 신호들로 인물의 오만과 편견을 축적시키고, 그것이 스스로 붕괴되는 과정을 유머와 절제된 아이러니로 보여 줍니다. 이 구조는 시대·성별·문화권을 넘어 독자에게 적용되며, 읽을 때마다 ‘등장인물 분석’이 아니라 ‘자기 점검’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독자의 사고 습관을 조용히 교정하는 서사로 작동하며, 바로 그 점에서 <오만과 편견>은 명작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특히,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음에도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의 인식 구조를 점검하는 태도, 그리고 외부의 평가나 조건보다 자기 존엄을 기준으로 관계를 재정렬하는 모습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현대적인 면모입니다. 또한 겉으로는 단정하고 예의 바르지만, 속으로는 날 선 관찰을 멈추지 않는 제인 오스틴의 시선 역시, 사소한 말과 장면 속에서 인간의 권력과 허영을 읽어내는 독자에게 깊은 공명을 줄 것입니다.

김선형 번역가의 <오만과 편견>은 두 부류의 독자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 작품을 이미 읽었지만 “고전은 고전”이라는 거리감 속에 남겨두었던 독자입니다. 이번 번역은 그 거리를 과감히 좁혀 줍니다. 다른 하나는 고전을 처음 읽는 독자입니다. 이 번역본은 난해함보다 생동감을 먼저 건네며, 제인 오스틴이 얼마나 유쾌하고 날카로운 작가였는지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합니다.
결국 이 책은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얼마나 쉽게 오만해지고, 얼마나 자주 편견에 기대어 사람을 판단하는가를. 그리고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한, 『오만과 편견』은 계속 읽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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