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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겉으로 보기엔 아무 부족할 것 없는 소위 상류사회에 속한 주인공 유정. 어려서 집을 나간 엄마와 술에 찌들어 매일 자신과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윤수. 서로 너무나 먼 거리에서 출발한 두 사람의 각각의 이야기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유정은 세 번째 자살 기도로 병원에 누워있다. 한때는 잘나가던 가수로,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열다섯 살에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으로 더 이상 본인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수녀인 고모가 구치소에 자신과 같이 종교위원으로 참여하자고 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윤수를 만난다.
3명의 여인을 살해하고, 인질극을 펼치다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윤수······
소설 속에서 사형수로써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한 인간관계와 사랑을 깨닫는 윤수와, 과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낭비하며 죽지못해 살아가던 유정이 윤수와의 만남이후 새로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게 되고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형제도의 폐지를 이야기한다.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인 무관심. 일반적인 삶의 가운데 속해있는 나의 삶에서 나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형수나 너무 가난해서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고통인 사람들은 조금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물며 연쇄 살인범, 발바리라 불리는 성폭행범,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연일 신문과 텔레비전을 장식할 때도 가능하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고 범죄자의 입장이나 피해자의 입장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현재의 나의 삶에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고, 그런 암울한 삶은 전혀 나와는 상관없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계절은 바뀌며 생명은 언젠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밝은 양지의 뒤편 에는 반드시 어두운 음지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양지의 삶만이 아닌 음지의 삶 역시 반드시 존재하며 또한 생명이 살아있는 삶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관심을 갖고 이해하며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의무인 것이라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모른다’는 말로 지나치고 말았을, 몰라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 삶과 상처를 딛고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용서를 하려는 사람들, 남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처지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분들과 함께 나는 감히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의 단상에 올려진 단어들은 여러 가지지만, 대충 비슷한 분위기를 갖는다. 경계, 의심, 복수, 위선, 죽음, 무관심 그리고 자책감. 이 단어들은 상당히 쉽게 혼자만의 상상의 세계를 떠돌 때 나에게 달라붙는 단어들이다. 밝고 긍정적이고 힘을 솟도록 만드는 단어들이 아닌 손쉽게 우울의 골짜기로 떨어지게 만드는 어둠의 길잡이인 것이다. 별다른 인생의 고난 없이 평탄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범인(凡人)들에게 이런 괴로운 인생도 있다, 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삶도 있으니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하라며 작가는 나에게 어둡고 무겁고 내가 무관심했던 것들에 대한 죄의식까지 불러일으켰다.
나는 사실 공지영이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전 소설들에서 너무 우울하고, 답답하고 한편으로 치우친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80년대 투쟁의 깃발을 펄럭이던 시기에 참여했던 세대 특유의 좌파적인 고집스러움과 독단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 책은 세간의 구설수에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피해가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내내 흡인력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아 쉽사리 페이지를 넘겼지만, 역시 무겁고 손대기가 싫어지는 마음이 여전했던 것은 아마도 작가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지독하게도 박혀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애써 보지도 듣지도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인지······.
어제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4마리 낳았다. 손바닥만한 생명은 눈도 뜨지 못한 채로 꿈틀거리며 쉴 새 없이 삶을 찾아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몇 시간을 지켜봐도 질리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희망과 기대 그리고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전해준다. 지금 뱃속에도 뜨거운 생명의 맥박을 달리고 있는 우리 아기가 있고 내 옆에는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날 지켜주는 가족이 있다.
“······결국 그들이 사형수이든 작가이든 어린 아이이든 판사이든,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
잔인하고 무서워서 보기는 싫은데 그래도 보기 시작한 것이 아깝고 궁금해서 손가락 사이로 훔쳐보던 ‘전설의 고향’에서,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성우의 ‘이 이야기는···’으로 시작되면 참았던 한숨을 몰아쉬었던 것처럼, 책의 끝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긴 한숨을 쉬었다. 어찌 되었든 나의 삶은 현재에 존재하고 있으며, 나는 나의 가족과 다정한 사랑을 충분히 나누고 있고, 그것은 진짜 나의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