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타나토스
조용훈 지음 / 살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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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사람을 도취하게 한다. 사랑에 휩싸여 있을 때 눈은 자주 먼 곳을 바라다본다. 길 끝에는 늘 땅거미가 인다. 또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자기를 들여다본다. 자기 안에서 일렁이는 물결을 응시한다. 그 속으로 침잠한다.  사랑은 자꾸 마음을 적신다. 물이 차오른다. 눈이 젖는다. 마음이 젖는다. 몸이 젖는다. 환희 끝에서 우수가 걸어온다. 우수는 또다시 사랑을 갈망하게 한다. 사랑은 사랑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너이고 싶다. 너는 내가 되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이고 싶다. 하나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나이고 너는 너다. 뎅그라니 혼자인 나를 본다. 네가 될 수 없는 나. 그래서 나는 네가 되기 위하여 죽음을 택한다. 사랑은 그래서 죽음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언제까지나 에로스다. 이루고 나면 에로스는 죽는다. 아가페로 새로 태어나지 않는 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에로스는 죽음이다. 그 아련한 타나토스의 냄새. 그래서 에로스는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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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내로 부르셨을때
신디스캅 / 예향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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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남편이라는 존재는 누구일까? 그토록 사랑하였던 애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다. 아이가 여자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것 입히고, 아이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아빠는 더 많이 벌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물론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자리는 고귀하다. 그러나 그 고귀함은 그가 가정 내에서 한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만 가능하다. 주고받는 따뜻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뼈빠지게 돈 벌어다 바치는 기계일 때, 그에게서 존재의 고귀함은 사라지고 만다. 저자 신디 스캅은 거기서 더 나아가,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영적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남편이 한낱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일 뿐 아니라, 아내가 남편을 영적 존재로서 바라보고 그의 영적 지위를 회복시키는 데 힘쓸 것을 권유한다. 바람직한 그리스도인 가정이라면, 남편은 물질적 가장일 뿐 아니라, 한 가정의 영적 생활을 이끌어 가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영적 제사장으로서의 자리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 그리스도인 가정조차도 이 진실에 눈멀다. 가정의 주인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도, 이미 맘모스에게 가정의 주인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이 책은 가정에서 영적 권위를 상실하고 아내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돈 버는 기계 이외의 자리를 획득하지 못한 가장들이 그 본래 지닌 바 영적 권위의 자리를 회복할 것을 권유한다. 그 일을 위해 먼저 깨달아야 하는 사람은 아내다.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인간은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그러한 사람'이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 아내들이여, 하나님이 본래 주신바 남편의 영적 제사장으로서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라. 남편을 향한 당신의 시선, 당신의 기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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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주파수 창비시선 327
김태형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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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혼자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정 혼자가 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무슨 꿈을 꿀지 모른다 

내가 외로운 것은 혼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 

 

혼자가 되지 못하는 건 현대인의 병이다. 가족 때문에 혼자가 되지 못하는 건 그래도 낫다. 거리로 나가면 온통 혼자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하다. 거대한 맘모스의 뱃속으로 균일하게 들어가도록 입 벌린 열차가 달려온다. 이탈하면 반역이다.  

우리는 혼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한다. 궤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옷을 입는다. 똑같이 생기기 위해 성형을 한다. 얼굴을 잃어버린다. 꿈에 대해 묻지 말라.

 열차는 수많은 '나'를 구겨넣고 문을 닫는다. 벽돌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빚어진 내가 달린다. 바퀴만 달면 나는 완제품이다. 더 이상 꿈꿀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외롭다. 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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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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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발터 벤야민. 20세기 최고 문예이론가로 추앙받는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성에 눈을 떴는가 하는 것이다.    

유대교 신년 축제를 맞아 그는 부모님과 함께 어느 시나고그에서 열릴 유대교 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 준비를 하던 중, 그는 먼 친척 벌 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그를 모셔오라는 부모님의 명을 받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그의 집을 찾지 못하고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점점 밤이 깊어져 간다. 그때 벤야민은 그 친척에 대한 혐오와 유대교 종교의식에 대한 불신의 감정에 휩싸인다.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감정에 빠진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신년축제일을 모독하는 마음과 거리의 뚜쟁이적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쾌락의 감정으로 흐르고 만다. 즉 자신의 성적 충동에 대해 밤의 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가장 거룩한 종교의식을 행하는 유대교 신년축제일에 타락의 한 걸음을 떼어 놓는다. 

불온성이 가장 큰 동력인 문학.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그는 탁월한 문학비평가로서의 정서적 기반을 마련하개 된 것이 아닐까. 성스러움과 속됨의 경계에 자리하는 문학,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문학. 비범한 문학 평론가의 타락은 그만큼 비범하게, 가장 성스러운 시간에 이루어졌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언제 타락에 눈 떴을까, 아직 유리가 깨어지기 이전, 내 유년의 뜰의 경계 밖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이 어떤 글로 열매 맺어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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