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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평점 :
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발터 벤야민. 20세기 최고 문예이론가로 추앙받는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성에 눈을 떴는가 하는 것이다.
유대교 신년 축제를 맞아 그는 부모님과 함께 어느 시나고그에서 열릴 유대교 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 준비를 하던 중, 그는 먼 친척 벌 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그를 모셔오라는 부모님의 명을 받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그의 집을 찾지 못하고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점점 밤이 깊어져 간다. 그때 벤야민은 그 친척에 대한 혐오와 유대교 종교의식에 대한 불신의 감정에 휩싸인다.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감정에 빠진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신년축제일을 모독하는 마음과 거리의 뚜쟁이적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쾌락의 감정으로 흐르고 만다. 즉 자신의 성적 충동에 대해 밤의 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가장 거룩한 종교의식을 행하는 유대교 신년축제일에 타락의 한 걸음을 떼어 놓는다.
불온성이 가장 큰 동력인 문학.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그는 탁월한 문학비평가로서의 정서적 기반을 마련하개 된 것이 아닐까. 성스러움과 속됨의 경계에 자리하는 문학,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문학. 비범한 문학 평론가의 타락은 그만큼 비범하게, 가장 성스러운 시간에 이루어졌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언제 타락에 눈 떴을까, 아직 유리가 깨어지기 이전, 내 유년의 뜰의 경계 밖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이 어떤 글로 열매 맺어야 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