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와 타나토스
조용훈 지음 / 살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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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사람을 도취하게 한다. 사랑에 휩싸여 있을 때 눈은 자주 먼 곳을 바라다본다. 길 끝에는 늘 땅거미가 인다. 또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자기를 들여다본다. 자기 안에서 일렁이는 물결을 응시한다. 그 속으로 침잠한다.  사랑은 자꾸 마음을 적신다. 물이 차오른다. 눈이 젖는다. 마음이 젖는다. 몸이 젖는다. 환희 끝에서 우수가 걸어온다. 우수는 또다시 사랑을 갈망하게 한다. 사랑은 사랑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너이고 싶다. 너는 내가 되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이고 싶다. 하나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나이고 너는 너다. 뎅그라니 혼자인 나를 본다. 네가 될 수 없는 나. 그래서 나는 네가 되기 위하여 죽음을 택한다. 사랑은 그래서 죽음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언제까지나 에로스다. 이루고 나면 에로스는 죽는다. 아가페로 새로 태어나지 않는 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에로스는 죽음이다. 그 아련한 타나토스의 냄새. 그래서 에로스는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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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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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발터 벤야민. 20세기 최고 문예이론가로 추앙받는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성에 눈을 떴는가 하는 것이다.    

유대교 신년 축제를 맞아 그는 부모님과 함께 어느 시나고그에서 열릴 유대교 예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 준비를 하던 중, 그는 먼 친척 벌 되는 사람의 집을 찾아가 그를 모셔오라는 부모님의 명을 받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그의 집을 찾지 못하고 골목골목을 헤매다가 점점 밤이 깊어져 간다. 그때 벤야민은 그 친척에 대한 혐오와 유대교 종교의식에 대한 불신의 감정에 휩싸인다.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감정에 빠진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신년축제일을 모독하는 마음과 거리의 뚜쟁이적 감정이 뒤섞인 상태에서 쾌락의 감정으로 흐르고 만다. 즉 자신의 성적 충동에 대해 밤의 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가장 거룩한 종교의식을 행하는 유대교 신년축제일에 타락의 한 걸음을 떼어 놓는다. 

불온성이 가장 큰 동력인 문학.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그는 탁월한 문학비평가로서의 정서적 기반을 마련하개 된 것이 아닐까. 성스러움과 속됨의 경계에 자리하는 문학,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문학. 비범한 문학 평론가의 타락은 그만큼 비범하게, 가장 성스러운 시간에 이루어졌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언제 타락에 눈 떴을까, 아직 유리가 깨어지기 이전, 내 유년의 뜰의 경계 밖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이 어떤 글로 열매 맺어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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