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중고서점지기님의 "알라딘 중고매장 일산점 오픈 "

<초대받은 저녁>

 

 

어둠 속에서 그 광장 벤치에 내가 앉아 있다면, 그날은 내 마음이 어딘가 머무르고 싶은 곳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일상들, 그 또한 소중한 시간이자 사건들이지만 사이사이 고요히 앉아 있거나 걸으면서 틈을 만들지 않으면, 소중한 일상을 보다 건강하게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내가 웨돔 주변 광장 벤치에 앉아 자주 시간을 보내는 이유다.

 

그러나 광장에도 웨돔에도, 그것들을 둘러싼 호수공원에도 한계가 있다. 걷기 아니면 앉기 아니면 먹기 아니면 입기... 이 또한 되풀이되는 일상의 범주 아닌가.

특히 웨돔을 나갔다 들어올 때면 말미에 늘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밥 한 끼 먹기 좋은 곳, 금방금방 소비해버리는 싸구려 옷들 구경하기 좋은 곳, 그러다 답답해져서 호수공원이나 한 바퀴 휘~ 돌아오고 마는 곳. 그리고 밤이면 일산의 온 젊은이들을 불러모아들이는 주점이나 클럽의 네온사인들. 어쩌면 외화내빈의 자본주의적 구도의 미니어처 같은 곳이 이곳 웨돔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그러면서도 그것은 특별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은 이곳의 젊은이들에게는 누리고 싶은 것 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천혜의 놀이공원 같은 곳이기도 하다.

 

어제도 나는 잠깐 동안 어둠이 내린 광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옆 벤치에 젊은 연인이 데이트 중이어서 부러움과 외로움이 교차하기도 했으나, 한편 혼자라는 자유는 은근 달콤해서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어둠은 나의 자유와 휴식을 한껏 더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맞은편에 '알라딘 중고매장'이라는 간판이 휘황하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얼마 전 서울의 종로를 지나오다가 차 안에서 종로 2가에 있는 '알라딘 중고매장'을 처음 발견하고, 거기만 매장이 있는 줄 알고 한번 나갔다 와야지 하고 벼르던 참이었는데, 바로 눈앞에 '알라딘 중고매장'이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니!

 

순간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요술을 부리기라도 한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 오직 나만을 위하여 저 매장을 오픈해 놓은 것일 거야... 이렇게 나 자신에게 속으로 역설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장 광장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랐다.

 

천장이 높고 넓어서 여유로운 시원시원한 매장. 중고서점이라면 퀴퀴한 종이냄새부터 연상하게 되는데, 이곳은 어떤 특별한 문화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 먼저 난다. 잘 정렬된 책들, 거의 새 책에 가까운, 그러면서도 누군가 눈여겨보고 아꼈던 흔적이 희미하게 묻어 있는 즐비한 책들! 또 돔을 연상시키는 위층의 둥근 서가들! 한 마디로 "근사했다!"

 

나는 그 저녁, 마치 특별한 초대를 받은 것 같았다. 영화에서 보면 멋진 남자가 한강 유람선에 화려한 조명 장식을 해놓고,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여자에게 갑자기 프러포즈를 하는 환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날 저녁 나는 조금 쓸쓸했고 외롭고 슬펐는데, 그래서 광장에서 마음을 달래며 내 영혼을 쉬게 할 틈을 찾고 있었는데,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알라딘의 요술램프! 그 램프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 매장에 들어서자 마치 내가 광장 한가운데 있는 유람선에 들어와 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서가 뒤에 몰래 숨어서 나를 위해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였다면, 이 또한 지나친 과장일까.

 

거기서 나는 여전히 새 책 같은, 문학상 수상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시집 한 권을 샀다. 그리고 시인 기형도의 얼굴이 그려진 비닐 쇼핑백에 그 시집을 담아서 들고 걸었다. 온종일 마음이 부대꼈는데, 이 시집에 실린 고급 시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겠구나. 이런 위안을 받으면서 나는 대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비닐 쇼핑백을 바작바작 소리 나도록 일부러 흔들어보곤 했다. 

 

먹고 입고 조금 걷다 보면 다음엔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이곳 웨돔. 돈 없으면 얼씬거리기도 힘든 웨돔. 돈 내고 비틀거리게 만드는 웨돔의 유흥가들... 시인 함성호가 '홍대앞 금요일'이라는 시를 통해, 불빛을 향해 모였다가 사라지는 부나비들처럼 젊은 영혼들이 부질없는 밤문화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묘사해놓은 것처럼, 웨돔의 '금요일'이 휘청휘청 비틀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알라딘 중고매장이 비틀거리려는 젊음을 일으켜 세워주는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오래 자리 잡게 되기를! 이미지에 현혹되어 날이 갈수록 허영으로 부풀어오르는 젊음이 중심을 잡고 기댈 수 있는 영혼의 의지처가 될 수 있기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는 한 줄의 글이 백년 평생을 빛나게 할 수 있음을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알라딘 중고매장으로 초대받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매장이 만인의 가슴에서 오래오래 꺼지지 않는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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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yangga 2013-09-1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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