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원한다면, 조금 더 포기하고 조금 더 의무를 수행해 봐. 이 세상의 훌륭하고 자유로운 열정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진귀한 감정을 맛보게 될 거야. 하지만 책 속의 삶에는 커다란 고요와 평온이 담겨 있지. 뭔가 좀더 지난 것에 대한 갈증이 밀려올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은 자책과 공포와 고통과 해로운 후회에서 벗어나 살 수 있어. 내 경우엔 내면의 영혼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정신적 수도원을 짓고 있는 한편, 외면의 그림자는 세상과 만나기 위해 나가지. 나는 이 마음 속 성전에 앉아 영혼의 생각들에 잠기지. 어제 테라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옛날에 본 유령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더니 엄숙하게 열을 지어 내 앞으로 걸어왔어. 모두 죽은 것들이지. 희망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 야망과 황금 같은 청춘을 품고 사라진,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저 거대한 망각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지. 그때 나는 말을 하면서도 마치 나 자신과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과거' 속으로 이미 사라진 듯, 모두가-다툼, 고통, 모든 것이 아주 작게, 아무 의미도 없는 어리석음, 소음, 분노쯤으로 느껴졌어. 그렇게 해서 평온이 얻어지면 '운명'의 천둥소리는 아이들을 겁주려는 보모의 이야기에 불과해지지.


 그래, 인생의 논리는 놀라운 것이야. 그래서 때로는 '사탄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금언집을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하곤 해. 거기에 담길 내용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겠지. "애정의 원인을 제공하고 권태의 원인을 받는다, 봉사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상받는다, (다음 내용은 정숙한 모든 어머니들과 아내들의 일대기야.) 열정은 탐닉에 의해 더럽혀지고 구속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어느 쪽 경우든 상실은 불가피하다, 기타 등등." 그러나 이 씁쓸한 진실은 깊이 생각하기엔 적합하지 않아. 물론 그 것들이 진실이라면 인정받을 자격은 있겠지만 말이야. 어디서든 비통한 기분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감정에 고장이났다는 신호야. 이럴 대 마음을 크게 가지고 자제력을 발휘하면 본능적인 아픔의 절규가 들어설 자리에 고요한 가을날의 비애가 자리잡곤 하지. 문학이 큰 위안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비극들이 모두 과거 속의 것이어서 우리의 노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완결과 정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야. 슬픔이 점점 격해질 때 그것을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 양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 속에서, 지금도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 양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 속에서,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는 저 거대한 기계에 목숨을 잃은 칙칙한 영혼들의 애도 행렬에 동참해 보는 것이 가장 건강한 방법이야. 나는 과거를 화창한 풍경 보듯 바라보지. 그 곳ㅇ서는 세상 조객들이 모두 애도를 멈추었어. '시간'의 강 강둑 위로 갖가지 세대 인간들의 슬픈 행렬이 무덤을 향해 서서히 행진하고 있어. 그러나 과거라는 고즈넉한 전원에서는 지친 방랑자들이 모든 흐느낌을 멈추고 휴식하고 있지.


 그래,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행복을 파괴하기 쉬운 기회로 생각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결혼 생활을 하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두고 씨름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치지. 그러다 몇 년이 지나면 대개는 문제가 정리되기 마련이고 정리가 되고 나면 한 사람은 행복해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덕을 쌓고 있지. 가해자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결혼 생활을 축복이라 말하고 희생자는 상황이 더 악화될까 두려워 미소를 띠며 마지못해 동의하지. 결혼처럼 깊은 관계 속에는 고통이 가능성이 정말 무한히 담겨 있어. 그러에도 나는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고 믿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알아두면 좋을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거든. 세상에 고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 그 것이 인간의 동료 의식을 키워 결국 남들이 다 겪는 고통으로 몰고 간다는 이유만으로 모른 척 살 수는 없는 거야. 그러나 이따금 약해지는 순간에는 단순한 생활에 대한 동경을 뿌리치기 힘들지. 인간의 슬픔에서 멀리 떨어진 채 책만 읽는 생활 말이야. 견디기 힘들 만큼 비참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놀라운 일이지. '참으로, 인간은 고통을 먹고 사나니.' 나 자신을 위해서나 남들을 위해서나 행복을 너무 중시하지 않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 그렇게 말하는 나도 이 얘기를 전적으로, 직관적으로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당화시키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자애의 마지막 피난처임이 분명해. 그러한 감정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이 너무 높은 데도 일부 우너인이 있으니 결국 자만의 일종이지. 자기 개인의 고통에 반항한다는 것도 또 하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 자신의 고통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거창한 공익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이 참호 구축 작업에서 자애를 몰아내기란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아직 성공해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야.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보다 먼저 찾아오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에 내 외로움의 종착지가 될 한 귀퉁이마저 조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거운 짐이지. 그것을 달리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당신의 문제는 이 것을 용기 있게 직면하면서도 당신한테 중요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는 것이야. 모든 것을 단호하게 끊고 자기 자신의 애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죽여버리는 것이 좀 더 손쉽겠지.ㄱ러나 이 경우, 사람이 무정해지고 장기적으로는 무자비해질 수도 있는데, 말하자면 금욕주의자들의 무자비함 같은 거지. 반대의 방법을 취하더라도 단점은 있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갈되고, 마음의 평온이 파괴되고, 다른 사람들의 영역을 부당하게 잠식하지 않고 건져올릴 수 있는 가치가 과연 얼마나 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차라리 현실의 삶을 통째로 기억이나 상상 속의 삶으로 만들어버렸으면 하는 유혹도 들기 마련이지. 그 곳에서는 의무나 사실들이 나를 구속하지 못하니 현재 내가 맺고 있는 것들이 그림자나 비실재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 이 경우, 과거가 손상되지 않고 유지된다는  이점이 있긴 하지.
 그러나 이제 좀더 현실적인 부분으로 돌아와야 해. 내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제1순위가 아닐 경우,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전적으로 수용적이고 수동적인 감동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믿어. 다시 말해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특별히 부탁해 오지 않는 한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야. 사람들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본인 스스로는 메아리가 되어 주어지는 정도만큼 애정을 가지고 반응하되 감정과 애정이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자제하고, 내게는 권리가 없으니 받은 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해. 예를 들면 결혼한 아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보여주는 태도 같은 것이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애정 생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정신적 죽음을 겪지 않으면서 이행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의무라고 할 수 있어.


 + 역시 러셀 자서전 중에서.


 이 편지들을 자서전에 싣기 위해서는 루시의 동의가 필요했을까? 만일 러셀이 루시에게 이 편지들을 싣도록 허락해주겠어, 하고 물었다면 루시는 소중한 선물을 빼앗기는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멋진 보석을 자랑할 기회를 얻는 것 같았을까. 내가 이런 편지들을 받았다면 손에 쥐고 내놓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글쎄 나이를 오십 정도 먹으면 젊은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만큼 너그러워질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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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버티


 자네는 훌륭한 군자가 될 것 같네. 충분히 그렇게 볼 만한 경과를 보이고 있어. 그러나 자네가 지팡이를 사는 데 12파운드 6실링을 썼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 받았네. 그 정도 액수면 죄악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 내가 볼 땐 2파운드 6실링으로 한계를 그었어야 마땅하네.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도덕성이 옥스퍼드를 크게 능가하지 않는 한 자네가 12파운드 6실링을 주고 산 지팡이도 아마 오래 가지 못할 걸세.


p. 153 <로건 피어솔 스미스의 편지>


+ 음 이 부분만 떼놓고 나니 그다지 안웃긴 거 같지만 정말 웃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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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111



 케임브리지 시절은 즐거웠지만 관리직 교수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학장은 새커리Thackeray의 소설 '영국 속물 열전Book of Snobs'에 묘사된 그대로였다.. "주로 30년 전 오늘만 해도"라든가 "100년 전 오늘 피트 씨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혹시 기억하는가?" 따위의 말로 시작하여, 역사에 언급된 정치인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선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역사 속 일화를 들려주곤 했다. 내가 수학 졸업 시험에서 7위로 1급 합격자가 되었을 때 보내온 편지에 그의 서간문체가 잘 드러나 있다.



 친애하는 B. 러셀군



 이처럼 큰 일을 달성하여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해주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네. 내가 해로 학교에서 라틴어 산문 부문 5위 상을 자네 부친의 손에 쥐어준 게 불과 33년 전 일이건만, 이제 또 그의 아들이 우리 칼리지에서 높이 평가될 만한 뛰어난 수학 성적을 기록하여 그의 모친과 아들을 축하해 주게 되었으니.



...



p.112



 언젠가 트리니티 학장 숙소에 아침 식사를 하러 갔는데 마침 그의 처제 생일이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라고 축복한 다음에 그가 말하기를, "그러고 보니, 처제, 딱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04년]만큼 살았군." 그녀는, 그 기간이 얼마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바라는 이상으로 길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 으하하핫. 이 책을 이렇게 소리내 웃으면서 읽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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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을 쌓는 일로 말하자면 올해 쌓아도 될 일이고 내년에 쌓아도 될 일이고 10년을 쌓아도 될 일이지만 백성은 하루를 굶겨도 안 되고, 이틀을 굶겨도 안 될 것이며, 한 달을 참고 지내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 자전거여행2 2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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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patience was the mood of the young sit-in demonstrators: impatience with the courts, with national and local governments, with negotiation and conciliation, with the traditional Negro organizations and the old Negro leadership, with the unbearably slow pace of desegreation in a century of accelerated social change. p.56


 Between the unequivocal supoorters and the conservative diehards in the adult Negro community was a third group, whose response to the new militancy of the college generation was complex and curious.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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