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이들로부터 위대한 창조적 업적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창조하는 인간도 언제까지고 혼자된 상태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아프다. 혼자됨이 논리적으로 곧 고독을 함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고독, 즉 일종의 쓸쓸함, 아픔으로 변한다.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혼자됨 속에서 언제까지나 버티고 있어야 할 것인가? 인간은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주체성과 창조적 업적을 위해서, 고독한 수도원, 암자, 연구실에서 나와 인간 공동체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가정, 고향, 시장으로 돌아가 대중적이 되어야 할 것인가? 공동체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간미의 포기, 즉 고독의 감수라는 대가를 치룬 '위대함'이라는 성취가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떠들썩한 시장 속에서 고독을 전혀 모르고 지낸 인생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룩뱀Speckled Snake이라는 이름의 백 살이 넘은 크리크족 인디언은 앤드루 잭슨의 이주정책에 반발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백인 큰 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 처음에 너른 바다를 건너왔을 때 그는 작은 ...... 아주 작은 사람에 불과했다. 큰 배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 다리에 쥐가 난 그는 불을 피울 조그만 땅을 구걸했다....... 그러나 인디언이 피워 놓은 불에 몸을 녹이고 인디언이 내준 옥수수죽으로 배를 채우자 백인은 아주 거대하게 되어 버렸다. 한걸음에 산맥을 건너고, 두 발로 평야와 계곡을 뒤덮었다. 손은 동쪽 바다와 서쪽 바다를 휘어잡았고 머리는 달에 기대었다. 그러고는 우리의 큰아버지가 됐다. 큰아버지는 홍인종 자식들을 사랑했고 이렇게 말했다. "내 발에 밟히지 않도록 조금 멀리 떨어져라." 형제들이여! 나는 큰아버지로부터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러나 큰 아버지의 말은 항상 시작과 끝이 똑같다-"조금 떨어져라. 너무 가까이에 있어."

7장 풀이 자라거나 물이 흐르는 한 -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지일기

이성복


슬픔은 가슴보다 크고
흘러가는 것은
연필심보다 가는 납빛 십자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아침부터 해가 지는 분지,
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촘촘히, 촘촘히 내리는 비,
그 사이로 나타나는 한 분 어머니
어머니,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거예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울고 있어요
다시 봄이 왔다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류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둥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 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
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
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 불고 머리칼 쥐
어뜯고 몸부림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 죽이면 가슴엔 윤기나는 석회층이 깊었다
지금 경사를 타고 내려와
지금 경사를 타고 내려와 미류나무 한 이파리에
멈추는 햇빛, 짧아져 가는 햇빛
지금 내 입술에 멈추는 날카로운 속삭임
나는 괴로와했고 오랫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지금 짧아져 가는 그 햇빛을 가로지르는 것들은 아름답다
오래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므로
가자, 막을 헤치고 거기 가자
부서진 구름도 따스하게 주위를 흐르는 곳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걸었다 해가 땅에 꺼지도록
아무 말도 할말이 없었다
길에서 창녀들이 가로막았다
어쩌면 일이 생각하는 만큼 잘못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도 했다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가슴은 여러 개로 분가하여 떼지어 날아갔다
그것들이야 먼 데 계시는
내 어머니에게로 날아갈 테지만
젖은 불빛이 뺨에 흘렀다
날아가고 싶었다, 다만, 까닭을 알 수 없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짐승이나 길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온 세상에 질서가 잡혀 있다면 내가 구태여 바꾸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괴테는 독일인 중의 독일인이었다. 그는 조국을 사랑했다. 그보다 독일을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다. 독일 사람도 그에게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그들의 길을 밝혀주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강철 발굽이 독일의 포도밭과 옥수수밭을 짓밟았을 때 그의 입술은 침묵을 지켰다. 그는 에커만에게 이렇게 말했다.

 "증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증오의 노래를 쓸 수 있겠는가? 나에게는 문화와 야만성만이 중요할 뿐인데, 지상에서 가장 개화된 민족, 내가 이처럼 개화되는 데 너무 많은 영향을 주었던 민족을 내가 어찌 증오할 수 있겠는가?"

 괴테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울려퍼진 이 지적은 미래의 세계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비평은 그 겉모습은 다르더라도 인간 정신의 유일성을 강조하며 종족 간의 편견을 없애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면, 결국 우리 문화의 한 부분, 어쩌면 가장 소중한 부분을 파괴하려는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사악한 것으로 여겨지는 한, 전쟁의 유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야비한 것이란 인식이 널리 퍼진다면, 전쟁은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물론 변화는 느릿하게 찾아올 것이다. 사람은 그런 변화를 의식조차 못할 것이다. "프랑스의 산문이 완벽하기 때문에 우리는 프랑스와 전쟁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시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프랑스 땅을 증오할 수 없을 것이다. 장사꾼이나 감상주의자보다는 지식인의 비평이 유럽을 하나로 묶어줄 것이다. 지식인의 비평은 상호이해에서 비롯되는 평화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