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너무 값싸다.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 놓아야 했다. - p.195 고독

 내 작은 집에서 이따금 느끼는 단 한 가지 불편은 손님과 내가 큼직한 사상을 큼직한 말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 두 사람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두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이 예정된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항해 준비를 완전히 갖춘 채 한두 항로라도 달려볼 수 있는 공간을 갖기 바란다. 사상이라는 탄환은 듣는 사람의 귀에 도착하기 전에 좌우 상하의 동요를 극복하고 마지막의 일정한 탄도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탄환은 듣는 사람의 머리를 뚫고 반대 방향으로 나올지 모른다.

 우리들이 표현하는 문장들 역시 넓게 편쳐져 대열을 정비할 만한 공간을 원했다. 국가들처럼 개인들도 서로 적당한 크기의 널찍하고 자연스러운 경계선과 상당한 크기의 중립지대를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친구 한 사람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드문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 집에서는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가까워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즉 서로에게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잔잔한 물에 두 개의 돌을 너무 가까이 던지면 두 개의 판문이 서로를 교란하듯이 말이다.

 우리가 단지 고성다변高聲多辯만을 즐긴다면 뺨과 턱을 마주 대다시피 하고 상대방의 입김을 맡을 만큼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신중하고 사려 깊게 이야기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서 서로의 동물적 열기와 습기가 증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 중 대화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을 진정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서로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신체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말이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큰소리를 쳐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섬세한 것들이 있다. 대화가 점점 심각하고 고차원적 색채를 띄면, 우리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어 나중에는 벽에까지 닿아 더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 p. 201,202 방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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