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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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대한민국이 공정하다는 거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누가 그래요? 대한민국이 공정하다고?

꿈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 그 꿈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 채 갑작스럽게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내가 기억하는 한 대한민국이, 아니 세상이라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래서 종교활동을 접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등반, 고등반을 거치고 대학부활동도 했고, 교회부반주자에 성가대, 유치부보조선생님까지 활동도 참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불공정한 세상 속에서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이라도 아니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증표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이라도 공정하려고 애쓰며 사는 모습을 봤더라면 나는 지금쯤 교회의 흔해빠진 집사님 혹은 권사님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대학교 민주광장 뙤약볕 아래서 어설프게 구호를 외치던 혈기왕성 하던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의 '세상이 다 그렇다'는 변명이 그렇게도 치졸해보이고 어줍잖고 재수없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자유경제를 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데 있어 경쟁이란 필연적인 요소이고, 경쟁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 혹은 더 나은 자와 뒤처지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능력치에 다름이 있기에 이미 출발선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체급이 다르면 당연히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양한 인간군이 모인 사회이기에 '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단순히 다른 출발선과 다른 체급 뿐만 아니라 뒤에서 벌어지는 온갖 반칙들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과연 모든 선수들을 공정하게 보호하는가, 에 대해서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믿음이 없다. 불신의 시대.

여기 분노를 분노로만 두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다. 법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못한 부패의 대명사 같은 인물들을 응징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집행하는 사람들이라 여기고 당연히 벌받아야 할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 잔인한 수법이 문제가 될 법도 하지만 국민정서는 당연히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며 오히려 그들을 응원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에서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갔던 칼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물으며 살인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자신은 살인도 해봤고, 사람도 죽여봤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전쟁통에 사람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적군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전장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와도 같은 행위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였다. 집행관들은 자신들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발생한 인명피해는 그야말로 전쟁 중에 일어나는 부수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잔인할 필요까진 있었는가에 대해서.

"우린 펜대만 붙잡고 투덜거리는데, 그자들은 실행에 옮기고 있잖아. 우리보다 백 배 천 배는 낫지."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차장이 끼어들었다.

"그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전쟁 중에 벌이는 살인 행위는 모두 정당하지 않은가?"

"저, 전쟁 중이라니요?"

"그자들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거야...... 꼭 총칼을 들어야 전쟁인건가?"

<집행관들> p.235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누군가는 좋은 변호사를 써서 쉽게 빠져나오는가 하면 누군가는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무거운 형을 받기도 하는데서 기인한 말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씌였던 걸 보면 인간세상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금에만 특별히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법의 집행이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반드시 죄를 지은만큼 똑같이 그대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가 절대적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또 그 죄의 무게에 걸맞는 무게를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야말로 '복수'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형벌을 집행하는 데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았지. 힘이 세든 나이가 많든 부자든 간에 똑같이 집행했던 거야. 죄를 지으면 누구나 법대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인도에 다녀온 후에도 한동안 그 마을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더군."

<집행관들> p.3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밝혔듯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가상의 공간안에서나마 기득권들의 횡포에 최대한으로 강력한 벌을 내리고 싶었던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 정의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패한 사람들은 말한다. 너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 '너 하나'가 온 세상에 가득 찬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온전한 세상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도 나는 안다. 언젠가 어떤 드라마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왔다. 썩어 문드러진 놈이 마지막을 맞이하며 '나 하나를 처리하면 다 될 것 같지? 하지만 나 같은 놈은 세상 어디에든 있다.'고 말했을 때 정의로운 주인공이 그랬다. '너 같은 놈이 다시 나타난다면 어디에선가 나 같은 놈도 또 나타난다.'고! 그래서 나는 믿는다. 썩고 부패한 놈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그 썩은 놈들을 처단하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고 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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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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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독이 심한 나는 주로 영미권의 추리물이나 법정물을 많이 읽는데 작가 자신이 변호사였다던가, 형사였다던가 하는 것처럼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한 이 책도 그런 면과 닿아있다. 작가 김초엽은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는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이과생이지만 소설을 썼다. 장편소설이고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단편소설집이었고, 사랑이야기보다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은 SF소설이었다. 소설은 문과생이지~ 하겠지만 이 소설집은 이과형소설이다. 작가가 가장 잘 아는 과학공식들을 바탕으로 한 미래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기억전달자>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완벽한 미래의 어느 세계. 장애도 차별도 혐오도 없는 마을의 성년식은 마을을 떠나 시초지라 불리는 지구를 향해 순례를 떠나는 일이다. 마을은 순례를 떠나는 이들을 위한 행사를 하고, 또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을 위한 환영식도 준비한다. 하지만 언제나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의 숫자는 떠난 이들의 숫자보다 적었다. 이 마을이 완벽한 곳이라면, 유토피아라면 왜 어떤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그리고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의 눈은 슬픔으로 젖어있는가. 작품의 주인공은 성년식으로 순례를 떠날 날을 앞두고 혼자서 미리 지구로 가보려 한다. 완벽한 세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아서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가, 되물어 보게 한다.

<E.T>에서 <에일리언>에서 보는 외계인은 늘 어떠한 생김새를 지녔다. 인간과는 다른 그러한 생김새.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우리에게 닿았을만큼 우리보다 진일보한 과학을 가졌고,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지는 않지만 우리의 말을 이해할 능력도 지녔다. 김초엽이라는 작가가 생각하는 외계, 외계인은 좀 남달랐다. <공생가설>의 외계인은 참신했다.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왜 나지 않는지, 외계인과의 공생가설을 내세움으로써 설명했다.

외계생명체 탐사를 다녀 온 젊은 과학자가 우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40년 만에 지구로 돌아와 외계생명체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펙트럼>도, 냉동인간을 만드는 딥프리징 기술로 170년을 훌쩍 넘기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우주정거장을 헤매는 안나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더 이상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묻고 혹은 유골을 태워 보관하는 대신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인드를 데이터화 하여 도서관에 이북을 보관하듯이 보관해두고 찾아가 볼 수 있다고 설정한 <관내분실>도 모두 예상외로 재미있고, 흥미롭고, 이색적이어서 신선했다.

SF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성'은 오히려 더 부각된 느낌이다. 냉동기술을 이용해서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연장하면서까지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는 안나와 한 번도 사랑한 적 없고, 사랑받은 적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데이터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꼭 엄마의 데이터를 찾아야 겠다고 마음먹고 엄마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지민 등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과학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미래의 어느 곳에서 인간적인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감정'이 아닌가. AI가 과연 추가적인 발전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인간보다 AI가 더 완벽하고 결점이 없지 않은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고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도 영화도 많지만 AI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마지막 단계는 인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AI, 감정을 느끼는 AI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면 감정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초엽의 소설집은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은하계를 폭신한 구름을 타고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느낌, 그러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지구를 아련하게 그리워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집이다. 언젠가 그녀의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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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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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소설이라는 설명을 붙인 걸 보고는 이기호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라 이게 그럼 소설이라는 이야기인가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인가 잠시 아리송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배우 박정민의 책 <쓸 만한 인간>을 읽고, 바로 이 책을 읽었는데 서평을 쓰려고 생각하니 확실해진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꼰대라는 거였다. 막 30대가 된 배우가 자신이 지나 온 20대를 이야기하는 책이나 이제 막 초등학생, 유치원생의 아이를 두고 종종걸음을 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보면 솔직히 아무 감흥이 없다. 나는 20대를 이미 지나왔으니까, 똑같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지나친 20대를 밑거름으로 30대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보자고 배우 박정민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으니까. 내 아이는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까, 내 아이는 항해사 아빠와 일하는 엄마 덕분에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컸고, 학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 덕분에 맨날 집에서 놀았고, 그러다 사회시험에서 76점을 맞고 엄마한테 혼난 적이 있으니까. 나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병원에 갈 때마다 우리 아기가 너무 자주 아픈 것 아니냐고, 무슨 큰 병에 걸린 건 아니냐고 불안해 한 적이 있지만 그건 벌써 20년 전 이야기니까. 그래서 아무 감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걸 돈 주고 사서 봐야 하나, 싶기까지 한 걸 보면 꼰대가 분명한 것 같다.

혹시 지금 막 전투적으로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게 다 내 이야기 같고, 우리집 이야기 같을테니까. 막내 재우느라 방으로 먼저 들어간 아내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큰애를 붙잡아다가 재울 준비를 하고 나면 막내와 함께 잠들어 버린 아내를 보는 일, 그렇게 큰애를 재우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 혼자 멀뚱하니 앉아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부부는 각방 신세. 아직 어린 아이들이 침대에서 떨어질까봐 멀쩡한 침대 놔두고 전부 침대 아래 좁은 공간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자는 풍경이 우리집인 것만 같아서 낯익을 것이다. 게다가 에세이처럼 짧게 짧게 가족의 이야기를 끊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라 쉽게 쉽게 읽히고, 그 사이사이 웃음 포인트들이 들어 있어서 웃다보면 후루룩 한권이 금세 끝나는 책인데 어째 나는 두고두고 찝찝하다.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그런데 꼰대지만) 남성작가가 쓴 이야기라서 그런지 어딘가 교묘하게 가부장적인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인데 죽자고 덤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몇몇 포인트들이 좀 거슬렸다. 그야말로 딱 몇 개의 포인트이다. 전체적으로는 가정적이고 이해심 많고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책 속의 남편인 '나'는 가정적이다. 아내의 마음을 보살피려고 노력하고, 애쓴다는 느낌이 든다. 아내에게 아내만의 시간을 주려고 주말이면 셋이나 되는 아이를 혼자 보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내가 막내를 씻기는 동안 자신은 첫째와 둘째의 잠자리를 봐주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동시에 어머니가 집으로 오시는 장면에서 우등고속을 타지 않은 사실이 몹시 애가 타고 부모님의 병원비를 위해 대출을 알아보는 효자이기도 하다. 당연하다. 나도 내 엄마가 우리집에 올 때 우등고속을 타고 왔으면 좋겠고, 부모님이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하면 금전적 도움을 드리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나는 며느리여서 그런지 미리 연락없이 오신 시어머니에 뜨악했고, 병원비 때문에 아내와 상의없이 대출을 알아본 것이 뜨악했고, 그 와중에 아내가 한푼 두푼(진짜 1,2,3만원이라고 찍힌 푼돈!) 모아 만들어 놓은 통장을 받아들고 감동하는 장면을 넣었다는 것에 뜨악했다. 모르겠다, 나라는 여자가 못된 사람인지 어쩐지 그냥 웃어지지가 않았다. 이게 그냥 소설이라면 그래서 남편이 부모님의 병원비라는 과제를 두고 아내에게 감동하는 순간을 만들고 싶어서 만들어 낸 순전한 허구라면 그 감동의 순간을 위해 이런 장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너무 작위적이고 남성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정말 반찬값을 아껴서 만원, 2만원씩 통장에 넣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남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을 결국은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남편의 부모님을 위해서 척, 하고 내놓는게 세상 멋진 일이고 감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는게 웃겼다. 두살 터울의 아이들을 모유수유 하면서 남편 끼니를 챙기겠다고 매번 새밥을 하는 아내를 추켜세우는 장면까지 더하고 보면 여자란, 혹은 현모양처란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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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전쟁 이스케이프 Escape 3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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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하트는 토미 하트, 제 2차 세계대전에 항법사로 참전했다가 전우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아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남자의 이름이고, 그가 일생을 두고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전쟁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이 될 때까지 차마 잊지 못한 기억, 그는 항법사로 B-25기에 타고 있었고 하늘을 보고 지도를 읽고 기지로 돌아가는 길만 알려주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적함이 들어왔고 그들은 토미만을 비행기 밖으로 탈출시키고 격추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포로수용소로 가게 되었고 매일밤 같은 꿈을 꾸며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참전 전에 하버드에서 법을 공부하던 토미는 남는 시간을 모두 법전을 읽고 공부하는데 쏟았고, 족제비라 불리는 경비 프리츠에게 미제 담배를 쥐어주며 영국군 수용소로 넘어가 필립이라는 전직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총탄이 빗발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전장에서 포로수용소로 오게 된 사람들의 삶이란 비참한 한편 권태로웠다. 춥고 벌레가 끓고 더러운 막사지만 자기들만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철조망이 있었고, 그 선을 넘는 순간 총탄이 쏟아져 벌집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감금상태였고,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라도 자유를 꿈꿨다. 언제 끝날지 모를 종전을 기다리며 무작정 기다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라도 철조망 바깥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포로들과 그들을 막기 위해 아침이면 끝도 없는 점호를 하고 또 하는 독일군. 보급품만으로 지내기엔 어느 누구라도 배고프고 추운 수용소에도 수완있는 장사치는 있게 마련이었고, 빅이라 불리는 그에게는 없는 것이 없었고 거래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누구와도 친구일 수 있고, 누구와도 친구가 아니었던 빅은 수용소로 새로 들어온 미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 링컨 스콧을 대놓고 경멸하고 무시했다. 그러던 중 빅은 목이 잘린 채 화장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스콧이 용의자로 체포된다. 독일군은 미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다며 제대로 된 재판을 열라고 주문했고, 토미는 스콧의 변호를 맡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체포되어 옷과 신발을 모두 빼앗긴 채 수감된 스콧에게는 이미 조작된 증거들이 한가득이었고, 변호를 맡은 토미에게도 협박의 손길이 거칠게 다가왔다.

어쩌면 용의자가 된 그 순간 스콧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총살을 당할거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변호하는 토미를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자신의 미래도, 그 어떤 백인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토미와 영국군 포로이자 전직경찰이었던 휴는 스콧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과연 스콧을 사형대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법정 스릴러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수용소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힘에 의해 희생양이 된 스콧은 물론이려니와 토미까지도 그들이 만들어낸 게임에서 하나의 말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몰랐던 건 토미가 그들 생각보다 훨씬 똑똑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가 탔던 마지막 비행기 '러블리 리디아'에서 그의 역할이란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그는 전우들을 귀가시키지 못했다. 아마도 토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또 한번의 기회를 꼭 살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모든 조작된 증거와 위협, 방해 등을 헤치고 나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콧의 재판결과와 별개로 그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들 또한 흥미로웠고, 충격적이었다. 똑같은 포로라도 다 달랐던 미군과 영국군, 러시아군의 상태. 그리고 스콧이 자기편을 구하기 위해 했던 행동 때문에 벌어졌던 끔찍한 결과. 전쟁이란 그렇게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결과들을 남긴다. 토니에게 독일군 수용소 소장이 건넸던 러시아군의 피묻은 모자는 스콧의 재판결과보다도 더 강렬하게 가슴에 남았다. 적군을 향해 쏜 총알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부수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전쟁의 비참함이다.

전쟁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법정스릴러인데다 여러 인물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묘사, 1940년대의 시대적 상황까지 맞물려 상당히 대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전쟁과 관련한 여러 편의 작품들을 접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허겁지겁 읽어내려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700여 페이지의 책을 결국은 끝내고 나니 새벽 4시 20분이었으니 말이다. 역사 스릴러,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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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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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어쩌면 유일한 버킷리스트는 바로 북카페를 내는 일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섬에다가 서점을 내고 싶어졌다. 사실 섬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출판사 영업사원인 어밀리아가 앨리스섬에 있는 '아일랜드 서점'으로 카탈로그를 들고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것이지만 책의 시작은 누군가에게 어떤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책소개가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세번째 책이 등장했을 때 그만 울고 말았다.

아일랜드 서점의 주인인 에이제이와 어밀리아의 첫만남은 좋지 않았다. 아일랜드 서점을 맡았던 하비가 죽고 처음으로 방문한 어밀리아는 들아가자마자 서점에 쌓아 둔 책탑을 무너뜨렸고, 괴팍한데다 책에 대한 자기만의 확실한 고집이 있었던 에이제이와에게 어밀리아가 내민 책의 리스트는 전부 맘에 들지 않았다. 사실 섬의 유일한 서점인 아일랜드 서점은 에이제이가 만든 것도 아니었다. 섬에서 나고 자란 그의 아내 니콜이 문을 열었고, 그래서 에이제이도 함께 했었지만 니콜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이제 니콜을 그리워하며 혼자 남은 에이제이는 장사에 크게 관심도 없다. 게다가 상당히 편협한 책에 대한 고집 때문에 서점의 매출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에이제이는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 초판본을 소중히 간직하며 언젠가 정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경매에 붙여 그 돈으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술에 취해 정신없던 밤 그 책은 사라지고, 그 책 대신 두살짜리 마야가 서점으로 뚝 떨어졌다.

문학적 탐정소설이니 문학적 판타지니 하는 장르 잡탕도 싫습니다. 문학은 문학이고 장르는 장르지, 이종교배가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는 경우는 드물어요. 어린이책, 특히 고아가 나오는 건 질색이고, 우리 서가를 정소년물로 어수선하게 채우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사백 쪽이 넘거나 백오십 쪽이 안 되는 책도 일단 싫어요. TV리얼리티쇼 스타의 대필소 소설과 연예인 사진집, 운동선수의 회고록,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소설, 반짝 아이템, 그리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뱀파이어물이라면 구역질이 납니다. 데뷔작과 칙릿, 시집, 번역본도 거의 들여놓지 않아요. 시리즈물을 들이는 것도 내키진 않지만 그건 내 주머니 사정상 어절 수 없고. 당신 편의를 봐서 말하는데, '빅히트 예정 시리즈' 같은 건 그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안착하기 전까지는 나한테 말도 꺼내지 마쇼. 그리고 로먼 씨, 난 무엇보다 말이죠, 별볼일없는 노인들이 별볼일없는 자기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고 끼적거린 얄팍한 회상록들은 도대체 참을 수가 없더군요.

<섬에 있는 서점> p.25

까다롭고 괴팍한 남자였지만 그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로 남겨진 것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마야를 서점에 두고 간 마야의 엄마는 자신은 비록 아이를 버리지만 아이가 책과 가까이하며 자라길 바랐고, 그래서 서점에 남겨둔다는 쪽지를 남긴 채 섬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싫어하는게 그렇게도 많은 에이제이는 갑작스럽게 두살배기 여자아이의 임시위탁가정이 되었다가 마침내는 입양까지 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초판본에 대한 관심으로 한번, 그리고 마야의 등장으로 또 한번 아일랜드 서점은 앨리스섬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애초에 니콜을 잃었을 때 섬사람들은 니콜에 대한 슬픔으로 오히려 서점에 드나들기를 주저했지만 이 일련의 두 사건으로는 오히려 서점으로 오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졌다. 우선 경찰인 램비에이스가 드나들었고, 서점에 두고 온 선글라스조차도 맡아두지 않을 정도로 까칠했던 에이제이가 마야를 방치할까봐 앨리스 섬의 엄마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마야를 위해서 책과 구글에서는 배울 수 없는 종류의 지식들을 베풀었고, 그렇게 들러서는 책과 잡지들도 구매하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어떤 일, 그러니까 자기들에게는 벌어지지 않는(혹은 벌어졌어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그런 종류의 일이 벌어지면 마음에 들어했다. 여주인공을 재고 자르고 판단하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 자식을 버리는 여자는 도를 넘은 거지만, 남편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면 대체로 환영이다(남자가 죽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 금상첨화다).

<섬에 있는 서점> p.91

에이제이는 돈이 될만한 책이었던 초판본을 잃어버렸지만 세상으로의 무관심, 자기안으로만 굳어져가는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마야를 만났다. 그의 곁에는 죽은 동생 대신 가끔 그를 돌봐주던 처형 이즈메이가 있었고, 경찰인 램비에이스가 있었고, 그리고 4년 동안 출판사의 영업사원이었던 어밀리아가 있었고, 그리고 마야가 커나가고 있었다. 작품의 맨 첫장 그가 소개하는 책이 바로 그 마야에게 소개하는 책들임을 알게 되었고, 그 소개말 안에 들어 있던 단어들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에 감동받았다. 그 감동과 작가의 유머감각 덕분에 깔깔깔 웃으며, 살짝 눈물지으며 술술 넘어가던 중에 우리는 또 한번 인생의 시련을 만나듯 에이제이의 시련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분위기에 걸맞게 신파는 아니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고, 그녀는 그의 환자복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힘주어 잡았다. "난 당신이랑 섹스하는게 좋아." 그녀가 말했다. "수술이 끝나고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그래도 당신이랑 섹스해도 돼?" 그녀가 물었다.

"물론이지." 에이제이가 말했다.

"날 경멸하지는 않을 거지?"

"안 해."

<섬에 있는 서점> p.294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내 인생은 이 책들 안에 있어, 이 책들을 읽으면 내 마음을 알 거야.

우리는 딱 장편소설은 아니야.

우리는 딱 단편소설은 아니야.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단편집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만큼 읽었다. 성공작이 있으면 실패작도 있다. 운이 좋으면 뛰어난 작품도 하나쯤 있겠지. 결국 사람들은 그 뛰어난 것들만 겨우 기억할 뿐이고, 그 기억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섬에 있는 서점> p.301

누구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서점에 혼자 남겨진 남자는 자꾸만 혼자만의 동굴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를 세상밖으로 꺼내 준 것은 다른 종류의 사랑과 사람들이었다. 매일매일이 단편소설인 것처럼, 어떤 단편은 아무 의미도 존재감도 없이 지나가고 또 어떤 단편은 슬픈 이야기일 수도, 또 어떤 단편은 기쁜 이야기일 수도, 대단히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단편집이 된다. 한편의 따뜻한 소설인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에이제이가 추천하는, 어밀리아가 이야기하는, 경찰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는 경찰 램비에이스가 만든 북클럽 사람들이 읽는 소설들이 잔뜩 나오는 한권의 두툼한 책카탈로그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사랑하는 작가와 책이름이 나오는 것이 반갑고 잘 모르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와 책들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운 그런 소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 작은 섬에 있는 작은 서점에 가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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