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대한민국이 공정하다는 거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누가 그래요? 대한민국이 공정하다고?
꿈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 그 꿈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 채 갑작스럽게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내가 기억하는 한 대한민국이, 아니 세상이라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래서 종교활동을 접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등반, 고등반을 거치고 대학부활동도 했고, 교회부반주자에 성가대, 유치부보조선생님까지 활동도 참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불공정한 세상 속에서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이라도 아니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증표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이라도 공정하려고 애쓰며 사는 모습을 봤더라면 나는 지금쯤 교회의 흔해빠진 집사님 혹은 권사님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대학교 민주광장 뙤약볕 아래서 어설프게 구호를 외치던 혈기왕성 하던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의 '세상이 다 그렇다'는 변명이 그렇게도 치졸해보이고 어줍잖고 재수없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자유경제를 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데 있어 경쟁이란 필연적인 요소이고, 경쟁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 혹은 더 나은 자와 뒤처지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능력치에 다름이 있기에 이미 출발선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체급이 다르면 당연히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양한 인간군이 모인 사회이기에 '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단순히 다른 출발선과 다른 체급 뿐만 아니라 뒤에서 벌어지는 온갖 반칙들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과연 모든 선수들을 공정하게 보호하는가, 에 대해서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믿음이 없다. 불신의 시대.
여기 분노를 분노로만 두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다. 법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못한 부패의 대명사 같은 인물들을 응징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집행하는 사람들이라 여기고 당연히 벌받아야 할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 잔인한 수법이 문제가 될 법도 하지만 국민정서는 당연히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며 오히려 그들을 응원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에서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갔던 칼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물으며 살인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자신은 살인도 해봤고, 사람도 죽여봤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전쟁통에 사람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적군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전장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와도 같은 행위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였다. 집행관들은 자신들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발생한 인명피해는 그야말로 전쟁 중에 일어나는 부수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잔인할 필요까진 있었는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