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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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대한민국이 공정하다는 거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누가 그래요? 대한민국이 공정하다고?

꿈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 그 꿈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 채 갑작스럽게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내가 기억하는 한 대한민국이, 아니 세상이라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래서 종교활동을 접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등반, 고등반을 거치고 대학부활동도 했고, 교회부반주자에 성가대, 유치부보조선생님까지 활동도 참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불공정한 세상 속에서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이라도 아니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증표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이라도 공정하려고 애쓰며 사는 모습을 봤더라면 나는 지금쯤 교회의 흔해빠진 집사님 혹은 권사님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대학교 민주광장 뙤약볕 아래서 어설프게 구호를 외치던 혈기왕성 하던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의 '세상이 다 그렇다'는 변명이 그렇게도 치졸해보이고 어줍잖고 재수없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자유경제를 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데 있어 경쟁이란 필연적인 요소이고, 경쟁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 혹은 더 나은 자와 뒤처지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각자의 능력치에 다름이 있기에 이미 출발선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체급이 다르면 당연히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양한 인간군이 모인 사회이기에 '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단순히 다른 출발선과 다른 체급 뿐만 아니라 뒤에서 벌어지는 온갖 반칙들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과연 모든 선수들을 공정하게 보호하는가, 에 대해서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믿음이 없다. 불신의 시대.

여기 분노를 분노로만 두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다. 법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못한 부패의 대명사 같은 인물들을 응징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집행하는 사람들이라 여기고 당연히 벌받아야 할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그 잔인한 수법이 문제가 될 법도 하지만 국민정서는 당연히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며 오히려 그들을 응원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에서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갔던 칼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물으며 살인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자신은 살인도 해봤고, 사람도 죽여봤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전쟁통에 사람을 죽인 것은 '살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적군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전장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와도 같은 행위라는 것이고,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였다. 집행관들은 자신들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와중에 발생한 인명피해는 그야말로 전쟁 중에 일어나는 부수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잔인할 필요까진 있었는가에 대해서.

"우린 펜대만 붙잡고 투덜거리는데, 그자들은 실행에 옮기고 있잖아. 우리보다 백 배 천 배는 낫지."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 차장이 끼어들었다.

"그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전쟁 중에 벌이는 살인 행위는 모두 정당하지 않은가?"

"저, 전쟁 중이라니요?"

"그자들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거야...... 꼭 총칼을 들어야 전쟁인건가?"

<집행관들> p.235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누군가는 좋은 변호사를 써서 쉽게 빠져나오는가 하면 누군가는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서 무거운 형을 받기도 하는데서 기인한 말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씌였던 걸 보면 인간세상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금에만 특별히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법의 집행이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반드시 죄를 지은만큼 똑같이 그대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가 절대적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를 바라는 것이고 또 그 죄의 무게에 걸맞는 무게를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야말로 '복수'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형벌을 집행하는 데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았지. 힘이 세든 나이가 많든 부자든 간에 똑같이 집행했던 거야. 죄를 지으면 누구나 법대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인도에 다녀온 후에도 한동안 그 마을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더군."

<집행관들> p.38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밝혔듯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가상의 공간안에서나마 기득권들의 횡포에 최대한으로 강력한 벌을 내리고 싶었던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 정의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패한 사람들은 말한다. 너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 '너 하나'가 온 세상에 가득 찬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온전한 세상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도 나는 안다. 언젠가 어떤 드라마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왔다. 썩어 문드러진 놈이 마지막을 맞이하며 '나 하나를 처리하면 다 될 것 같지? 하지만 나 같은 놈은 세상 어디에든 있다.'고 말했을 때 정의로운 주인공이 그랬다. '너 같은 놈이 다시 나타난다면 어디에선가 나 같은 놈도 또 나타난다.'고! 그래서 나는 믿는다. 썩고 부패한 놈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그 썩은 놈들을 처단하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고 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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