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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의 전쟁 ㅣ 이스케이프 Escape 3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의 하트는 토미 하트, 제 2차 세계대전에 항법사로 참전했다가 전우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아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남자의 이름이고, 그가 일생을 두고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전쟁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이 될 때까지 차마 잊지 못한 기억, 그는 항법사로 B-25기에 타고 있었고 하늘을 보고 지도를 읽고 기지로 돌아가는 길만 알려주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적함이 들어왔고 그들은 토미만을 비행기 밖으로 탈출시키고 격추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포로수용소로 가게 되었고 매일밤 같은 꿈을 꾸며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참전 전에 하버드에서 법을 공부하던 토미는 남는 시간을 모두 법전을 읽고 공부하는데 쏟았고, 족제비라 불리는 경비 프리츠에게 미제 담배를 쥐어주며 영국군 수용소로 넘어가 필립이라는 전직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총탄이 빗발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전장에서 포로수용소로 오게 된 사람들의 삶이란 비참한 한편 권태로웠다. 춥고 벌레가 끓고 더러운 막사지만 자기들만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철조망이 있었고, 그 선을 넘는 순간 총탄이 쏟아져 벌집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감금상태였고,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라도 자유를 꿈꿨다. 언제 끝날지 모를 종전을 기다리며 무작정 기다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라도 철조망 바깥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포로들과 그들을 막기 위해 아침이면 끝도 없는 점호를 하고 또 하는 독일군. 보급품만으로 지내기엔 어느 누구라도 배고프고 추운 수용소에도 수완있는 장사치는 있게 마련이었고, 빅이라 불리는 그에게는 없는 것이 없었고 거래하지 못할 것이 없었다. 누구와도 친구일 수 있고, 누구와도 친구가 아니었던 빅은 수용소로 새로 들어온 미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 링컨 스콧을 대놓고 경멸하고 무시했다. 그러던 중 빅은 목이 잘린 채 화장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스콧이 용의자로 체포된다. 독일군은 미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다며 제대로 된 재판을 열라고 주문했고, 토미는 스콧의 변호를 맡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체포되어 옷과 신발을 모두 빼앗긴 채 수감된 스콧에게는 이미 조작된 증거들이 한가득이었고, 변호를 맡은 토미에게도 협박의 손길이 거칠게 다가왔다.
어쩌면 용의자가 된 그 순간 스콧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총살을 당할거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변호하는 토미를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자신의 미래도, 그 어떤 백인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토미와 영국군 포로이자 전직경찰이었던 휴는 스콧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과연 스콧을 사형대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법정 스릴러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수용소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힘에 의해 희생양이 된 스콧은 물론이려니와 토미까지도 그들이 만들어낸 게임에서 하나의 말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몰랐던 건 토미가 그들 생각보다 훨씬 똑똑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가 탔던 마지막 비행기 '러블리 리디아'에서 그의 역할이란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그는 전우들을 귀가시키지 못했다. 아마도 토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또 한번의 기회를 꼭 살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모든 조작된 증거와 위협, 방해 등을 헤치고 나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콧의 재판결과와 별개로 그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들 또한 흥미로웠고, 충격적이었다. 똑같은 포로라도 다 달랐던 미군과 영국군, 러시아군의 상태. 그리고 스콧이 자기편을 구하기 위해 했던 행동 때문에 벌어졌던 끔찍한 결과. 전쟁이란 그렇게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결과들을 남긴다. 토니에게 독일군 수용소 소장이 건넸던 러시아군의 피묻은 모자는 스콧의 재판결과보다도 더 강렬하게 가슴에 남았다. 적군을 향해 쏜 총알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부수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전쟁의 비참함이다.
전쟁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법정스릴러인데다 여러 인물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묘사, 1940년대의 시대적 상황까지 맞물려 상당히 대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전쟁과 관련한 여러 편의 작품들을 접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허겁지겁 읽어내려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700여 페이지의 책을 결국은 끝내고 나니 새벽 4시 20분이었으니 말이다. 역사 스릴러,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