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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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도착의 사각>, <도착의 귀결>까지 시리즈로 이어져있다. 여기서의 도착이란 [감정도착상태, 혹은 도착증상]의 도착이다. 오리하라 이치를 서술트릭의 대가라고 설명하고 있고, 워낙에 다들 재미있다고 하여 선택하게 되었다.

 

일단 서술트릭이 뭔지부터 알아보았다. 예를 들어보자.  “자, 당신이 이제 버스 운전사입니다. 승객은 남자 다섯에 여자 다섯 명이 타고 있어요.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남자 둘이 내리고 여자 둘이 탔습니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남자 셋과 여자 한 명이 탔습니다. 세 번째 정거장에서 남녀 커플이 내렸습니다. 네 번째 정거장에서 할머니 두 분이 타고 아가씨가 둘 내렸습니다. 다섯 번째 정거장에서 아저씨 세 분이 올라탔습니다......  그러면 버스 운전사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글로 이렇게 써놓았으니 처음 보는 분들도 쉽게 함정을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버스 운전사의 나이는 바로 ‘당신’의 나이이다. 정거장마다 오르내리는 남자와 여자 승객의 수에 신경을 쓰느라 맨 처음에 “당신이 버스 운전사”라고 한 가정을 까맣게 잊고 만다. 마지막에 “당신이 운전사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해 주어야 비로소 일종의 난센스 퀴즈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을 감추거나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니니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과장하여 정작 중요한 일들을 잘 보이지 않게 가리거나 특정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 방법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착각하게 만드는 일을 미스터리에서는 ‘미스 리드(mislead)’라고 하는데,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처럼 작가는 사실을 쓰고 있는데도 독자가 그 글을 오해하여 마지막에는 반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서술의 기법을 서술트릭이라고 하고, 추리소설의 한 기법으로도 쓰이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서술트릭을 이용한 이야기라고 하니 한 번 읽어봐야겠다. 엘러리 퀸은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던데..

작가지망생 야마모토 야스오가 월간추리 신인상을 목표로 작품을 완성하지만 사고로 잡품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신인상 수상작을 보니 자신이 쓴 작품이고, 수상자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다. 엄청난 상금과 명예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야마모토가 복수를 결심하고.. 원작자와 도작가를 둘러싼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제의 상황과 작품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야마모토의 일기,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나름의 상황을 구성하고 줄거리를 이해한다. 여기에 서술적 트릭이 숨겨져 있고, 작품 말미에 트릭은 발견된다. 이야기 상으로 반전이 있을 때와는 달리 서술트릭의 경우,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보게 되고 '아, 뭐야...속았잖아?'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신인상 수상을 위해 끊임없이 소설을 쓰고 그 일에 집착하는 야마모토의 도착증세와 작품을 훔치는 도작이라는 소설의 중심단어인 '도착'과 '도작'은 일본어로 둘다 '도사쿠'라고 발음된다고 하니, 외국문학이기 때문에 조금은 놓치고 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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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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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짓된 나를 내세워 남들 앞에 자존심만 세우는 것 말고,

진정으로 나에 대한 좋은 시각을 갖는 것,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나를 지키는 힘,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상담심리학의 여러가지 기법 중에서도 특별히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유년 시절의 영향으로 스스로에 대한 잘못된 열등감을 갖게 되는 경우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나중까지도 유지하게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지은이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이론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 있는 많은 임상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주 극단적인 예들이긴 하지만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실제의 예를 들어주고 있다.

우리가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view point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다이어트를 하다가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충분히 날씬한데도 불구하고 거울을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가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제로 보이는 눈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보는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면

누구를 만나건, 무슨 일을 하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열등감으로 비롯한 자학, 자기비하, 더 나아가서는 대인기피, 광장공포등의

여러가지 신경증적인 문제가 유발될 수 있고, 더 발전하면 정신과적 문제까지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을 바꾸는 것으로

저자는 한 개인이 유아시기에, 혹은 아동의 시기에 받았던 상처와 문제가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어떤 일을 당하든지 그 인지도식을 이용하여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므로

열등감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고, 우주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고도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야 않겠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위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적어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게 결론이 되겠다.

 

이미 자존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열듬감에 빠져버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으로, 주변의 지원시스템으로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으며

되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결국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쥐고 있는 열쇠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문의 자물쇠를 열어주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며

동시에 가장 필요한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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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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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살인을 저지른 날 나는 살해되었다. 남자는 내가 너무 쉽게 죽어 버린 걸 아쉬워한다. 그는 내게서 몸을 떼 바지를 주워 입는다. 질식사한 내 얼굴은 어떨지 궁금하다. 시퍼럴까? 아니면 시뻘걸까? 어느 쪽이더라도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곁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살아 있었을 때 그렇게 다정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라면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p.29)

 

"나는 지옥에 갑니까? 천국에 갑니까?"

"타십시오, 당신이 갈 곳은 지옥도 천국도 아닙니다"

.

.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막 지옥에서 해방된 남자를 환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지난 생이라고 기억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착하게 사세요, 또 뵙죠."(/p.263)

 

삶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현재가 바로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굳이 서늘한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보지 않더라도 요즘은

삶이, 세상자체가 호러이고 스릴러인지도 모른다.

생활고 때문에 맡겨진 열살 난 조카를 등하굣길에 태워다니면서까지 성적으로 폭행한 삼촌이 있는가하면,

교회 화장실에서 아홉살 난 어린 소녀에게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정도로 무참하게 짓밟은 짐승같은 놈이 있는가하면,

15살 밖에 먹지 않은 소년의 미니홈피에는 남자만을 상대로 원조교제를 하겠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차마 눈으로 보기에 역겨운 실제상황까지도 사진으로 올려있는 이 세상이

호러고 스릴러고, 지옥이 아니라면 그 어디겠는가 말이다.

 

강지영의 세계는 단편이라는 방식으로 근친상간, 살인, 유괴, 고문, 성전환자의 사랑, 동성애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술술 읽어나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기분나쁜 뉴스를 보고 난 것처럼 입안이 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나 자극적이고, 그러면서도 한편 통속적이기도 하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참으로 반가운 소설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일본의 장르소설을 보는 것과는 달리 마음이 불편한 것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너무나 콕 꼬집어내서가 아닐까 싶다.

일본 장르소설을 볼 때는,

내 일이 아니라 제 3자의 괴로움이나 아픔을 볼 때처럼 객관적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가 소설에서처럼 많이 타락하고, 비참하고, 참혹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

실제로 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면

강지영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가 실제로 접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실제로 강지영은 소설의 기본 모티브를 1924년 생인 할머니에게서 따왔다고 했다.

장르소설로써 아직 깊이있는 울림까지는 모르겠고,

더군다나 소소한 이야깃거리만으로도 서늘함을 주기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로 가득채운 이야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느끼지만,

우리나라 장르소설계의 매혹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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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 실크 팩토리
타시 오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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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커튼과도 같은 겉표지가 인상적인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말레이계 영국인 저자인 타시 오의 작품이다.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킨타 협곡의 조니 림이라는 남자의 직물공장이다.

조니 림이라는 인물은 킨타 협곡의 전설이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미스터리 하다.

조니 림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이 소설은 화자가 셋이다.

그의 아들 재스퍼와  아내 스노, 그리고 영국인 친구 피터이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이란, 우리가 믿는 기억이란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한다.

전지적작가 시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긴 호흡의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조니 림이라는 인물에 대해

재구성하고 또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또한 제목으로 쓰인 하모니 실크 팩토리라는 조니 림의 직물공장도 역설적이다. 

하모니...조화...

실크, 우리가 생각하는 실크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오묘하다. 

하지만 소설속의 인물들, 주인공인 조니림과 부자지간이며, 부부이며, 친구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조화롭지 못하며 부드럽고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부조화스럽고 부자연스러우며 딱딱하고 어둡고 감추어져있다



20세기 전만 말레이시아는 초기 영국의 식민통치에 이어 일본군 점령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 때, 조니 림은 처음 등장한다.

조니 림의 어린 시절과 결혼까지의 시기를 이야기 하는 화자는 첫번째 화자인 아들 재스퍼이다.

재스퍼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차가운 냉혈한이며, 사기꾼이고 살인자이다.

조니 림는 아들에게는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술수를 부려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며 명망있는 집안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을 한 조니.

일본군에게 마을이 점령당했을 때는 일본에 맞서는 척 하면서 동포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한 조니.

그런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고 재스퍼는 고발한다.

 

두번째 화자는 아내 스노이다.

아들의 이야기에서 보였던 스노는 얌전하고 귀한 양가집 규수이다.

그러나 본인의 입으로 털어 놓는 이야기에서는 조금 다르다.

조니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도,

여태껏 보아 온 사람들과 다른 조니에게  관심을 보인 것도,

결혼을 하고 싶어했던 것도 스노이다.

적극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여인이 스노였다.

그런 스노가 보는 조니는 열등감과 성적장애를 가진 고개숙인 슬픈 남자였을 뿐이다.

부유한 가정이었으므로 스노의 집에는 영국인들도, 일본인들도 드나들었다.

스노의 부모님들은 대놓고 조니를 무시했고, 스노의 부모, 영국인,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니는 한 없이 작아졌다.

아는 것도 없는 무식한 직물장사꾼이 조니였던 것이다.

한 때의 호기심으로 조니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스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무 열등감에 휩싸인 나머지 스노의 곁에서는 숨조차 쉬지 못할 만큼 작아져버린 남자가 바로 조니였다.

 

세번째 화자는 영국인 친구인 피터이다.

허풍도 있고, 일생에 친구라곤 없었던 피터가 처음으로 친구라고 여겼던 인물이 바로 조니이다.

그가 바라보는 조니는 공산주의자라는 자신의 처지와 곧 일본군들이 몰려올 곳에서의 미래,

절박한 현실..그리고 아내에 대한 걱정으로 어두운 표정을 한 순박한 아시아인이다.

자기의 아내와 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묘하게 빛나는 실크를 보여주며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비록 더듬거리는 영어였지만 눈에 빛을 내며 이야기 하는 이가 바로 조니 림이었다.

일생에 단 하나뿐인 친구였지만 피터는 결국 스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만다.

그로 인한 죄책감..피터는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에서 자신을 찢어낸다.

스노의 어깨에 자신의 팔이 얹혀져 있는 사진...그 사진은 재스퍼가 본 사진이다.

 

조니림을 평가하는 아들의 말투는 차갑고 냉정하고 신랄하다.

단두대에 죄인을 세우는 판사와도 같다고나 할까?

그의 기억은, 그가 보는 조니림은 조니림의 어느 부분이었을까??

세 명의 화자가 모두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어떤 부분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 명의 화자가 이야기한 조니 림이라는 인물을 재구성해보면 조니림은 한없이 불쌍하고 가엾은 남자였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힘이 모자랐던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아들을 사랑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

 

기억이 곧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도 아니다.

나 자신조차도 나만 아는 나와 남만 아는 나,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나도 그리고 남도 모르는 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당신은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조니 림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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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랄라
안니 M.G. 슈미트 지음, 아카보시 료에이 그림,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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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우리가 아는 세상과는 참 많이 다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모티브로 한 막장 드라마와는 한참 다르다.

생각지도 못한 기승전결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이 읽는 동화책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름마저도 너무 상큼하고 귀여운 위플랄라는 마술을 부리는 작은 아이이다.

마술을 부리는 일에 서툴러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인간세계로 온 위플랄라로 인해

브롬 선생댁은 일대 혼란을 겪는다.

매일 바쁘기만 하고 아이와 놀아 줄 시간도 없고,

별 특별한 일없이 지나가는 일상일상은 나름 무료하기까지 하다.

그런 일상 속에 위플랄라가 나타나고, 친구들사이에선 잘 되지 않던 마술이 갑자기 잘 된 위플랄라 덕분에

브롬 선생댁 가족들도 모두 작아지고, 모험은 시작된다.

 

칫,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한 순간 책의 재미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우와, 만약 우리식구가 다 작아진다면!

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위플랄라와 함께 모험을 즐길 준비가 된 것이다.

 

인간들 속에서 인간들과 같은 크기로 살아갈 때는

바쁘기만 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던 가족이

너무 작게 변해버려서 인간세상자체가 위험이고 난관이 되자

용기와 사랑을 나누면서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너무나 뻔한 스토리라고?

그렇지만 그 뻔한 스토리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란 참으로 애틋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나 뻔해서 잊고 있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면 너무나 큰 것을 잃고 나서일런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위플랄라의 덕으로 아무것도 잃지 않고 되찾았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잔소리 하는 엄마,

얼굴도 보기 힘든 아빠,

무료한 일상 속에서 우리아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엄마와 아빠가 자기 손가락만하게 바뀌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할까?

 

오늘 같은 날은 어디선가 갑자기 위플랄라가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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