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생전 처음 살인을 저지른 날 나는 살해되었다. 남자는 내가 너무 쉽게 죽어 버린 걸 아쉬워한다. 그는 내게서 몸을 떼 바지를 주워 입는다. 질식사한 내 얼굴은 어떨지 궁금하다. 시퍼럴까? 아니면 시뻘걸까? 어느 쪽이더라도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곁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살아 있었을 때 그렇게 다정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라면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p.29)

 

"나는 지옥에 갑니까? 천국에 갑니까?"

"타십시오, 당신이 갈 곳은 지옥도 천국도 아닙니다"

.

.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막 지옥에서 해방된 남자를 환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지난 생이라고 기억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착하게 사세요, 또 뵙죠."(/p.263)

 

삶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현재가 바로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굳이 서늘한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보지 않더라도 요즘은

삶이, 세상자체가 호러이고 스릴러인지도 모른다.

생활고 때문에 맡겨진 열살 난 조카를 등하굣길에 태워다니면서까지 성적으로 폭행한 삼촌이 있는가하면,

교회 화장실에서 아홉살 난 어린 소녀에게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정도로 무참하게 짓밟은 짐승같은 놈이 있는가하면,

15살 밖에 먹지 않은 소년의 미니홈피에는 남자만을 상대로 원조교제를 하겠다는 광고문구와 함께

차마 눈으로 보기에 역겨운 실제상황까지도 사진으로 올려있는 이 세상이

호러고 스릴러고, 지옥이 아니라면 그 어디겠는가 말이다.

 

강지영의 세계는 단편이라는 방식으로 근친상간, 살인, 유괴, 고문, 성전환자의 사랑, 동성애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술술 읽어나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기분나쁜 뉴스를 보고 난 것처럼 입안이 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나 자극적이고, 그러면서도 한편 통속적이기도 하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참으로 반가운 소설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일본의 장르소설을 보는 것과는 달리 마음이 불편한 것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너무나 콕 꼬집어내서가 아닐까 싶다.

일본 장르소설을 볼 때는,

내 일이 아니라 제 3자의 괴로움이나 아픔을 볼 때처럼 객관적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가 소설에서처럼 많이 타락하고, 비참하고, 참혹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

실제로 있을 법한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면

강지영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가 실제로 접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실제로 강지영은 소설의 기본 모티브를 1924년 생인 할머니에게서 따왔다고 했다.

장르소설로써 아직 깊이있는 울림까지는 모르겠고,

더군다나 소소한 이야깃거리만으로도 서늘함을 주기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로 가득채운 이야기에는 아직 부족함을 느끼지만,

우리나라 장르소설계의 매혹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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