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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 실크 팩토리
타시 오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화려한 커튼과도 같은 겉표지가 인상적인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말레이계 영국인 저자인 타시 오의 작품이다.
하모니 실크 팩토리는 킨타 협곡의 조니 림이라는 남자의 직물공장이다.
조니 림이라는 인물은 킨타 협곡의 전설이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미스터리 하다.
조니 림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이 소설은 화자가 셋이다.
그의 아들 재스퍼와 아내 스노, 그리고 영국인 친구 피터이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이란, 우리가 믿는 기억이란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한다.
전지적작가 시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긴 호흡의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조니 림이라는 인물에 대해
재구성하고 또 재구성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또한 제목으로 쓰인 하모니 실크 팩토리라는 조니 림의 직물공장도 역설적이다.
하모니...조화...
실크, 우리가 생각하는 실크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오묘하다.
하지만 소설속의 인물들, 주인공인 조니림과 부자지간이며, 부부이며, 친구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조화롭지 못하며 부드럽고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부조화스럽고 부자연스러우며 딱딱하고 어둡고 감추어져있다.
20세기 전만 말레이시아는 초기 영국의 식민통치에 이어 일본군 점령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 때, 조니 림은 처음 등장한다.
조니 림의 어린 시절과 결혼까지의 시기를 이야기 하는 화자는 첫번째 화자인 아들 재스퍼이다.
재스퍼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차가운 냉혈한이며, 사기꾼이고 살인자이다.
조니 림는 아들에게는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술수를 부려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며 명망있는 집안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을 한 조니.
일본군에게 마을이 점령당했을 때는 일본에 맞서는 척 하면서 동포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한 조니.
그런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고 재스퍼는 고발한다.
두번째 화자는 아내 스노이다.
아들의 이야기에서 보였던 스노는 얌전하고 귀한 양가집 규수이다.
그러나 본인의 입으로 털어 놓는 이야기에서는 조금 다르다.
조니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도,
여태껏 보아 온 사람들과 다른 조니에게 관심을 보인 것도,
결혼을 하고 싶어했던 것도 스노이다.
적극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여인이 스노였다.
그런 스노가 보는 조니는 열등감과 성적장애를 가진 고개숙인 슬픈 남자였을 뿐이다.
부유한 가정이었으므로 스노의 집에는 영국인들도, 일본인들도 드나들었다.
스노의 부모님들은 대놓고 조니를 무시했고, 스노의 부모, 영국인,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니는 한 없이 작아졌다.
아는 것도 없는 무식한 직물장사꾼이 조니였던 것이다.
한 때의 호기심으로 조니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스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무 열등감에 휩싸인 나머지 스노의 곁에서는 숨조차 쉬지 못할 만큼 작아져버린 남자가 바로 조니였다.
세번째 화자는 영국인 친구인 피터이다.
허풍도 있고, 일생에 친구라곤 없었던 피터가 처음으로 친구라고 여겼던 인물이 바로 조니이다.
그가 바라보는 조니는 공산주의자라는 자신의 처지와 곧 일본군들이 몰려올 곳에서의 미래,
절박한 현실..그리고 아내에 대한 걱정으로 어두운 표정을 한 순박한 아시아인이다.
자기의 아내와 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오묘하게 빛나는 실크를 보여주며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비록 더듬거리는 영어였지만 눈에 빛을 내며 이야기 하는 이가 바로 조니 림이었다.
일생에 단 하나뿐인 친구였지만 피터는 결국 스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만다.
그로 인한 죄책감..피터는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에서 자신을 찢어낸다.
스노의 어깨에 자신의 팔이 얹혀져 있는 사진...그 사진은 재스퍼가 본 사진이다.
조니림을 평가하는 아들의 말투는 차갑고 냉정하고 신랄하다.
단두대에 죄인을 세우는 판사와도 같다고나 할까?
그의 기억은, 그가 보는 조니림은 조니림의 어느 부분이었을까??
세 명의 화자가 모두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어떤 부분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 명의 화자가 이야기한 조니 림이라는 인물을 재구성해보면 조니림은 한없이 불쌍하고 가엾은 남자였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힘이 모자랐던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아들을 사랑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
기억이 곧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도 아니다.
나 자신조차도 나만 아는 나와 남만 아는 나,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나도 그리고 남도 모르는 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당신은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조니 림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