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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엄마
서미애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광고문구, 띠지, 인터넷서점의 서평, 소개문구등으로 현혹되기란 참 쉬운 일이다. 그만큼 실패하는 일도, 실망하게 되는 일도 쉬운 일이다. 궁극의 혹은 대단한, 독보적인, 충격적인, 고품격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구들에 속을만큼 속아왔으면서도 사실 혹 하는게 또 나란 팔랑귀를 가진 사람이다. '잘자요, 엄마'는 띠지가 참으로 자극적이다.
"이렇게......두 손에 잔뜩 피를 묻혔는데도 안아 줄 수 있나요?"
"엄마......엄마는 정말 그렇게 내가 끔찍했어요?"
엄마와 피, 그리고 끔찍이라는 단어 세 개만으로도 우리는 여러가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 상상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는다. 속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이번에는, 하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추리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라 하니 더더욱 기대감이 만발한다. 한국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아니, 없어서 못 읽었다고 하는게 맞으려나? 솔직히 서미애라는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작년에 김언수라는 작가를 찾아내고 얼마나 기뻐했던가를 생각하니 방금했던 기대에 또 다른 기대가 얹힌다.
응암동. 화재가 발생하고 화재 장소에서 커다란 곰인형을 안은 소녀가 발견된다. 그녀는 화재조사관과 경찰에게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달라며 명함을 내민다. 그 소녀와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화재가 난 집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범죄심리학자 이선경. 세상을 뒤흔든 연쇄살인범 이병도가 그녀와의 면담을 요구한다. 여죄가 있을수도 있는 상황에서 입을 다물어 버린 연쇄살인범에게 자백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경찰과 범죄심리학단체에서는 기대가 크고, 그런 이유로 선경은 기대와 함께 부담도 크다. 그런 그녀앞에 전남편의 11살 난 딸아이 하영이 등장한다. 응암동 화재로 함께 살던 외조모와 외조부를 잃은 소녀가 바로 하영이다.
연쇄살인범 이병도에게 있어 자신에게 가장 오래된, 첫 기억은 바로 베개를 들고 자신을 눌러 죽이려 하던 엄마의 모습이다. 아들이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 베개를 물어뜯으며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던 엄마. 매를 등뒤에 감추고 거짓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부르고, 가까이 다가오면 매질을 하던 엄마. 욕조에 머리를 집어 넣고 죽기를 바라던 엄마. 그럴 때마다 그녀가 부르던 노래는 비틀즈의 맥스웰의 은망치Maxwell's Silver Hammer라는 노래이다.
쿵,쿵, 맥스웰의 은망치가 존의 머리위로 떨어졌어
쿵,쿵, 맥스웰의 은망치가 확실히 그가 저 세상 사람이 될 때까지
이병도에게 가장 먼저 '살인'이라는 폭발하는 마음을 갖게 한 사람은 엄마이다. 선경은 그런 이병도를 만나면서 자신의 집에서 만난 하영도 엄마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았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11살 난 아이가 무서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면 저건 인간도 아니다, 당장 죽여없애야 한다는 과격한 말이 나온다. 감옥에서 주는 밥도 아깝다고, 저런 인간에게 인권이라는게 무슨 소용이냐, 그가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가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배경이 나온다. 어렸을 적부터 가난한 집에서 가족들에게 학대를 당했던 과거가 있었다는 등의 배경말이다. 실제로 유영철이었던가. 그가 어렸을 적 무언가 작은 것을 훔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어려서 동네 슈퍼에서 알사탕 하나, 혹은 아버지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하나쯤 훔치는 일은 누구에게라도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동네 파출소로 데리고 가 '이런 도둑놈의 새끼, 당장에 감옥에 쳐 넣어라, 이런 놈은 따순 밥 먹여 키울 필요도 없다, 쓰레기 같은 놈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자신은 천하에 몹쓸 놈, 뭘해도 가치 없는 놈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사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누구에게나 정보가 넘쳐나는 때, 꼭 범죄심리학같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인터넷을 조금만 서핑하다보면 사람의 심리에 대한 기사나 포스팅 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작년엔가 범죄심리학 수업을 들었을 때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이나 용어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수업내용은 하다못해 스릴러 영화에까지도 출연한 적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런 점을 악용하는 범죄자들도 많이 있다니 그런 범죄자들의 모든 말들을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특별히 안면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불특정 다수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범죄자들의 경우 대다수가 기본적으로 가족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을 아끼지 않았어야 할 부모로부터 학대를 꾸준히 당해온 사람이 많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차가운 세상으로 맨 몸으로 튕겨져 나온 핏덩이. 말을 할 줄 알고, 글을 읽을 줄 알아도 낯선 곳에 홀로 떨어져 있으면 긴장하게 되고, 두려운 것이 인간이다. 혼자 몸으로는 일어설 수도 먹을 수도, 말을 할 줄도 모르는 핏덩이는 가족의 온기와 사랑을 함께 먹으며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인성이, 인격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을터인데,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는 가족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어떤 인성과 인격을 가지게 될 것인가. 자신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자신에게도 한번쯤은 따뜻한 목소리를 내어주길 바라는 아주 작은 바람조차도 거절로 되돌아 올 때, 그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흔치 않은 스릴러.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리없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스릴러계를 보는 것이 참으로 반갑고, 또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