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책읽기 - 내 삶을 리모델링하는 성찰의 기록
유인창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으로 수없이 많은 곳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어떤 구절 아니 어떤 문단 아니 어떤 페이지에는 도무지 어디에 붙여야 좋을지 몰라서 헤매이기도 했다. 좀처럼 책을 읽으며 포스트잇을 붙이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사실 소설을 읽을 때는 굳이 포스트잇을 붙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설이 아닌 책을 잘 읽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

 

제목에 나이가 들어가 있는 책은 왠지 버겁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나이는 아닌지라,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을 읽을 수도 없고,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읽을 수도 없다. 서른 즈음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기는 했다. 이제 나이 마흔이 넘고 보니 제목에까지 나이를 붙여 놓은 책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서글퍼져서 제목에 나이가 들어가 있으면 싫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요즘들어 나 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혹은 내 주변의 친구들까지 하나같이 하는 말은 "이제, 몸이 예전같지가 않아...그래서 더 힘들어"하는 말이다. 왜 마흔은 이렇게 힘든걸까? 몸도 이제 맘 같지 않고, 아이는 아직도 크려면 멀었고, 키우는데 부담은 아직도 크기만 하고, 회사에서 일하는데서 오는 압박감 또한 커져만 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대로 마흔은 불혹,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일 줄만 알았던 이 마흔은 왜 아직도 이렇게 힘겨운걸까? 우린 언제까지 힘들어야 하는걸까?

 



 

취직 고민이 세상의 거의 모든 고민이었던 대학교 졸업반 시절, 친구들과 술 한 반을 나누면 가끔 나오는 이야기가 '마흔이 되면...'이었다. 이미 취직을 해서 출근을 앞두고 있는 친구와 아직 취직을 못한 친구들이 뒤섞여 술값 걱정을 하면서 미래를 그려 보고 예측해 보곤 했다. (중략) 우리는 술을 마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앞으로 올 미래의 자리에 이미 가 있는 듯 겸연쩍으면서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리라. 그것도 기분 좋은 상상이었다. (중략) 종합적으로 그림을 완성해 보면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어드 정도 위치를 가지고 있는 현모양처와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편하게 잘'살고 있는게 우리들의 '마흔이 되면 아마...'의 모습이었다. (중략) 마냥 편하고 안정적일 줄 알았던 삶은 20대 때와 다르지 않게 흔들렸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직장은 가지고 있지만 직장생활이 언제 추억으로 바뀔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아파트에 살고는 있지만 빚 때문에 잠자리가 편치 않다. 삶은 때가 되면 스스로 행복해지는 줄 알았던 게 착각이었다.  -p153~155

 


 

 하하하. 그렇다. 난 언젠가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훨씬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만큼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편협했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편협해지기 일쑤였고, 나이들수록 너그러워지기는 커녕 나이가 들수록 쓸데없는 고집만 늘어 아집이 되기만 했다. 세상에 대해 많이 알게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세상은 나보다 더 먼저, 더 빠른 속도로 앞서 나가 이젠 세상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마저 듣기 십상이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정말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다.

 

마흔의 어느 날엔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에 퍼뜩 놀라고, 놀란 김에 곰곰이 생각한 끝에 써낸 이 책은 마흔 언저리의 독자라면, 특히나 작가의 말마따나 '이상하고 슬픈 인종'인 남자가 읽는다면 더더욱 공감할 수 있을만한 책이다. 그렇다고 여자는 공감하지 못하느냐, 20대나 30대라고 공감하지 못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내가 생각한대로가 아니라 부모가, 학교가, 회사가, 정치가가 원하는대로 밖에 살아오지 못한 자유국가에서 맘껏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착한 책이다. 달리 착한게 아니라 아, 이런 고민이, 이런 아픔이 나에게만 있었던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에. 나를 압박하고 채찍질하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나를 조금은 더 다독이고 괜찮다고 타일러 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구구절절이 적자면 한도 없을 이 공감은 "꼭 읽어 보세요~"라는 말로 갈음한다.

 

p.s : 한 챕터마다 작가의 이야기에 한 권의 책을 덧붙여 놓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있는 책까지 모두 29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 책들도 다 주옥같은 책들. 추천책이 또 스물 아홉권만큼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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