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노랗다 못해 약간 붉은 기운마저 도는 진한 노랑 빛의 표지와 그 위에 의자, 아마도 윙체어로 보이는 쿠션이 몹시도 푹신할 것만 같은 의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치마를 입은 여인과 남자의 다리가 보인다. 그림만으로는 두 사람이 다툼을 하고 있는지, 키스를 하려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문득, 키스를 하려는 거라면 여인의 버티고 선 다리가 너무도 완고해보인다.

 

삶,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기차여행.

 

인생이 기차여행과 같은 점이 있다면 누구나 그 끝이, 여행의 종착역이 같다는 점일 것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든 역이 다 같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흔하디 흔한 표현으로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한다. 편도여행. 왕복표를 끊지 않는 기차여행과 같다고들 말한다. 어떤 이는 리허설이 없는 연극무대라고도 한다. 누군가는 조금 편하게 KTX를 탄 것처럼 남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갈 수도 있는 여행. 누군가는 좌석이 없어 입석표를 끊어 불편하게 갈 수도 있는 여행. 그렇지만 누구나 다 그 끝은 죽음인 여행.

 

그저 '기차'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닿지 못할 그 어느 곳에 가려는 이야기인가 싶다. 게다가 '곰스크'라니... 우리나라 지명이 아니라서 그런지 더더구나 곰스크라는 이름이 생소하면서도 닿지 못할 곳으로 들린다. 단편집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는 이 이야기 외에도 7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조금씩 닮아있다. 가고자 하나 가지 못하는 현실, 혹은 닿지 못하는 꿈에로의 여행인 삶에 대한 이야기.

 

'배는 북서쪽으로'라는 단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아버표르트로 간다 하고, 누군가는 루트로브로, 누군가는 넥쇠로, 에스표르트로, 말뫼로, 졸리츠로 간다 한다. 그러나 정작 누구도 그 배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키를 잡은 선원은 북서쪽으로 간다한다. 선장에게로 가 이 배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만 선장 또한 정해진 항로를 따를 뿐이라며 정확한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얼어붙을 듯이 춥고 어두운 뱃머리에 서있던 한 사람에게 두터운 모직코트를 걸치고 머리엔 숄을 두른 창백한 소녀가 말한다.

 

"처음부터 전 알고 있었어요. 원래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는 것을요......어디로 가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책 표지의 남녀와 의자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한 장면이다. 남자는 곰스크로 가기 위해 아내와 함께 기차에 올랐고, 잠시 들른 간이역에서 아내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기차를 놓치고 만다. 간이역이었던 까닭에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어쩌다 한 번 그 역에 설 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안 남자는 다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표 살 돈을 모으며 기차를 기다리지만, 아내는 조금씩 살림을 늘리며 그 간이역에서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가 마련한 또 하나의 살림살이가 바로 그 의자였고, 의자가 필요없다는 남자와 곰스크로 떠나게 되더라도 그 때까지만이라도 편하게 앉아 있을 의자가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아내와의 대립이 표지의 그 그림이다. 역자의 말마따나 이 단편집들에 실린 모든 이야기들에 나오는 비유적 장치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함축이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배. 같은 꿈을 꾸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조금씩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하고, 결국에 꿈은 꿈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현실. 세상이 강요하는 길과 항로는 있을지 모르지만 각자가 마음속에 간직한 길은 따로 있다는 것. 내 길을 가려는 의지를 막는 것이 내 곁의 누군가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폭발하는 듯한 이야기와 서사는 없지만 다 읽고 나면 원가 가슴속에서 잊었던 기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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