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터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방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뱀이나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처럼. 텔레비전도 세탁기도 냉장고도 형광등도 커튼도 현관 매트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부동산 소개소 아저씨에게 처음 이 방을 안내받던 때와 느낌이 똑같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방 전체에 희미하게 가람 맛살라향신료 냄새가 남아 있고, 텅 빈 거실 중앙에 애인이 사용하던 열쇠가 반짝이는 것뿐. -p5

 

참으로 고약한 시작이다. 세상에 애인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랑을 버리고 간 것도 모자라, 부동산 소개소 아저씨에게 처음 방을 안내받던 때처럼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몽땅 싸들고 나갔다니...가재도구며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비법으로 만든 매실장아찌까지 알뜰하게 싸들고 날라 버렸다. 날라버렸다는 말이 맞는 건, 함께 힘을 모아 식당을 열자며 허리띠 졸라매고 모아두었던 돈까지 몽땅 들고 튀었기 때문이다. 선한 얼굴에 눈빛을 하고 있던 인도 애인은 그렇게 카레향 정도만 남기고 그녀를 떠나가버렸다. 그 와중에 그녀는 생각한다. '겨자씨 된장만은....겨자씨 된장만은....' 그렇게 기도하듯 열어본 현관문 옆 가스계량기 옆에는 겨자씨 된장 항아리가 오늘 아침 그녀가 나갈 때 다독거려 놓은 그대로 얌전히 앉아있다.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실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집도, 가재도구도, 사랑도 잃어버린 마당에 잠시 나오지 않는 목소리쯤이야, 라고 생각하는걸까.

 

그 길로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그녀, 링고는 할머니의 유품인 겨된장을 끌어안고 10년 전 떠나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고 이웃들도 그리 많지 않은 시골 마을로 돌아간 링고는 그곳에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을 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성스런 음식으로 손님을 맞는다. 메뉴를 정해놓고 많은 손님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루 한 팀의 손님을 받아 원하는 메뉴를 요리해준다. 손님의 취향과 이야기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그 상황에 맞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녀의 정성은 '달팽이 식당'에 작은 기적을 만든다.

 

음식이 마구마구 등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금단의 팬더'가 생각나기도 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혹은 자신의 추억와 맞바꿀 수 있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사람들을 보면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음식이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것을 보면서는 '심야식당'을 떠올리게도 하는 그런 따뜻한 소설이다. 식당의 이름도 그런 면에서 아주 직관적이다. 달팽이...아주 느리지만 자기의 길을 가는 달팽이. 달팽이 식당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천천히, 많은 손님을 받고, 많은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 팀이라도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식사를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링고가 원하는, 달팽이 식당이 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읽는 이까지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착한 이야기이다. 다만, 출출해질 수 있는 늦은 저녁시간에 읽는 것은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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