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킹제이 헝거 게임 시리즈 3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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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첫번째 편인 헝거게임을 읽고 한참 지나서야 두번째 편인 캣칭파이어를 읽었고, 또 그 뒤로 한참 뒤에야 모킹제이를 만났다. 시리즈물은 만화책 1권부터 완결까지 책탑으로 쌓아놓고 보듯이 그렇게 한 번에 완결까지 보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도무지 읽은 책의 처음이, 주인공이, 주인공의 주변인물이 가물가물해서 다음편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휘몰아치는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았던 헝거게임 시리즈는 모킹제이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헝거게임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북미대륙이다.  북미대륙이 잿더미가 된 후 가뭄과 폭풍등으로 땅의 상당부분이 침수되었으며, 얼마남지 않은 자원을 가지고 전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 판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형성되었고, 그 가운데를 키피톨이 차지했고 열세게 구역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판엠은 국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는 나라엿지만 13개 구역이 판엠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12개 구역은 캐피톨에게 패배했고 13번째 구역은 아예 사라졌다. 이 시기를 암흑기라 하는데 캐피톨은 암흑기가 다시 찾아와서는 안된다는걸 일깨운다는 명목으로 헝거게임이라는 TV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헝거게임이란 캐피톨을 제외한 각 구역에서는 12세부터 18세까지의 남녀 두명씩을 게임의 대상자로 선정하여 조공인이라는 이름으로 총 24명이 경기장에서 마지막 생존자가 한명이 될 때까지, 즉 23명이 죽을 때까지 진행되는 게임이다. 

 

12구역의 캣니스가 여동생 프림을 대신하여 같은 구역의 피타와 함께 헝거게임에 참여하게 되고, 단 한명의 우승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기존의 룰을 깨고 캣니스와 피타는 우승자가 되어 우승자 구역에서 살아가게 된다. 곳곳에서 캐피톨에게 반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캣니스와 피타는 다시 한 번 헝거게임에 출전하게 된다. 왕중왕전이라고나 할까. 두번째 헝거게임에서 캣니스의 목표는 오로지 피타를 살리는 것. 아마도 피타의 목표는 캣니스를 살리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캣니스와 피타뿐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도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반란'이었다. 캣니스는 이제 불타는 소녀, 모킹제이, 반란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만의 모킹제이가 되어 돌아온 캣니스와 게일, 피타의 이야기.

 

혁명의 상징이 된 캣니스는 피타의 행방을 알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구역으로 알았던 13구역이 캐피돌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반란의 중심지가 되어 캣니스를 구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이상의 헝거게임은 없고, 이제 반란군과 캐피톨의 대립이 주가 되는 모킹제이는 1편인 헝거게임만큼의 긴박감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캣니스가 안겨주는 통쾌한 반전들과 캣니스와 피타, 게일의 감정선은 여전히 살아있어 재미만큼은 장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화도 진행되고 있어 캐스팅도 완성단계인 것 같아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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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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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자기가 아는 것이 세상 전부인 줄로만 아는 나이 12살. 알만큼 아는 나이기도 하지만, 아는만큼 움직이기는 어려운 나이 12살. 한참 예전에 엄청 좋아했던 TV드라마 <케빈은 12살>이 생각이 난다. 딱 사춘기에 접어든 케빈은 좋아하는 여자아이 때문에 마음아파하기도 하고, 부모님, 형제, 친구들과의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드라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5학년의 신이치, 나루미, 하루야도 그렇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 이야기는 동심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조금씩 위험한 경계를 걷도록 한다.

 

아빠가 죽고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 쇼조와 살게 된 신이치, 신이치의 할아버지인 쇼조가 몰았던 배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루미,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하루야는 정상적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은 멀어져 있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전학을 왔고, 전학 온 첫 날 누구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종류의 가방을 매고 등교했다. 그들의 위화감에 포스트 잇을 붙여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교우관계에서 겉도는 신이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이치의 할아버지 배에 타고 있다가 목숨을 잃은 엄마를 둔 나루미이다. 그리고 드라마에나 나올 것처럼 혼자가 되어버린 신이치의 엄마와 나루미의 아빠는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해변가에서 소라게를 잡고, 소라게를 불로 지져 소원을 빌면서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속으로부터 끄집어 낸다. 미워하는 친구가 다쳤으면 좋겠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작은 소원에서부터 기어이는 엄마의 애인이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잔혹한 바람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자기가 마음 속으로 빌었던 그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질까 겁내하는 아직 여린 아이일 뿐이다. 무작정 어른인 채, 무작정 남을 위하는 채 하기에는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너무 가깝기 때문에 사랑과 질투가 공존한다.

 

12살의 나이, 사춘기의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현실이 너무 무겁기만 하다.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고, 엄마와 아빠라는 사람은 어쩌면 엄마와 아빠이기 이전에 그저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다. 가슴에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12살 꼬마라고만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을 이제 막 남편을 잃은 마음을 메꿔줄 남자를 만난 엄마라는 여자는 다 이해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은 각기 깊고도 깊은 상처를 가졌으면서도 그 상처를 낫게 할 연고 같은 걸 서로에게 사용할 생각은 못한 것 같다. 소년은 소년이라서, 엄마는 엄마라서...

 

"나 말이야. 아빠가 만나는 상대가 도네 군에 엄마였다는 거, 사실은 계속 알고 있었어. 전에 도네 군한테 어느 토요일에 관해 물었던 거 기억하지? 도네 군네 집에서는 뭐 했느냐면서. 그때 도네 군은 엄마도 집에 있었다고 했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런 건 얼굴 보면 다 안단 말이야.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지....그러는 편이 어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중략) 이제 도네 군을 못 본다니 섭섭했지만, 도네 군네 엄마도 볼 일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 마음이 놓였어. 아빠가 다시 내게로 되돌아와 주겠구나, 하는 생각에...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워."

-p 397

 

어른도, 진짜 어른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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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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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읽은 책은 일본소설 <달과 게>였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신이치는 12살이었다. 신이치는 아빠를 잃은 상실감, 교우관계에서 오는 외로움,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는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가졌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살이다. 오스카도 신이치처럼 아빠를 잃었다. 왕따는 아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이다. 엄마는 같은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중이다. 오스카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서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숙한 아이다.

 

오스카의 아빠는 암이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게 아니다. 전 세계 누구나 아는 사고로 아빠를 잃었다. 바로 9.11테러다. 그 일이 있던 날, 학교에선 아이들을 일찍 집으로 돌려보냈고, 오스카는 무슨 일인지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오스카가 돌아왔을 때 전화기에는 아빠가 남긴 메세지가 몇 개쯤 남아 있었고, 두려움에 떨며 마지막에 걸려 온 전화를 받지 못한 오스카는 절박하게 "너 거기 있니?"를 몇 번이나 외치는 아빠의 목소리를 머릿 속에서 지워내지 못한다. 왜 거기 누구 없어요, 라든가 오스카 거기 있니, 라든가 여보 거기 있어, 라는 말이 아니라 너 거기 있니, 였을까. 아빠는 내가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하는 문제로 오스카의 머릿 속은 터질 것만 같다. 그러다 아빠의 유품인 열쇠를 하나 찾게 되고 그 열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비밀스러운 탐색을 시작한다.

 

오스카의 절박한 탐색과 더불어 2차 대전이라는 또다른 비극 속에서 많은 것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오스카의 할머니는 2차 대전의 공습 속에서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인 애나, 그리고 애나의 뱃 속,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던 자신의 아이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의사소통의 길인 목소리까지 잃어버린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결혼을 한다. 소통은 어려웠고,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고독했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와 불신을 낳았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떠나버린다. 오랜 세월 고독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비극적 삶은 슬픔이라는 한 마디 말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복잡하다. 남겨진 사람들이 떠안아야 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떠나간 이들이 자신을 사랑했다는 작지만 정확한 어떤 하나의 증거뿐이다.

 

오스카는 아빠가 남긴 정체모를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전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결국은 '사랑'을 '기억'을 ,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상처를 치유해 간다. 2차대전, 9.11테러처럼 무겁고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9살 주인공 오스카를 통해 그저 참담하게만 그리고 있지는 않다. 아빠를 생각하면 부츠가 무거워진다고 오스카는 말한다. 슬픔이 마음을 짓눌러 발걸음이 무거워진다는 걸까? 굳이 무슨 뜻인지 밝혀내려고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부츠가 무겁다고, 더 무거워졌다고 하는 오스카의 말을 말이다. 오스카는 궁금했다. 왜 마지막 순간에 아빠는 전화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오스카가 원했던 것, 그리고 오스카의 할머니도 원했던 것, 바로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길 바라는 것. 그것이 작가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p.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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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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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일색의 작품인지라 무척 기대에 차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앞서 읽었던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었을 때 느꼈던 느낌만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좋은 장편이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었기에 더더욱 기대했다. 지인의 짜디 짠 별점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대를 반감시키진 못했다. 그저 읽기만 하는 주제에 누군가 이 작품을 읽겠다고 한다면 우선은 이런 충고를 하나 해주고 싶다

 

"단숨에 읽어라!"

 

첫 장을 읽기 시작한 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내가 읽었던 것이 꿈이었던가, 어제 읽었던 것이 이 책의 내용이었던가 가물가물해진다. 단숨에 읽는다고 그 미스터리를 모두 풀 수 있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시간을 두고 편안하게 한 권을 모두 읽어내릴 수 있을만한 시간을 선택해서 읽기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일쑤일테니까.

 

책의 말미에 평론가의 해설이 있다. 오호, 해설씩이나...해설자도 말한다. 스포일러 없이 이 책의 서평을 써보고 싶다고. 이 이야기는 마치 다섯살짜리 아이와 끝도 없는 이야기 만들어 내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이야기이다. 끝이 났는가 하면 다시 시작이고, 시작인가 하면 끝처럼 보이는, 도무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이 책이 재미가 없어서 혹은 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평이랍시고 쓰기 시작하는 순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이야기일 뿐인지라 더 이상 쓸 말도 없다. (서평쓰기 참 어려운 책)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모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이젠 지쳤어. 모르겠어. 어디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이렇게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 글쎄, 최소한 지루하다는 느낌은 가질 수 있잖아.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니야. 매번 변하고 있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면서 -p.11

 

이야기의 가장 시작. 이 부분이 이 미스터리의 모든 부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되는 이야기. 똑같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매번 변하는 이야기.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이야기. 눈보라치는 날씨에 산장에 같인 여섯 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며 끔찍한 꿈을 꾸고 또 한 사람씩 죽어나간다. 여기까지는 그저 흔하디 흔한 밀실살인 정도로 보이지만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되는 79페이지를 읽어가기 시작하면 그런 뻔한 소설은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된다. 이거 참 독특한데, 라고 느끼던 순간. 세번째 챕터를 읽게 되면 이제 혼란스럽다. 이건 또 뭐지 싶다. 별점의 차이는 여기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도저히 이해못할 이야기의 반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저그런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이해를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들려주는 매일매일 새로운,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면 참으로 신선하고 괜찮은 소설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내의 부정에 분노하여 매일 신혼을 치르고 신부를 죽이는 일을 반복하는 왕이 세헤라자데라는 처녀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 1천1일을 보내게 된다는 천일야화, 혹은 아라비안 나이트가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천명관님의 <고래>를 읽었을 때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어떤 이야기나 구조에도 빚지지 않은 완벽히 새로운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새로운 재미'를 원한다면 Pick i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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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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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이나 영화의 리뷰를 쓰면서 별점 주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겠다고 할지라도 일단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평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노력과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 탄생한 '작품'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한 때여서 그런지, 조금 감상적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다섯 개의 별로 다른 사람의 산물을 평가한다는 것이 오늘따라 유난히 잔인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정상적인 감정 상태일 때도 별 다섯개는 좀 범위가 너무 좁다. 별이 한 일곱 개에서 열 개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빨간 별 그림이 없으니 조금 심심하긴 하구나...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시라면 모를까.. 한 때는 참 많이 읽는 축에 속했었는데 지금은 시를 읽지 않은지 십 년도 넘은 것 같다. 최갑수님의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은 에세이와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가끔은 시이고, 가끔은 에세이이다. 그러고 보니 시와 에세이의 경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파이팅' 같은 건 하지 말자.

그런거 안 했어도 우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잖아.

최선을 다하지도 말자,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매일 매일 죽을 힘을 다해 달리려니까 다리에 쥐난다. 지치려고 그런다.

조금은 적당히, 조금은 대충대충, 좀 걸어 보는 건 어떨까.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힘 내~'라는 말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힘이 나지 않아 죽을 것 같은데 힘을 내라니, 어떻게 힘을 내라는 말인지...가끔은 그렇게 주저 앉아 울어도 좋다고 다독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울지마, 힘내, 파이팅 해야지, 라는 말들 뿐이다. 다들 그렇게 달리는 말이 채찍질 하듯 그럴 필요는 없는거다. 나 자신 만이라도 나에게 말해보자. 힘들면 쉬어도 좋아. 그렇게 주저 앉아 울어도 좋아. 바보 같다고? 눈물을 흘리는게 바보 같은 거라고? 아니, 그렇게 크게 아이처럼 울어버리고 나면 뭔가 속에서 큰 덩어리 같은게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게 될 걸!!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어차피 시간은 기차처럼 지나가 버릴테니까

걱정과 나쁜 기억을 싣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릴 테니까.

한숨 푹 자도록 해, 땅 속 깊이 묻어 놓은 꽃씨처럼.

자고 나면 네 어깨 위에는 따스한 햇빛이 내려앉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거야.

 

에세이를 읽지 않았던 건, 정말 괜찮아 질 것 같지 않은 시련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저 말장난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를 읽은 것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뭐랄까, 현실 따위는 잊어버리도록 최면을 걸어주는 느낌 때문이었달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은 생각한다. 한숨 푹 자고 나면 한 번에 나아지지는 않아도, 하룻 밤 잠자고 일어난만큼 조금씩 더 나아질거라는 것을, 그렇게 조금씩 내 마음은 스스로를 치유해나갈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건

'잘 해보자', '열심히 해보자'

이런게 아니다.

조.금.만. 너.그.러.워.지.자.

 

요즘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나 달고 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도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소풍이라는 것을 잊고 살며,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 보다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그 무서운 곳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만을 이야기하며 전투적으로 살아하고 있다. 조금은 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자, 그러면 조금은 낭만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뭐 하고 살아왔지? 왜 살고 있었지?

말하자면 그냥 떠밀려 온거야.

마지막 스퍼트를 할 순간에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지 말자는 거다.

 

어느 날, 우리가 지나온 인생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것인데..

 

하하, 말하자면 그냥 떠밀려 왔다니...그냥 밤이 오니 잠을 자고, 아침이 되니 출근을 하고, 출근을 했으니 일을 하고, 때가 되었으니 밥을 먹는 기계와 같은 삶. 낭만이나 감정따위는 없이 그저 떠밀려 가는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조금만 천천히, 발걸음을 가끔씩 멈춰가며 누군가 나를 떠밀어서가 아니라 '내 발걸음'으로 '내 인생'을 살아보자.

 

우리가 죽는다면 모든 게 한 줌 먼지로 돌아간다는 건 알고 있고

별들은 끝없이 서로 멀어지고 있고,

우린 또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거니까...

 

잘 지내나요,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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