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바로 앞에 읽은 책은 일본소설 <달과 게>였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신이치는 12살이었다. 신이치는 아빠를 잃은 상실감, 교우관계에서 오는 외로움,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는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가졌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살이다. 오스카도 신이치처럼 아빠를 잃었다. 왕따는 아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이다. 엄마는 같은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중이다. 오스카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서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숙한 아이다.

 

오스카의 아빠는 암이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게 아니다. 전 세계 누구나 아는 사고로 아빠를 잃었다. 바로 9.11테러다. 그 일이 있던 날, 학교에선 아이들을 일찍 집으로 돌려보냈고, 오스카는 무슨 일인지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오스카가 돌아왔을 때 전화기에는 아빠가 남긴 메세지가 몇 개쯤 남아 있었고, 두려움에 떨며 마지막에 걸려 온 전화를 받지 못한 오스카는 절박하게 "너 거기 있니?"를 몇 번이나 외치는 아빠의 목소리를 머릿 속에서 지워내지 못한다. 왜 거기 누구 없어요, 라든가 오스카 거기 있니, 라든가 여보 거기 있어, 라는 말이 아니라 너 거기 있니, 였을까. 아빠는 내가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하는 문제로 오스카의 머릿 속은 터질 것만 같다. 그러다 아빠의 유품인 열쇠를 하나 찾게 되고 그 열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비밀스러운 탐색을 시작한다.

 

오스카의 절박한 탐색과 더불어 2차 대전이라는 또다른 비극 속에서 많은 것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오스카의 할머니는 2차 대전의 공습 속에서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인 애나, 그리고 애나의 뱃 속,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던 자신의 아이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의사소통의 길인 목소리까지 잃어버린 오스카의 할아버지와 결혼을 한다. 소통은 어려웠고,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고독했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와 불신을 낳았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떠나버린다. 오랜 세월 고독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비극적 삶은 슬픔이라는 한 마디 말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복잡하다. 남겨진 사람들이 떠안아야 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떠나간 이들이 자신을 사랑했다는 작지만 정확한 어떤 하나의 증거뿐이다.

 

오스카는 아빠가 남긴 정체모를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전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결국은 '사랑'을 '기억'을 ,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상처를 치유해 간다. 2차대전, 9.11테러처럼 무겁고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9살 주인공 오스카를 통해 그저 참담하게만 그리고 있지는 않다. 아빠를 생각하면 부츠가 무거워진다고 오스카는 말한다. 슬픔이 마음을 짓눌러 발걸음이 무거워진다는 걸까? 굳이 무슨 뜻인지 밝혀내려고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부츠가 무겁다고, 더 무거워졌다고 하는 오스카의 말을 말이다. 오스카는 궁금했다. 왜 마지막 순간에 아빠는 전화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오스카가 원했던 것, 그리고 오스카의 할머니도 원했던 것, 바로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길 바라는 것. 그것이 작가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p.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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