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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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작가 김려령님의 동화같은 소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이다. 작가의 글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작가 자신도 "벌거숭이 맨몸 같은 글에 따뜻한 옷을 입혀주신 장경혜 작가님"이라는 말을 달았던 것처럼 아마도 그림이 없었더라면 감흥이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글 자체만으로도 여러가지 생각과 감동이 번갈아 다가오지만, 정작 책을 딱 덮는 순간에 책의 뒷면에서 손을 흔드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는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느낌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 올랐으니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명랑은 문밖동네라는 아주 크고 유명한 출판사에서 <내 가슴 속에 낙타가 산다>는 책을 펴내고 상까지 받은 동화작가이다. 하지만 책을 펴냈고, 상까지 받았다고 해서 그 이후도 아주 찬란한 봄날이었던 것은 아니다. 집에서는 직업은 있으되 돈을 벌지 못하는 이상한 직업인 취급을 받고 있고, 글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 쇼핑몰이나 기웃거리는 한심한 청춘으로 전락해있는 상태이다. 돈 되는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쓰는게 어떻겠느냐는 충고까지 듣고 있던 참에 생각해 낸 <이야기 교실>.  모름지기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기술이라는 기치 아래, 한달은 공짜!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등록한 아이는 세 명. 영어학원 가기 싫어서 온 5학년짜리 종원이와 종원이 가는 길에 딸려온 종원이 동생 소원이. 꿈이 동화작가라서 찾아온 5학년 나경이. 이렇게 셋을 두고 오명랑은 한 번도 입밖에 내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꺼내놓아야 할, 마음의 짐과도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로 건널목씨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수업시간에 맞춰 아이들에게 건널목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명랑작가의 말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들려주듯 조근조근 진행되는 이야기속에는 우리네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희노애락이라는 네 가지 감정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오묘한 마음들이 담겨 있다. 영어숙제가 싫어서, 동생과 함께 오는 것도 귀찮았던 종원이도 귀기울이게 된 건널목씨의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읽었다. 함께 읽었다기보다는 오명랑 작가를 대신하여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김려령 작가의 글은 <완득이>이후로 처음이지만, 그 때도 그렇고 이 작품을 접하고도 느낀 점은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젠체하고 있어보이는 문장이나 단어를 선택하기보다는 우리가 늘 쓰는 말, 그러면서도 공감하는 말과 문장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나보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이 더 많이 즐거워하고 공감했다. 결국엔 베개가 젖도록 울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영어학원에 가면 시험도 봐야 하고 숙제도 많아서 가기 싫다는 종원이에게서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봤다느니, 건널목씨가 건널목씨가 된 사연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 교통부의 무능력을 지적한다느니, 아리랑 아파트 주민들의 삶 속에서 가정내의 문제와 이기주의, 청소년 폭력을 다뤘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완득이>에서도 가볍게 읽히는 털털한 이웃 누나나 형같은 느낌의 소설로 그 안에 우리가 피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깔끔하게 녹여 낸 작가의 솜씨는 인정받은 바 있으므로.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문학을 분석할 때마다 느낀 건 이거였다. "작가한테 물아봤나??"하는 거. 속에 담긴 내용이나 문제의식이 어떤 거였든지간에,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이 책을 나에게 권해주었던 그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나도 그 누군가에게 엄마와  혹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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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캐비닛 문학동네 소설상 12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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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의 부속 연구소에서 일하는 '나'는 할 일이 없다. '개껌이라도 질근질근 씹어먹고 싶은 처절한 무료함'을 가진 나는 일종의 행정직을 맡고 있지만, 하는 일이라곤 고작 연구소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온 트럭에서 물건을 꺼내 서류상의 갯수와 맞는지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은 뒤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면 끝나는 단순한 일이다. 오전 업무가 아니라 하루의 업무가 그걸로 끝이다. 4대 보험에 나름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회사이건만 나는 그저 화분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릴 없이 앉아 있다 쫓겨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 걱정, 긴장감도 있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이런 저런 취미생활을 하던 중 '13호 캐비닛'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는게 시간인지라 비밀번호 열쇠의 0000부터 맞춰나가기 시작한 나는 칠천팔백예순세 번 만에 자물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시간을 잃어버리는 사람, 입안에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 매우 긴 잠을 자는 사람 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괴이한 현상들을 몸소 체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류가 모아져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그 사람들을 연구하는 권박사의 조수가 되어 그들의 전화를 받으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는 토포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잠자는 걸 좋아하고 또 잠이 들면 깨어나기를 싫어하니까. 사실 나는 그저 토포의 늪에 한 번쯤 풍덩 빠져보고 싶다. 회사만 안 잘리고, 월급만 제대로 나오고, 보험금이나 적금통장에 '빵꾸'만 안 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생을 왜 그딴 식으로 사냐'라는 식의 잔소리만 안 듣는다면,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한 육 개월쯤 푹 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토포러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들에 계속 신경을 쓰기 때문에 토포 상태에 빠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토포에 빠지려면 왕창 망가져서 모든 게 폐허가 되거나, 아니면 나는 모르겠으니 배 째라 이렇게 배짱 좋게 무책임해지거나, 둘 중에 하나는 돼야 하죠. 이것저것 걱정하고 그러면 절대 안 돼요."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폐허를 가질 용기도, 무책임을 가질 용기도 없어서 우리는 항상 피곤하고 지쳐 있는데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 p.78

 

한참 4당5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네시간을 자면 붙고 5시간을 자면 떨어진다고. 산업이 발달하고 잠들지 않는 도시가 계속되면서 현대의 밤은 더 이상 밤이 아니다. 밤이고 낮이고 돌아가는 세상. 남들보다 덜 자고, 저 많이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푹 잔다는 것을 두고 '세상 모르고 잔다'고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잠이나 쿨쿨 자고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 자본주의의 선봉에 설 자격이 없다는 뜻도 될지 모른다. 지긋지긋한 집을 나가겠다면서 빨래 해 놓고, 학교에서 돌아 올 아이를 위해 간식을 준비해 놓고, 청소 해 놓는 여자는 집을 못 나간다고 한다. 몇 일이고 몇 달이고 깊은 잠에 빠져 세상을 버릴 수 있는 토포러가 되려면 자기가 가진 것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린 전부는 커녕 단 한 시간도 버릴 용기가 없다.

 

"혹시 타임머신 같은 게 발명된다면 당신이 삭제한 1998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돌아가고 싶어요. 솔직히 1998년에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홍당무밖에 없지만."

 

"무섭지 않나요?"

 

"무서워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거에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 -p.107

 

우리들의 기억은 믿을만한 게 못 된다. 가끔 아주 오랜 기억들은 조금씩 윤색된다. 어딘가는 조금 더 아름답게 꾸며지기도 하고 어딘가는 삭제되기도 한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지는 것이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고치는 사람들을 메모리자이커라고 부른다. 너무나 불행했던 기억이라서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진 과거를 그들은 또 찾고 싶어 애쓴다. 우리가 꼭 아름다운 기억만을 먹으며 살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영원히 마법사를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법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꿈꾸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마법은 너무도 흔하다. 따라서 마법사도 흔하다. -p.141

 

피터팬이 웬디와 함께 팅커벨을 만났을 때였던가. 사람들이 요정을 밎는 마음이 있어야 요정을 되살릴 수 있다고. 아는 만큼 보이고, 믿는 대로 보인다고 했다. 사실 의심병에 걸려 가장 가까이 사는 이웃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들이지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한다고 말들 하지만, 어디 신은 본 적이 있어서 믿는가?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알고 있는 종교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을 것이고, 그 외에도 온갖 미신까지 합한다면 본 적이 없어서 믿지 못한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눈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p.182

 

우리는 매 시간을 낭비없이 살겠다고 하는 일이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며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운동을 하고,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해서 회사에서 또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성공해보겠다고, 남들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살다보면 우리가 시간을 아껴 쓰는 만큼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여유 같은 것들 말이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돌연변이, 혹은 사회 부적응자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캐비닛 13호. 어쩌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서 잃어버렸던 우리들의 조각들이 그 캐비닛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되고, 돈 잘 버는 남자가 착한 남자가 되고, 쭉쭉빵빵 8등신 몸매를 가진 여자가 착한 여자가 되어버린 세상. 공부 잘하는 반장과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가 싸우면 반장 말이 진실이 되기도 하는 이상한 세상. 우리가 더 이상하게 돌아가기도 한다는 걸 모르고 캐비닛 13호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이상하다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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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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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치면 수미쌍관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생후 7개월 정도 된 세사르 롬브로소가 물고 있던 제 어미의 젖꼭지를 놓고 잠시 멈추었다가 갑작스럽게 먹잇감을 낚아채듯 민첩한 동작으로 왼쪽 젖꼭지를 통째로 뜯어내고 심장마비로 숨진 어미의 살점을 삼키고 씹어가며 두어 번 트림을 해댄 뒤 치맛자락에서 잠이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장 원초적인 식인의 경험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스페인, 이탈리아등 세계 정세와 맞물려 떠돌다가 이제 십대 후반이 된 세사르 롬브로소가 오감의 극한에서 오는 식인행위의 주체이자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저 맛있는 요리에서 조금이라도 독특한 메뉴, 남다른 향미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한 요리사들의 연구는 당연히 계속될 것이다. 누구보다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루치아노 카글리오스트로와 루도비코 카글리오스트 형제 요리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국적인 허브 향이 가미된 소스와 동양식 향신료로 맛을 낸 스테이크등으로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하여 일명 '알마센'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성공했다. 그들이 남긴 요리책은 그들의 유일한 혈육인 알레산드로 치앙카글리니에게 불려졌고, 다시 그 아들에게로 또 그 아들의 아들에게로 대대손손 대물림되었다. 그리고 그 책은 1989년 1월 25일, 세사르 롬브로소가 찾아내게 된다. 그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요리책 '남부 해안지역 요리책'을 통해 오감의 만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상의 레시피를 접하게 된다.

 

어느 광고 중에 맛있는 떡볶이의 비밀을 묻는 이에게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라고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최고의 요리에는 그 요리사만이 가진 비밀 레시피가 있다.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독특한 향신료, 독특한 배합, 독특한 그 무언가가 있다. 맛보는 이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자신의 미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을 만족시킨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들이 모르는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오르게도 하고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를 떠오르게도 하는 작품이다. 아주 비슷하지는 않지만 황신혜주연의 <301,302>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많은 생선요리, 남부 해안지역을 떠오르게 하는 야채와 각종 소스등이 기본적으로 나오는 터라 <금단의 팬더>를 볼 때처럼 살짝 배가 고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떠올랐던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요리'라는 하나의 직업, 혹은 누구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먹는 이에게 대접하고 싶었던 요리사들의 정열이라는 것 이외에도 이 모든 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것이 단순히 '요리'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전, 전쟁이라는 것에도 크게 영향 받았다. 제3국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의 역사가 얼마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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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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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책을 읽고, 정말 어지간해서는 읽기 시작한 책을 중간에 덮는 일은 없는 편이다.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아서 중간에 놓은 책도 몇 권쯤 있긴 하지만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것이 소설인 경우에는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몰입도가 떨어져도 끝을 보는 편이다. 그렇기에 아주 재미가 있다, 나를 사로잡았다는 것은 얼마나 늦게까지 다음 날을 걱정하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고 한 장만 더, 한 장만 더를 마음 속으로 외치다 결국은 끝을 보는 책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랫만에, 그런 책을 만났다. 바로 이 책, 소년시대!

 

<소년시대>는 정말 갑작스럽게 나에게 왔다. 보름도 훨씬 전에 서평단에 응모를 했고, 잊고 있었다. 서평단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지 못했던 터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가보니 책상 위에 곱게 놓인 책, <소년시대>였다. 밀려있는 책들이 워낙 많아서 바로 읽을 책도 아니었는데 받은 그 날 저녁에 앞부분이나 잠깐 볼까~ 하는 마음으로 손에 든 책을 2권 중반까지 읽고 말았다. 아~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라면서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우리는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본질에서 멀어진다.. 누구나 다 그렇다. 어깨에 짐을 지게 된다. 좋은 짐도, 안 좋은 짐도. 여러 가지 일이 우리에게 닥쳐온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다.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불구가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길을 잃는다. 이 괴상한 미로 같은 세상에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삶 자체부터가 우리에게서 마법의 추억을 빼앗아 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렇게 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확히 뭘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때가 온다. 마치 예쁜 여자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당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황하고 비슷하다고 할까. 그냥 어쩌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p.19

 

이 작품을 딱 꼬집어 성장소설이다, 라고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달력의 날짜야 어떻든 여름의 시작은 방학이라고 믿고 있는 12살 소년 코리. 백여섯 살이나 된 흑인 여왕이 있고, 오케이 목장에서 아이어트 어프의 목숨을 구해준 총잡이도 있으며 강에는 괴물이 살고 있고, 호수에는 비밀이 도사렸다. 보닛에 불꽃이 타오르는 까만 경주용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출몰하는 유령이 있고, 한물 간 축제에 트럭에 타고 오는 트리케라톱스가 있는 마법의 땅 제퍼에 사는 소년 코리. 그 소년의 봄과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통해 마법이 살아 숨쉬는 기억을 다시 꿈꾸게 하는 멋진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순이 마법의 힘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이 가졌던 '진실'이라는 것에 눈감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

 

1964년 미국남부의 작은 도시. 아직도 백인과 흑인은 한 데 섞여 있지 못하고, 보안관이 있고, 밀주를 담그고, 작은 마을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가족과 같은 제퍼. 우유를 배달하는 아빠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소년 코리는 이른 새벽 함께 우유를 배달하던 길에서 괴물이 살고 있다는 깊고 깊은 강물 속으로 가라앉으려는 자동차를 보게 된다. 아빠는 운전석의 남자를 구하려고 차디 찬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몹시 심하게 얻어 맞아 엉망이 된 얼굴, 핸들에 묶인 두 손, 발가벗겨지고 목이 졸린 채 죽어 있는 어깨에 문신을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차는 그대로 강물 속으로 빠져들어 죽은 그 남자의 신원을 밝히지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간다. 코리의 아빠는 그 날 이후 죽은 남자의 꿈에 시달리며 야위어 가고, 코리는 사건 현장에 주운 초록색 깃털과 실제였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를 자기를 쳐다봤던 어떤 한 사람의 눈빛을 근거로 제퍼시 안에 살인자가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코리의 일상, 코리의 가족이야기, 코리와 친구들의 이야기, 1960년대를 살아가는 제퍼시 사람들의 이야기, 흑인과 백인의 이야기, 종국에는 어깨에 문신을 한 채 괴물이 사는 강물로 빠져버린 한 남자의 범인이야기까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어떤 작품은 참으로 낯익어서 반갑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참으로 낯설어서 참신하고도 새롭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반면 또 어떤 작품은 너무나 낯익어서 지루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너무나 낯설어서 어색하기도 하다. 이 작품은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성장소설의 뼈대에 살인범을 찾는 미스터리의 형태도 곁들였고, 어떤 부분은 초자연현상이나 판타지적 요소도 있다. 그래서 낯익지만 그런 낯익음을 지루하고 뻔하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낯설다. 우리가 관용어구처럼 쓰는 그런 흔한 표현이 아닌 로버트 매캐먼만이 할 수 있는 그런 표현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자연이 우리의 통제를 멋어나면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이 땅을 다스리라고 내려주었고 우리가 이 영토의 주인이라는 믿음에 익숙해져 있다. 밤에 취침등을 켜놓고 자듯이 그런 환상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러나 진실은 훨씬 무섭다. 토네이도가 불어오면 우리는 어린 나무처럼 연약햊고, 소중한 집도 홍수 한 번이면 나무토막처럼 쓸려 내려가고 만다. 흔들리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 산이 솟았다 꺼지고 선사 시대의 바다들이 안개로 증발한 곳에 살고 있다. 우리의 몸도 우리가 지은 마을도 영원하지 않다. 애초에 지구 자체도 지나가는 기차일 뿐이니까. -p.158

 

인간의 오만함. 내 마음대로 내 몸을 혹은 자연을 쓸 수 있을거라는 헛된 자신감과 믿음을 꼬집어 내는 문구조차도 멋지고 또 멋지다. 선사시대의 바다들이 안개로 증발한 곳이라니. 지구가 지나가는 기차라니 말이다.

 

“아이들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 그러다가 정말로 어른이 되면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 해. 하지만 코리, 선생님이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듣고 싶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 거란다.”
선생님이 속삭였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비밀이라니 무슨 뜻이지? 우리 엄마 아빠는 어른이잖아. 달러 할아버지, 마셰트 대장님, 패리시 의사 선생님, 로보이 목사님, 귀부인, 그 외에도 열여덟 살이 넘은 사람은 다 어른인데?
“어른처럼 보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건 가면이야. 그냥 시간의 흙이 덧씌워진 것뿐이야. 그 사람들도 아직 마음 깊은 데서는 아직 어린아이란다. 뛰고 구르고 놀고 싶어 하지만, 덮어쓴 흙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지 못하는 거야. 세상이 몸에 감아놓은 모든 사슬을 떨쳐버리고 싶어 하지. 시계며 목걸이며 구두를 벗어던지고, 단 하루라도 벌거벗은 채 강물에서 멱 감고 놀아봤으면 하지. 마음 편하게 있고 싶어 해. 집에 가면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고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사랑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얼굴 뒤에는 겁에 질린 작은 아이가 있게 마련이란다. 다치지 않으려고 한없이 구석에 틀어박히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p361~362

 

귀머거리로 장님으로 삶을 살아가기란 아주 쉽고, 앞으로 소년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놀라운 것들로 가득한 퍼레이드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아무것도 못 듣고, 못 보고 지나쳐 버리는 삶.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삶을 천 번이라고 살면서 결코 가보지 못할 나라에서 결코 만나보지 못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 대목에서 문득 <눈먼자들의 도시>를 떠올렸다. 나에게 해가 된다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렇게 살아가는 '어른'들. 다들 눈을 뜨고 말을 하고, 귀로 듣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다들 눈이 멀어버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12살 소년 코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을 풀어내면서도 중심을 놓지 않았기에 끝까지 읽고서야 손을 떼게 만든 멋진 책이었다. 유머 넘치는 문장들, 순간순간 감정에 북받혀 눈물을 흘리게도 만드는 힘. 9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웃다, 울다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돌아가봤으면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12살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었고, 마법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어른이라는 것이 슬퍼지기도 했다. 그리고 내년이면 12살이 될 내 아이가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자신이 가진 마법의 힘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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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날개, 윙스 윙스 시리즈 1
에이프릴린 파이크 지음, 김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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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소설장르, 4부작으로 기획된 에이프릴린 파이크의 소설의 1부 <윙스>이다. YA소설이란 Young Adult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10대가 주인공으로 그들이 겪는 사춘기의 불안정함, 첫사랑의 두근거림, 거기에 초자연현상이나 마법과 동화적 요소들을 가미한 소설들을 일컫는다. 트와일라잇이나 뷰티풀 크리쳐스등의 소설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YA장르는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성인들의 대놓고 하는 사랑보다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청소년들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질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트와일라잇의 전세계적인 인기로 비슷한 류의 소설들이 많이 나왔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식상할 정도였으니까. 이번에 새로 나온 작품인 <윙스>는 요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도, 사람의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도 아닌 존재, 요정.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고등학생의 사랑이야기와 요정세계의 역사를 뒤섞어 달달한 이야기로 탄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녀, 로렐. 로렐은 10년 동안이나 집에서 엄마와 홈스쿨링으로 공부를 하다가 새롭게 서점을 운영하면서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쫓기게 된 부모님을 도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집에서 엄마와 조용히 공부하던 로렐은 학교의 소음을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아 불안하다. 게다가 이온음료와 몇 가지 종류의 과일, 야채를 빼고는 다른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 식습관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될까봐 또 두렵다. 그런 로렐에게 데이빗이 친구가 되어준다. 처음 접하는 학교, 불안한 학교생활에서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는 데이빗이 고맙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도 여드름 하나 나지 않는 로렐. 아직 생리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 로렐의 등에 뾰루지가 났다. 하하, 반가워해야 하는 순간. 뾰루지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이제 뾰루지가 아니라 악성 종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뾰루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날개가 생겼다. 아니 꽃이던가? 등에서 꽃이 피는 사람이라니. 이게 왠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가족과 함께 전에 살던 집을 보러 간 로렐은 집 뒤편 숲에서 타마니라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끄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등에 난 그것은 꽃이며, 곧 지겠지만 내년엔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로렐은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고 요정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로렐의 비밀은 가족을 위험으로 몰아 넣게 된다.

 

지금처럼 다들 아파트에 살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정말로 굴뚝을 타고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시는 거라고 정말 굴뚝같이 믿었던 아이들도 있었다. 피터팬을 읽으면 나도 피터팬을 만나고 싶다고, 왜 우리집에는 피터팬이 오지 않는거냐고 묻기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동심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조금씩 더 많이 발 디디게 되면서 사라지고, 어느 샌가 요정이니 마법같은 건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저 상상 속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더 오래 그런 이야기를 믿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치부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풍부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는 이야기를 읽노라면 정말로 어디엔가 요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비웃으며 머리를 젓게 되는 것이다.

 

전형적인 영어덜트 소설답게 주인공은 핏기없이 하얀 얼굴에 누구라도 좋아할 얼굴을 가졌지만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가장 멋진 남학생의 대쉬를 받고 그와 연인이 되지만 자신이 속한 요정의 세계에도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누군가가 있다. 인간 세상의 남자친구인 데이빗을 만나면 요정 세계의 연인 타마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타마니를 만나고 나면 데이빗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누구라도 마음 속엔 각기 다른 색깔로, 다른 무게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로렐이 데이빗이나 타마니를 두고 갈팡질팡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게다가 요정 세계에서의 일을 잊어버린 로렐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타마니에 대한 한 조각 마음이 발동하여 자신도 모르게 타마니에게 끌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4부작이다 보니 이야기의 운만 떼어놓은 느낌인지라 감질 맛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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