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때부터 동경해왔던 소우와 사귀게 된 아이는 휴가로 간 호텔에서 소우의 어릴 적 친구인 다쿠마와 그의 연인인 사이카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연예인인 사이카는 주변에 자신과 다쿠마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어색할 정도로 오만불손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고 때문에 아이는 사이카를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넷이 함께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고,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바퀴가 진창에 빠져버리게 되면서 빗속을 뚫고 소우와 다쿠마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가버리고 아이와 사이카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번개에 맞아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무서워하는 사이카를 달래는 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어린애처럼 매달리는 사이카,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아이와 사이카는 처음과는 달리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아이를 위해 사이카가 도움을 주면서 갑작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된 것 같았다. 여행 이후 소우와 아이는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아이는 기쁜 소식을 사이카에게도 전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다쿠마에게 이별을 고했던 사이카는 그 다른 사람이 아이라는 말을 한다.

아마도 아이만큼 나도 놀랐을까? 원래가 스릴러만 읽는 사람이라 사이사이 다른 장르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몇권 되지 않는 사람인데다 연애소설의 포션은 그리 크지 않다. 제목만 보고 ' 아, 봄인데 모처럼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을 한편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퀴어물이었다니. 예전에는 책날개, 띠지, 책 뒤편의 설명까지 한번씩 훑어보고 읽곤 했었는데 요즘은 어떤 정보도 없이 그냥 읽는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읽다가 마주치는 새로움의 크기가 제법 크기 때문인데 아, 정말 놀랐다. 연애소설을 읽다가 놀라기는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다. 이 책은 아이에게 반해버린 사이카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아이는 고백을 받은 뒤 이런 식이라면 다시는 너를 만날 수 없겠다고 하면서도 그녀가 걱정이 돼 다시 또 찾아간다. 그런 자신의 감정을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언젠가 불륜을 저지른 남자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읽었다. 그는 불륜이라는 것 앞에는 어떤 거대한 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쉽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특히 너무나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아내와의 사이에 어떤 특별한 문제도 없는 남자가 그렇게 쉽게 불륜을 저지를 수 있을 거라고는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그저 평범한 남자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말했다. 그렇게 크고 높은 벽이 아니었다고. 어느 샌가 그냥 한발자국을 떼어보니 그 벽 너머에 자신이 서 있었다고. 그걸 읽었을 땐 변명치곤 참 치졸하다고 생각했다. 웃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그 높고 거대한 벽이라고 느껴졌겠지?

그들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동성간의 사랑이기도 했거니와 사이카는 유명연예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사이카의 사랑을 받아들인 아이도 결혼까지 생각했던 소마와 이별을 택했지만 소속사도 전남친도 가족도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딱히 기이하다 여긴 적은 없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승강장의 노란 선을 밟은 듯한,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열차가 들어오면 자칫 부딪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뒤로 물러나야 한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123쪽

유명해지도 나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직접 체험했어. 나를 미치도록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잘못됐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안 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별의별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한다면 분명 이 세상에서도 숨통이 트일 거야.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430쪽

미안하다, 엄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 알아. 그냥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넌 내 딸이잖아, 앞으로 고생길이 훤한데 어느 부모가 선뜻 그러라고 하겠니.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439쪽

동성간의 사랑을 이해한다 혹은 이해하지 못한다와 상관없이 어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서로에게 가 닿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눈이 부시다. 이 이야기는 그런 눈부신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들이 겪는 부침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이카의 말마따나 혹시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면 된다. 또한 나에게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억지로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애써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말이다.

매일 지루한 날이 계속되더라도 한자리에 고여 있을 수는 없다. 모든 건 변화하기 마련이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육체는 쇠하며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뼈와 재, 먼지가 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누군가를 함부로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을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4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빵을 좋아하는 나는 제목을 보자 마자 그냥 마음에 들었다. 우리집 다른 식구들도 다들 한마디씩 했다. 우리집 얘긴가, 하면서 말이다. 소설집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첫 단편이자 표제인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을 보면서 계속 키득거렸다. 너무 발상이 신선해서 길지 않은 단편 모두를 전부 옮겨 적을 뻔 했을 정도다. 도대체 작가는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시선이 참신한거지? 하고 궁금해져서 곽재식이라는 작가를 검색해봤다. 화학자이고, 소설가이고 현재는 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한다. 이 정도는 아주 짧은 경력이고 더 자세하게 들어가서 곽재식이라는 사람의 경력으로 책을 쓴다고 한다면 제목은 아마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깊은 지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외국어 고등학교 시절에는 중국어를 전공했으면서 카이스트에 들어갔고, 이론화학을 전공하면서 교내 문학상을 두번이나 받았다. 화학자, 환경공학자는 본업이고 작가는 부업에 가깝다고 하는데도 부업이라고 하기엔 출간한 책도 워낙 많고 이 책을 읽어보니 가독성도 좋다. 이렇게 다 가진 사람, 부럽다.

그의 신선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들을 가져와 봤다.

특히 이 행성에 사는 미생물인 '사람'이라는 생물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고 해야 할 정도다. 태양 제3 행성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생물은 식물과 세균이다. 사람은 그 식물과 세균에 기생해서 살아가고 있는 미생물의 일종이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中 9쪽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파괴하기 위한 무기를 갖추는 데 소모하는 비용은 대단히 막대하다.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파괴하거나 분해하기 위한 장비보다도, 같은 사람들을 파괴하고 분해하기 위한 장비를 갖추는 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외로움을 많이 타고 무척 연약한 생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더 기괴한 습성이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中 14쪽

대체로 사람이라는 생물은 작은 이익을 두고 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이제 그 사람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중략)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산소와 에너지를 담고 있는 몸속의 붉은 액체를 가끔 그저 별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도 있다. 신비하지 않은가?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中 17~18쪽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이라는 단편에서는 2시간 안에 정보 이용 세금 정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김박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회사 공용전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 죄로 그 세금 보고서를 내야 하는 담당자로 인식이 되고, 법령을 위반한 죄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120분 동안 각종 서류를 출력하고, 사이트에 가입하고 하는 등의 일들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이 단편을 읽자마자 떠오른 한 영상이 있다. 처음 봤을 때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았는데 아마 이 영상 속의 아저씨가 김박사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단>이라는 단편은 한 사람의 말이다. 이제 막 출근한 김대리가 과장으로부터 듣게 되는 잔소리의 처음과 끝이 한편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라고 시작하는 말은 그 말을 하려는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안했으면 좋겠다. 안 하려고 한 말을 왜 하는 건지, 도대체!!!! 과장은 김대리의 인사를 받은 뒤 열쪽에 해당하는 잔소리를 퍼부었다. 구구절절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읽는 사람조차 진절머리가 난다. 자기는 하고 싶은 말 다 한 다음에, 없었던 일로 치자고 하면 없었던 일이 되나? 어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을까 싶어서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하다.

내가 너무 유치한 이야기라서 이런 이야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냥 딱 까놓고 이야기 해서 내가 김대리보다도 나이도 세 살이 많고, 경력도 4년이 길고, 회사에서는 그래도 회삿밥 몇 그릇 더 먹은 과장이라는 직함도 달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무슨 상급자라고 갑질을 하려거나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내 기분을 입장 바꿔서 순수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판단> 中 137쪽

아침부터 나한테 이런 말 들으니까 짜증 나고 듣기 싫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서 내가 길게는 말 안 하는데, 그냥 사회 생활, 아니 그냥 사람으로 사는 삶에서 가장 기초를 이야기하는 거니까, 한번 생각해보라고.

<판단> 中 141쪽

그래, 김 대리. 이게 무슨 크게 일을 키워서 막 사람을 면박 주고 그래야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오늘 일은 그냥 없었던 셈 치자고. (중략) 나도 그냥 김 대리가 한 그 행동이 도애체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는 안 가. 그렇지만, 뭔가 그 순간만의 이유가 있어서 본의와는 다르게 한 행동이라고 받아들일게. 지금 이 시간부터 다 잊을 거야. 그러니 너무 깊게 마음에 담아둘 일이라고 생각하진 말고. 그래. 가서 일하자.

<판단> 中 144쪽

곽재식 작가의 소설집은 신선한 SF였다가 우리 주변의 일상이었다가, 또 어느 순간엔 과학이었다가 스릴러의 느낌을 주기도 하는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집이었다. 어느 하나의 주제나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아서 참신했다. 혹시 언젠가 작가의 자리에 '곽재식'이라는 이름이 씌여 있다면 아마도 단숨에 집어들어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8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많은 회귀 속에서도 놓지 않는 것이 있따면 반대로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결국 유중혁의 목적은 '이 세계의 멸망을 막는 것'.

역설적이게도 녀석은 그 목적을 위해 '언제든 이세계를 포기할 수' 있었다.

녀석의 본질은 회귀자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7권 중 29쪽

"죽음을 모르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죽음 이후에는 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인간은 죽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을 겪을 수는 없다. 그건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7권 중 83쪽

[마지막 과정은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모두 잊어라. 스킬을 잊고, 레벨을 잊고, 이야기를 잊어라. 결국 시스템이 제시하는 길은 수많은 존재가 '보편'으로 책한 길이다. 너만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수련하고 수련하고, 또 수련하고. 극한의 수련 끝에 스킬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설화가 된다.

시나리오를 통틀어 성좌에 비견될 수 있는 필멸자의 정점.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8권 중 65쪽

기적이란 있다. 김독자가 41회차의 신유승을 구한 것처럼.

치유받을 수 없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는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8권 중 78쪽

게임 베이스의 소설이기 때문에 온갖 판타지적 요소가 난무한다 해도 뭐라도 태클을 걸 수 없다. 심지어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긴 호흡의 웹소설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결국 웹소설이 웹툰으로 그리고 다시 단행본으로 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가 가진 힘이고,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단순히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들을 구매하고, 그 아이템들로 태산을 밀고 하늘을 가르고 산자와 죽은자를 나누어 놓은 곳까지 들락거린다는 것만 보여줘서는 다른 수많은 게임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지난 화의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김독자와 다른 캐릭터들의 한걸음 한걸음이, 그리고 그들이 클리어 하는 시나리오의 한장면 한장면들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또다른 버전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그들이 여태까지의 세상을 바꾸고 그들만의 결말을 써내려 가려고 애쓰고 희망을 가지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나리오를 통해서 자신의 레벨을 설화급으로 올리려는 김독자의 모습을 보면 그건 단순히 게임 속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다.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 인생이 하나의 시나리오라면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시나리오를 클리어해야 할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그런 허접한 이야기로만 채우다 끝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역사에도 길이 남을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처럼 죽음도 이겨낼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현실이라는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한 챕터 한 챕터를 성의있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웹소설을 확인해보니 <전지적 독자 시점>의 Part 1 전 8권은 겨우 현재까지 나온 이야기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었다. 앞으로 이 광대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웠던 전지적 작가 시점, 이라는 것은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행동, 태도, 내면까지 모두 알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말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란 모든 것을 아는 독자, 여기서는 그 책을 읽은 사람이라는 reader로써의 독자라는 뜻과 그 책을 읽은 사람의 이름인 독자, 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이중적 의미를 싱숑은 이 작품의 여러 곳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 돔에서 시나리오를 펼치던 독자와 유중혁,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다른 행성으로 옮겨 새로운 시나리오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피스 랜드'라는 곳이고 그들은 피스 랜드에 도착한 재앙의 역할을 맡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가 어딘가에서는 거인 취급을 받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소인이 되고 마는 그런 것처럼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에선가는 이런 모습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저런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시나리오를 통해 투영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터에서는 마냥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야 하던 사람이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는 갑질을 하며 자신의 비위를 맞추라고 악을 쓰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돔에서는 재앙을 상대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데 급급했던 독자의 일행들이 피스랜드에서는 거대한 재앙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야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수 있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에 좌절하고 만다. 어쩌면 개미만큼 작은 피스랜드 행성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것이 쉬운 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고, 인간성을 택하는 길이란 쉬운 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행성 '피스 랜드'의 '재앙'이 됐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 세계를 파괴하는 재앙이 되어야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21쪽

아마 신유승은 자신의 결심을 후회할 것이다. 편한 시나리오에서 '편함'을 포기한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게 될테니까. 하지만 편의를 포기하더라도 신념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37쪽

"그거 아세요?"

"음?"

"시나리오가 없을 때도 사람은 계속 죽었어요.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소박한 이유로, 먼지처럼 죽었어요."

왜 불쑥 그런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키리오스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여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 세계가 더 불합리했거든요.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수렁 같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151~152쪽

얼마 전에 <휴거 1992>라는 책을 읽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갖다 바치고 가족들을 멀리하게 되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끝까지 이해는 할 수 없었는데 독자 일행이 도착한 낙원과도 같은 곳에서 이해의 한조각을 얻은 것 같기도 하다. <휴거 1992>에서는 마지막 날에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맹목적 믿음이었다면 <전지적 독자 시점>의 낙원에서는 꿈도 미래도 없이 오로지 가장 위대한 현재만을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리라는 믿음이었다. 결국 그들이 바란 건 헛되고 거짓일지언정 '희망'이라는 것이었고 결국 인간이란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면 살아갈 원동력을 잃고 주저앉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래를 거세당하고 낭떠러지 같은 현실과 마주한 인간은 대개 희망을 잃는다. 현실이 끔찍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절망해 무너지고, 누군가는 무분별한 욕망을 풀어 짐승처럼 변한다.

또 어떤 이는 이성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히는데, 이 과정이 반복되면 마지막에는 스스로 구원교도가 된다. 그렇게 구원교도가 된 이는, 니르바나가 일컫는 '위대한 현재'를 숭배하는 충직한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151~1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5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지적 독자 시점>에는 현실 세계에 있다가 급작스럽게 세상의 멸망과 함께 게임의 세계로 들어왔지만 게임의 스토리 라인을 미리 읽어 알고 있는 제목 그대로의 전지적 독자 시점을 가진 김독자라는 주인공과 김독자가 읽은 그 게임소설 속의 진짜 주인공인 회귀자 유중혁이 있다. 김독자는 이미 그 소설의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게임공략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유중혁은 소설 속의 게임을 몇번이나 되풀이하며 회귀하였기 때문에 김독자와 비슷한 치트키를 가졌다 할 수 있다. 다만 유중혁은 게임의 끝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게임의 끝이 어떤 결말인지 알 수 없고, 그래서 자주 회의감에 빠지며, 혹시 게임의 흐름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어차피 지금 죽는다해도 다시 첫판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니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관심도, 애정도 없다. 다만 자신앞에 닥친 스테이지를 깨고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서 이 게임의 끝을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런 유중혁과 달리 김독자는 현실세계에서 넘어왔고, 자신과 함께 원래 소설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았거나 소설 초반에 목숨을 잃었거나 혹은 비중이 없던 인물들이 자신과 함께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의 끝까지 함께 달려가서 게임의 세계를 깨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유중혁의 회귀, 즉 죽음이 게임을 리셋하게 된다면 현실이라고 믿는 자신의 존재가 게임 속에서 다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유중혁을 회귀하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에 김독자는 유중혁을 끝까지 챙긴다. 그리고 유중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캐릭터들에게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덧입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게임 속 이야기는 유중혁이 알아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전개된다.

신유승이 입을 열었다.

"수천 년이 걸렸어."

신유승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세월을 헤아릴 수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41회차의 유중혁이 행한 일은 살인보다 끔찍했다. 수천 년. 하나의 인격이 모조리 붕괴하고 자아마저 마모될 시간. 신유승은 그 시간을 버텨 마침내 '재앙'이 되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5권 중 100쪽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 앞에 있는 시나리오를 깨기 위해서 누군가를 시간 저 너머로 보낸 유중혁과 그를 위해 천년의 시간을 견뎌낸 신유승. 하지만 지난한 시간은 한 사람을 '재앙'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두 번도 아니고 백번이 넘는 회귀동안을 애써도 변하지 않는 멸망의 굴레를 매번 다시 겪어야 하는 유중혁에게 어쩌면 '인간성'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임 시나리오 속의 캐릭터라면 당연히 프로그래밍 된 인물일테니까. 그런 유중혁이 김독자를 만나면서 바뀌어 가듯, '재앙'도 다른 생각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유중혁의 변화를 시작으로, 그녀의 아집은 어린 신유승과 맞닿은 순간 부스러졌다. 유중혁에 대한 증오. 천 년에 달하는 세월에 쌓아온 분노. 그 견고한 감정이, 흘러 들어온 기억의 파랑에 무너지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어쩌면 이 세계가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5권 중 143쪽

그저 소설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재미로 읽는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게임 속 캐릭터조차도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변화하고 그 변화에 스토리가 바뀌고 이 세계가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도 너무 분노하고 화가 나게 하는 기사들, 뉴스들을 볼때면 아, 정말 인간이란 족속은 희망이란 것이 없는 것인가 좌절하게도 되지만 그럴 때는 일부러라도 감동을 주는 비디오클립이나 뉴스기사들을 찾아보곤 한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희망과 감동을 주는 그런 일들이 찾아보면 충분히 많이 있다. 소설 속의 김독자와 유중혁이 그러하듯, 현실 속의 나도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아 가고 있고, 아직은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결말이라고 충분히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