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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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웠던 전지적 작가 시점, 이라는 것은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행동, 태도, 내면까지 모두 알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말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란 모든 것을 아는 독자, 여기서는 그 책을 읽은 사람이라는 reader로써의 독자라는 뜻과 그 책을 읽은 사람의 이름인 독자, 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이중적 의미를 싱숑은 이 작품의 여러 곳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 돔에서 시나리오를 펼치던 독자와 유중혁,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다른 행성으로 옮겨 새로운 시나리오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들이 도착한 곳은 '피스 랜드'라는 곳이고 그들은 피스 랜드에 도착한 재앙의 역할을 맡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가 어딘가에서는 거인 취급을 받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소인이 되고 마는 그런 것처럼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에선가는 이런 모습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저런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시나리오를 통해 투영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터에서는 마냥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야 하던 사람이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는 갑질을 하며 자신의 비위를 맞추라고 악을 쓰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돔에서는 재앙을 상대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데 급급했던 독자의 일행들이 피스랜드에서는 거대한 재앙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야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수 있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에 좌절하고 만다. 어쩌면 개미만큼 작은 피스랜드 행성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것이 쉬운 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고, 인간성을 택하는 길이란 쉬운 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행성 '피스 랜드'의 '재앙'이 됐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 세계를 파괴하는 재앙이 되어야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21쪽

아마 신유승은 자신의 결심을 후회할 것이다. 편한 시나리오에서 '편함'을 포기한 존재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게 될테니까. 하지만 편의를 포기하더라도 신념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37쪽

"그거 아세요?"

"음?"

"시나리오가 없을 때도 사람은 계속 죽었어요.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소박한 이유로, 먼지처럼 죽었어요."

왜 불쑥 그런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키리오스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여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 세계가 더 불합리했거든요.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수렁 같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151~152쪽

얼마 전에 <휴거 1992>라는 책을 읽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갖다 바치고 가족들을 멀리하게 되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끝까지 이해는 할 수 없었는데 독자 일행이 도착한 낙원과도 같은 곳에서 이해의 한조각을 얻은 것 같기도 하다. <휴거 1992>에서는 마지막 날에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맹목적 믿음이었다면 <전지적 독자 시점>의 낙원에서는 꿈도 미래도 없이 오로지 가장 위대한 현재만을 위해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리라는 믿음이었다. 결국 그들이 바란 건 헛되고 거짓일지언정 '희망'이라는 것이었고 결국 인간이란 희망이라는 것이 없다면 살아갈 원동력을 잃고 주저앉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래를 거세당하고 낭떠러지 같은 현실과 마주한 인간은 대개 희망을 잃는다. 현실이 끔찍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절망해 무너지고, 누군가는 무분별한 욕망을 풀어 짐승처럼 변한다.

또 어떤 이는 이성을 잃고 분노에 사로잡히는데, 이 과정이 반복되면 마지막에는 스스로 구원교도가 된다. 그렇게 구원교도가 된 이는, 니르바나가 일컫는 '위대한 현재'를 숭배하는 충직한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6권 중 151~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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