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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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동경해왔던 소우와 사귀게 된 아이는 휴가로 간 호텔에서 소우의 어릴 적 친구인 다쿠마와 그의 연인인 사이카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연예인인 사이카는 주변에 자신과 다쿠마와의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어색할 정도로 오만불손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고 때문에 아이는 사이카를 도저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넷이 함께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고,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바퀴가 진창에 빠져버리게 되면서 빗속을 뚫고 소우와 다쿠마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가버리고 아이와 사이카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번개에 맞아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무서워하는 사이카를 달래는 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어린애처럼 매달리는 사이카,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아이와 사이카는 처음과는 달리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아이를 위해 사이카가 도움을 주면서 갑작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된 것 같았다. 여행 이후 소우와 아이는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아이는 기쁜 소식을 사이카에게도 전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다쿠마에게 이별을 고했던 사이카는 그 다른 사람이 아이라는 말을 한다.

아마도 아이만큼 나도 놀랐을까? 원래가 스릴러만 읽는 사람이라 사이사이 다른 장르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몇권 되지 않는 사람인데다 연애소설의 포션은 그리 크지 않다. 제목만 보고 ' 아, 봄인데 모처럼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을 한편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퀴어물이었다니. 예전에는 책날개, 띠지, 책 뒤편의 설명까지 한번씩 훑어보고 읽곤 했었는데 요즘은 어떤 정보도 없이 그냥 읽는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읽다가 마주치는 새로움의 크기가 제법 크기 때문인데 아, 정말 놀랐다. 연애소설을 읽다가 놀라기는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다. 이 책은 아이에게 반해버린 사이카가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면서 시작한다. 아이는 고백을 받은 뒤 이런 식이라면 다시는 너를 만날 수 없겠다고 하면서도 그녀가 걱정이 돼 다시 또 찾아간다. 그런 자신의 감정을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언젠가 불륜을 저지른 남자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읽었다. 그는 불륜이라는 것 앞에는 어떤 거대한 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쉽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특히 너무나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아내와의 사이에 어떤 특별한 문제도 없는 남자가 그렇게 쉽게 불륜을 저지를 수 있을 거라고는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그저 평범한 남자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말했다. 그렇게 크고 높은 벽이 아니었다고. 어느 샌가 그냥 한발자국을 떼어보니 그 벽 너머에 자신이 서 있었다고. 그걸 읽었을 땐 변명치곤 참 치졸하다고 생각했다. 웃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그 높고 거대한 벽이라고 느껴졌겠지?

그들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동성간의 사랑이기도 했거니와 사이카는 유명연예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사이카의 사랑을 받아들인 아이도 결혼까지 생각했던 소마와 이별을 택했지만 소속사도 전남친도 가족도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딱히 기이하다 여긴 적은 없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승강장의 노란 선을 밟은 듯한,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열차가 들어오면 자칫 부딪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뒤로 물러나야 한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123쪽

유명해지도 나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직접 체험했어. 나를 미치도록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잘못됐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안 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별의별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한다면 분명 이 세상에서도 숨통이 트일 거야.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430쪽

미안하다, 엄마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 알아. 그냥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넌 내 딸이잖아, 앞으로 고생길이 훤한데 어느 부모가 선뜻 그러라고 하겠니.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439쪽

동성간의 사랑을 이해한다 혹은 이해하지 못한다와 상관없이 어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서로에게 가 닿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눈이 부시다. 이 이야기는 그런 눈부신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들이 겪는 부침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이카의 말마따나 혹시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면 된다. 또한 나에게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억지로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애써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말이다.

매일 지루한 날이 계속되더라도 한자리에 고여 있을 수는 없다. 모든 건 변화하기 마련이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육체는 쇠하며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뼈와 재, 먼지가 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누군가를 함부로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을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中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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