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처럼 비웃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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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미스터리와 민속학적 호러의 절묘한 만남이라는 광고 문구가 딱 어울리는 말이다. 일본색이 강렬한 표지의 여인은 언뜻 아릅답기도 하고 언뜻 무섭기도 하다. 일본표지는 훨씬 더 섬뜩하고 무섭지만 아마도 그대로의 표지였다면 나는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표지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웠으니까. 게다가 산마라니..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이 떠오른다. 지나가는 나그네는 산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발견한 작은 불빛에 의지해 길을 간다. 그 작은 불빛은 그렇게 깊은 산 속에 있을 법하지 않은 작은 집에서 새어 나오는 것이었고, 그 집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어여쁜 여인이 있다.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자 소박하나마 저녁상을 내어오는 여인에게 반하여 하룻밤 운우의 정을 나눈다. 날이 밝아 눈을 떠보니 어젯밤 그 따스한 온기를 내뿜던 집은 폐가였고 옆에 누운 어여쁜 여인은 백골이 된지 오래 된 모습이었다. 어렸을 적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퍼런 불빛을 내뿜던 TV 그림자가 방바닥을 비추는 것만 바라보다가, 다시 그 불빛이 사그라들면 고개를 들고 전설의 고향을 보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무서운 걸 보고 나면 화장실 가기도 어려웠는데 왜 그렇게 무서운 걸 보고 싶어했는지. 우리 아들도 심하게 무섬을 타는 편인데도 간혹 무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은 첫 마디에 말한 것처럼 본격 미스터리에 민속학적 호러를 곁들인 작품이다. 전통적인 마을 하도, 이 마을에는 성인참배라는 의식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하도에서 태어난 남자가 스무 살이 되는 해 백중에 삼산의 외사당에서 내사당까지 혼자 가서 배례를 하는 의례로 이른 바 성인식이다. 고키 가의 다른 아들과 달리 성인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넷째 아들인 고키 노부요시에 대해 말이 많지만 노부요시는 고향을 떠나 선생님 노릇을 하며 조용히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성인 참배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산길을 따라 사당참배를 하던 중 산속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에 놀라 그 소리를 따라갔다가 길을 잃은 노부요시는 할머니에게 늘 들어왔던 들어가면 안 될 산, 흉산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만다. 어두워지는 산길을 따라 정신없이 헤매던 노부요시가 찾은 것은 돌아가야 할 길이 아니라 그 흉산에 있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집 한 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의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에 느꼈던 이질감과 무서움은 다음 날 현실이 된다. 문은 모두 잠겨있고, 금방까지도 밥을 먹던 모양새의 식탁은 그대로인데 어젯밤 그 기이한 가족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노부요시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흉가에서 일어났던 일을 지우지 못해 괴로워한다.

 

한편 마을을 떠돌며 기이한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방랑추리작가 도조 겐야는 노부요시의 이야기를 듣고 하도 마을을 찾아간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겐야가 찾아간 그 하도마을에서 마을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노랫말 그대로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겐야는 그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아~ 정말로 무서운 책이다.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오랫만에 밤 중에 등뒤가 오싹오싹해져 책을 들고 앉았다가, 누웠다가, 벽에 등을 대었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온다 리쿠 여사의 책을 읽은 후로 정말 오랫만에 느끼는 공포다. 사실 SF장르와 함께 좋아하지 않는 장르가 있다면 호러이다. 직접적으로 귀신이 나오거나 하지 않더라도 기괴한 이야기들이 귀신을 연상하게 하는 그런 느낌의 이야기나 영화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왜? 무서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참으로 맛깔나다. 그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그것이 모두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나 한심하다는 말을 작품 속의 겐야가 한다. 사건의 본질을 파헤쳐보면 그것은 산마나 다른 어떤 기이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실로 무서운 '사람'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 사람의 욕심과 분노, 욕망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미스터리 안에 호러가, 그리고 그 안에 인간의 본성을 꼬집는 철학까지 멋지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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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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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혼잣말들을 많이 한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대사를 전달하는 한 방법으로 쓰이기 때문에 그렇지 사실 실생활에서 혼잣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사람은 우습다. 우습다 못해 심한 경우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기 딱 십상인 것이 바로 '혼잣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매튜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아버지가 발견한 매튜의 모습은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혼잣말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언쟁을 벌이고 싸우는 듯한 매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대화를 나누는 매튜, 매튜는 그 존재의 이름이 초키라고 했다.

 

이 소설은 1968년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세련됐다. SF라고 하면 외계에서 생물체가 날아들고, 무언가 생경한 것들을 무기로 삼거나, 이상하게 생긴 외계생물체와의 만남 정도까지만 생각하는 내 상상력의 한계가 부끄럽다. 매튜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초키는 외계에서 왔다. ET나 스타워즈에서처럼 지구인이 보기에 기이한 외모를 가진 생물체로 매튜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초키의 마음이 매튜에게로 왔다. 그리고 매튜에게 외계지성의 눈을 뜨게 하여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보는 것들을 다르게 보게 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의문과 의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부여해준다. 초키가 매튜를 선택한 이유는 너무 어리지 않으며, 너무 다 자라버려서 자기만의 고집으로 똘똘 뭉쳐져 버린 어른이 아닌 존재를 고르는데 매튜가 적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린 마음을 가졌을 것! 아마도 이 이야기의 키포인트는 이것이 아닐까? 열린 마음을 가진다는 것.

 

일단 이 이야기가 SF냐 아니냐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가진 엄마 혹은 부모된 입장에서 볼 때 아이가 혼잣말을,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도 지속적이면서도 꾸준히, 그건 심각한거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이름이 있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떤 부모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외국도 다르지 않아 매튜의 엄마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누가 알까 쉬쉬하고, 적당히 저러다 말겠거니 하면서도 상태가 심각한 것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아빠는 조금 다르다. 일단은 믿어주기로 한다. 자신은 미친 게 아니라고 말하는 매튜에게 초키란 친구가 정말 있다고 믿어'주기로' 한다. 믿게 되었다는 것과는 다르다. 아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으로 하자는 식이었다, 처음엔. 하지만 조금씩 매튜의 일관된 이야기와 행동,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자신도 점점 초키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튜의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네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매튜 아빠는 조금 다르다. 그런게 어디 있냐며 윽박지르고, 아이를 울리는 것과는 달리 조금씩 조금씩 매튜의 마음을 열어, 있는 그대로를 말하게 도와준다. 처음엔 거짓으로라도 믿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 아이와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모습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화가 없어지고 서로를 이해하기는커녕 불신하거나 심지어 미워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저 공부, 공부, 공부 그리고 일등, 일등, 일등만을 위해 아이를 몰아세우고, 가장은 그런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이가 아버지의 얼굴 보기도 힘든 세상으로 내몰려 있다. 누구를 위한 일이며, 누구를 위한 공부인가 의심스럽다.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아이들은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아버지로 만들어버린다. 아이들은 누구를 위한 공부인지도 모르고 학원으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돈다. 물론 이 책의 매튜는 아직 부모와의 관계가 많이 단절되지 않은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라고 해서 우리는 '네가 뭘 안다고 그래?'하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이다. 아이는 아이만의 세상이 있다. 조금이라도 허튼 소리를 하면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아이의 진심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늘 아이와의 교감이 필요하다. 그렇게 아이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겐 더 이상 초키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SF라는 장르에 대한 편견을 없애 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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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0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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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국에서 일년쯤 산 기억이 있다. 그 때 무슨 행사가 있었고 그 행사에 '코리아나'라는 그룹이 와서 노래를 불렀다. 사실 88올림픽 이후 코리아나라는 그룹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었지만 그 그룹에게 크게 애정이 있었던 편은 아닌지라 유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그 행사에 무슨 큰 기대가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코리아나가 애국가를 부르고, '손에 손잡고'를 부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더랬다. 그렇게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처음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접했을 때 '순신'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응? 이건 뭐지 싶었다. 그의 작품에는 늘 그렇게 한국인이 등장했다. 알고보니 작가 자신이 재일교포였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은 왠지 정이 간다.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면서 느꼈을 법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녹아있으리라. 1934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9살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법 사업을 크게 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하게 살았던 그 할머니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어쩌다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면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그 일본인 친구들은 구경도 못해봤을 법한 맛난 것들로 대접을 해주었다. 아마도 딸이 학교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그 귀하고 맛난 것들을 다 먹고 돌아갔으면서도 학교에 가서는 그 할머니를 외면했고, 그네 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흉을 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마음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를 미워했고 왜 우리 엄마는 일본 사람이 아니고 조선사람일까, 가난해도 좋으니 일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네시로 가즈키를 떠올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감정적 대응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스포츠를 할 때도 1등은 못해도 괜찮지만 일본에게는 지면 안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한일간에만 존재한다.

 

'더 좀비스'의 완결편. 우리나라로 치면 똥통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사고나 치는 사회의 이른바 루저들. 밝고 경쾌한 고딩들의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사실 들으면서 그닥 마음 편하지는 않다. 체벌이라기엔 폭력에 가까운, 아니 폭력이 분명한 선생들의 무차별적 행동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좀비들은 쿨하게 받아들인다. 이걸 견뎌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니라고. 이걸 견뎌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고 낙오자라고 아직은 낙인찍지 마라. 우리는 아직 아무데도 속하지 않은 미완의 청춘들이니까. 인생이니 민족이니 지배층이니 피지배층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말 따위도 하지 마라. 우리는 따분한 것을 견딜 수 없는 파랗다 못해 시퍼런 청춘이니까.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작품에 배경음악을 깔아 준다면 이런 노래쯤이 되지 않을까? 젊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고 청춘에게는 말해주어야 한다. 내가 비록 기성세대, 그들에게는 꼰대가 되어버린 나이이지만 말이다. '더 좀비스'를 기억하며 이제 청춘이 될 내 아이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가슴을 내어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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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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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멋진 미소를 지녔고, 설득력있는 언변을 지닌 성공한 한 남자가 정체불명의 편지를 받는다. 섬뜩하게도 빨간색 잉크로 씌여 있는 편지에는 1부터 1000까지 사이의 숫자 하나를 말해보라고 적혀있다. 남자는 숫자 하나를 생각해내고, 편지에 적힌 대로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봉투를 열라는 지시에 따른다. 그가 생각한 숫자는 '658'이었고, 명령에 따라 열어 본 작은 봉투 안에는 그가 생각한 그대로 '658'이 적혀 있다.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투의 말투.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이 아무렇게나 생각해 낸 숫자를 작은 봉투에 적어 보낸 편지를 받는다면? 얼마나 섬뜩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물며 그 편지를 받은 그 성공한 한 남자는 한 때 술의 노예였고, 술을 먹고 정신을 잃었던, 자신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때의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대학동기이며 가장 훌륭한 형사였던 데이브 거니를 찾아간다. 이미 은퇴한 형사인 거니는 친구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권유하지만, 경찰이 개입하여 사건이 확대될 경우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될까봐, 혹은 아직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어떤 명목으로 신고하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신고를 망설인다.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아내에게 늘 소홀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가진 거니는 친구의 도움을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흥미를 돋우는 친구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던 중 친구는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588쪽의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인데, 과연 편지를 쓴 남자는 어떻게 그 사람이 생각할 숫자를 미리 알았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비교적 빠른 템포로 책이 넘어갔다. 제프리 디버나 마이클 코넬리의 책에서처럼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와 그를 쫓는 한 사람의 특출난 형사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구도이다. 데이브 거니는 은퇴한 형사이고 범인을 잡는데 있어서는 특별한 감과 능력을 가진 남자이지만 가정생활에서는 뭔가 심각하게 삐걱대는 완벽하지는 못한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아내와 아들의 마음을 알고는 있지만 아는만큼 헤아리지는 못한다. 범인의 눈빛을 읽고 범인의 생각을 앞서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비슷한 구도이지만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신선한 소재 덕분에 이야기는 빠르게 몰입되어 갔다. 게다가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를 넘어서서 어떻게,라는 의문이 지속되는 동안의 몰입도는 정말 굉장하다. 범인의 범행동기와 내면 뿐만 아니라 아픔을 지닌 거니라는 형사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도 이야기의 수준을 높이는데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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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트 피크닉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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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젊은(게다가 예쁘기까지 한) 여성작가가 쓴 우리나라 소설이라 가볍고 말랑말랑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에어포트 피크닉이라는 제목에서도 한껏 멋을 부린 허영같은 냄새를 맛보았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소재만큼은 독특하고도 재미나다고 생각했다. 2010년 4월 14일. 불와 얼음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화산활동이 활발한 나라 아이슬랜드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화산재들로 인해 유럽과 미국 공항들이 항공대란을 겪었다. 유럽과 미주대륙을 잇는 항공편들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돼 공항을 찾은 시민 수만 명의 발이 묶였고 일부 비행기는 공항을 이륙했다가 회항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하는 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소설은 생각보다 말랑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 유럽으로 떠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그곳으로 떠나려던 사람들도 모두 발이 묶였다. 순식간에 공항은 인종과 국적, 나이와 성별을  무시한 거대한 캠핑장이 되어버렸다. 단지 유럽으로 가려던 것 빼고는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 되도록이면 빠르게 정보를 얻고자 혹은 여행경비를 줄이고자 그들은 공항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부딪혀간다. 모든 일상이 갑자기 멈춰져 버린 공항에서의 특별한 일주일. 시간이 멈춘 그 공간안에서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받게 된다.

 

여담이지만,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의 "나는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동안 월요일의 모든 검색어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그 프로그램에 출연할 가수는 십여년 이상의 경력을 가졌을 것, 그리고 폭발적 가창력과 매니아라 불릴 정도의 팬층을 거느렸을 것, 국민 대다수가 아는 대표곡이 있을 것, 정도의 조건이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아이돌 출신인 옥주현이 출연한다고 했을 때 반발이 더 거셌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가졌던 편견도 아마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다. '김민서'라는 세련된 요즘 이름의 작가, 1985년생이라는 어린 나이. 그 나이에 알면 뭘 얼마나 알겠어, 하는 나이 든 기성세대의 마음. 아마도 작가계의 아이돌쯤으로 치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꼭 어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니며,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떤 일에 대해 깊은 통찰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알고 있지만 나도 내가 어렸을 적 다른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 따끔하게 놀랍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다. 마음을 얼른 고쳐먹어야 하리라.

 

머무르는 곳은 아닌 곳. 누군가는 항상 떠나가고 돌아오지만 결코 머물러 있지는 않은 장소, 공항. 그 곳에서 예기치 않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정지하게 된 사람들. 누군가는 맞이하게 될 어려운 일들을 미룰 수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다가올 행운이 비켜갈까 조바심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생각지 않게 벌어진 이 일주일이라는 틈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 틈새로 가만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내가 잠시 잊었던 것,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소풍같은 일주일을 맞이하게 되면 아마도 다들 조금씩 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그리고 내 옆의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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