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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0 ㅣ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외국에서 일년쯤 산 기억이 있다. 그 때 무슨 행사가 있었고 그 행사에 '코리아나'라는 그룹이 와서 노래를 불렀다. 사실 88올림픽 이후 코리아나라는 그룹이 왕성하게 활동을 했었지만 그 그룹에게 크게 애정이 있었던 편은 아닌지라 유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그 행사에 무슨 큰 기대가 있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코리아나가 애국가를 부르고, '손에 손잡고'를 부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더랬다. 그렇게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처음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접했을 때 '순신'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응? 이건 뭐지 싶었다. 그의 작품에는 늘 그렇게 한국인이 등장했다. 알고보니 작가 자신이 재일교포였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은 왠지 정이 간다.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면서 느꼈을 법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녹아있으리라. 1934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9살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법 사업을 크게 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하게 살았던 그 할머니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어쩌다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면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그 일본인 친구들은 구경도 못해봤을 법한 맛난 것들로 대접을 해주었다. 아마도 딸이 학교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그 귀하고 맛난 것들을 다 먹고 돌아갔으면서도 학교에 가서는 그 할머니를 외면했고, 그네 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흉을 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마음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를 미워했고 왜 우리 엄마는 일본 사람이 아니고 조선사람일까, 가난해도 좋으니 일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네시로 가즈키를 떠올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감정적 대응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스포츠를 할 때도 1등은 못해도 괜찮지만 일본에게는 지면 안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한일간에만 존재한다.
'더 좀비스'의 완결편. 우리나라로 치면 똥통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사고나 치는 사회의 이른바 루저들. 밝고 경쾌한 고딩들의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사실 들으면서 그닥 마음 편하지는 않다. 체벌이라기엔 폭력에 가까운, 아니 폭력이 분명한 선생들의 무차별적 행동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좀비들은 쿨하게 받아들인다. 이걸 견뎌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니라고. 이걸 견뎌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고 낙오자라고 아직은 낙인찍지 마라. 우리는 아직 아무데도 속하지 않은 미완의 청춘들이니까. 인생이니 민족이니 지배층이니 피지배층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말 따위도 하지 마라. 우리는 따분한 것을 견딜 수 없는 파랗다 못해 시퍼런 청춘이니까.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작품에 배경음악을 깔아 준다면 이런 노래쯤이 되지 않을까? 젊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고 청춘에게는 말해주어야 한다. 내가 비록 기성세대, 그들에게는 꼰대가 되어버린 나이이지만 말이다. '더 좀비스'를 기억하며 이제 청춘이 될 내 아이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가슴을 내어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