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를 경험하고 온 사람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살인마들과 마주하는 형사들, 뜨거운 불길 속으로 사람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 혹은 밀어닥치는 응급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까지 생과 사의 갈림길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때때로 그런 사람들 중에는 남들과는 다른 정의감에 누구보다 깊게 몰입하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슈퍼 히어로들도 어느 순간 빠지게 되는 자기혐오의 순간이 그들에게도 깊게 찾아온다. 내가 구해낸 사람보다 내가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자책, 죄책감 그리고 자기혐오. 해리 뿐만 아니라 <칼>이라는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애달픈 감정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어 연쇄살인마가 되는 것과 비슷하게 형사들은 살인범을 잡는 그 찰나의 순간에 경험하는 카타르시스를 위해 뛰고 또 뛴다. 그러다 누군가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것이 비록 법의 경계 밖에 있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잡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하기도 하고 그렇게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해리에게 잡혀 들어갔다가 출소를 한 스베인 핀네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해리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안 그래도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던 해리를 그야말로 진창으로 쳐박아 버렸다. 고생하기로 치자면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도 있고, <미션 임파서블>의 에단 헌트도 있지만 해리 홀레에게 그 정도 고생은 귀여울 정도다. 모든 걸 묻어버리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막다른 길에 놓인 해리에게 길을 열어준 건 늘 그의 곁에 있었던 음악이었다. 사건과는 별개로 등장인물들을 통해 풀어놓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고찰이랄까 통찰력이랄까, 그리고 배경음악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음악과의 어울림까지, 요 네스뵈 당신이라는 작가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