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자. 아주 가깝게 우리집에는 나와 남편, 아들 세 식구가 살고 있다. 면역을 가지지 못했다면 어느 순간 공포에 떨다 우리 가족의 3분의 2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일주일 중 월요일만 빼고 내내 열리는 야구경기를 즐겨본다. 프로야구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져있고 중계도 남성이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남자고 정치한다고 국회에 들락이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남자다. 대통령도 마음에 들지 않고 정치인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옳거니 잘됐다, 이참에 싹 다 갈아 엎으면 되겠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빈자리를 다 메꾸기까지 생기는 공백기 동안 세상이 어찌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시분초를 다투는 일이 아닌 정치와 야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병원에만 가도(성비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남성 의사가 대부분이다. 급한 수술을 요하는 환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두고 담당 남성의사가 시시각각 죽어 나간다면 세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응급의와 기자, 영국정보국 소속 공무원, 병리학자, 바이러스 학자와 인류학자까지 남성대역병을 가장 최일선에서 마주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온다. 그들은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어하고, 백신 개발에 몰두하고,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키려고 하는 동시에 자신의 남편과 아이들을 잃는다.
사실 이 이야기의 목적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남성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인가. 혹은 남성만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때문에 남성인류의 절반 이상이 갑작스럽게 사라져도 그렇게 혼돈에 빠져도 결국은 여성만으로도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어쩌면 목적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을지도, 그런 것을 애써 생각해낼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어차피 문학의 기능이란 보고 느끼는 사람의 몫이니까.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겪으며 점점 더 온라인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즘,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것이 더 쉬워진 상황인 것 같아서 몹시 걱정스럽다. 오래 전 '관심'이었던 것이 사회적 거리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오지랖'이 되어버렸고 계층간, 성별간의 사고는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많아서 혐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더더욱 걱정스럽다. 간혹 여성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남성을 혹은 남성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여성을 만날 때가 있다. 하지만 인류의 삶이란 결국 '공존'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공존이란 나라와 나라, 개인과 개인, 인간과 자연이라는 거대한 맞물림이다. 남성 대 여성이라는 공격구도는 공존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세대간 뿐 아니라 성별간에도, 나라와 나라의 문화사이에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성중심의 사회가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인류의 멸망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여성, 이라는 주제가 몹시 거북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도 '유리천장'이라는 단어가 종종 쓰이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태까지의 룰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상기시킬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