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자격증 취득을 준비할 때 접했던 회계를 책으로 접하니 ‘열공’했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전산세무 2급까지 다 딴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어려운 내용의 회계(약간의 세무)를 쉽게 풀어썼다고 평가할 만하다. 추가적으로 생소한 현금흐름표와 자본변동표, 그리고 주석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었다. 비록 책을 보다가 “그래, 이거야. 난 이제 회계가 좋아지려고 해!”라는 느낌을 받진 않았지만, 이전처럼 회계에 숫자가 들어가있다고 무식하게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일차원적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만 여겼다. 어느 영업 사원의 비극적인 삶. 이게 플롯이자 주제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다 읽은 뒤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생을 마감한 그 사원의 가족과 동료였던 사람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며 비단 한 인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피폐함이 2018년 대한민국에서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당히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 복잡한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올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내가 과연 페미니스트들이 가진 페미니즘적 생각에 얼마나 부합하게 살아가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사실은 나 스스로가 어느 게 옳고 그른지, 그러니까 이 생각이 페미니즘적 사고로 가는지, 가지 않는지 판단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나의 이러한 의심과 불확신에 가득한 삶조차 용기있는 삶이라고.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깨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 그리고 페미니즘에 반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 아래 맞서는 이 모든 과정들이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글쓰기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지금 시대에 어떠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대략은 눈치챌 수 있었다. 당혹스러웠던 점을 한 가지 꼽자면 글쓰기에 관한 책에 그림 그리는 기술, 대화의 의미를 파악하는 기술 등에 대한 글이 같이 실려있었다는 점이다. 첫 회독을 할 때는 이 내용들이 책의 주제와 상관이 있나 의문스러웠지만, 다시 책을 읽어보니 대화 역시 글쓰기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솔직히 그림은 왜 넣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홉 가지 작품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 중 <지속되는 호의>에서는 어쩐지 페미니즘 소설의 분위기가 풍겼다. 이야기 속에서 서영은 자신의 아이인 상휘가 ‘놀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서영의 남편 규진은 거의 제3자로 느껴질 정도로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서영이 이름도 모르는 두 아이들에게 수영장 물을 맞아가며 아들 상휘를 지켜내는 동안 규진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가. 그리고 문제의 ‘두 아이들’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과연 자식들과 진심으로 함께 있고 싶어서 수영장에 남아있던 것일까? (나는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이야기 서술을 전적으로 참고했을 때.) 이러한 맥락에서 가정에서 남성의 부재는 여성에게 돌아가는 부정적 시선을 필연적 요소로 만든다. 잔인하리만치 자기 자식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이자 한 ‘남성’이 ‘어머니’이자 한 ‘여성’이기도 한 타자를 ‘맘충’으로 만들어버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이야기를 접하고 난 뒤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페미니즘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뒷부분에 배치되어 있는 <그 여름>이라는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단지 퀴어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1-13년에 걸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가운데 남은 두 연인의 심리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최고의 이야기 중 하나로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