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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부활 - 비교역사학으로 보는 미국과 로마
페터 벤더 지음, 김미선 옮김 / 이끌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먼저 개나 소나 들먹이는 보수주의 이야기부터.
그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97))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보수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을 지독한 비관적 시각(분명히 타당성은 있는)으로 보면서 썼던 책 <프랑스 혁명론>(Reflection on the Revolution in France 1790)에서 기본적인 구조가 완성되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미국의 독립전쟁을 두고 오히려 영국 왕이 일으킨 거라고. '자유'라는 영국의 '원칙'을 억압하는 왕이 오히려 영국의 전통에 대한 반란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요거... 참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목을 내놓고 이렇게까지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근데... 이거 당시 영국의 정치 지형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놀라운 것이 되질 못한다. 애초에 미국의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는 에드먼드 버크가 속해 있었던 휘그당 중도파의 그것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 휘그당 중도파들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생각했던 정치 체제가 무엇일까? 혹시 민주주의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의 헌법 기초 위원들은 민주주의를 장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려할 어떤 것으로 보았다. 19세기에 들어서도 보수주의자들은 온갖 적들을 중상모략하기 위해 '민주주의자'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였다. 실제로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4.13~1826.7.4.)만 하더라도 민주주의자라고 자신을 설명하기 보다는 공화주의자라고 주장했었다. 이 뿐 아니다. 우리의 대자보들이 자기의 불법적인 영업활동에 대해 정부가 간섭할 경우 심심찮게 우려먹는 제퍼슨의 경구가 하나 있다. "나는 신문 없는 정부, 혹은 정부가 없는 신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선택하겠다"는 그의 말과는 달리 자신과 정치적 적대 관계에 있는 신문사들을 폐간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렸던 것이 제퍼슨이다."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Legends, Lies, and Cherished Myths of American History> 리처드 솅크먼(Richard Shenkman), 이종인 옮김, 미래M&B(미래엠앤비)
사람들의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이들의 정치적 이상은 '공화주의'였으며 그 공화주의는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사심없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치에 임하는 소수 귀족정과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정의 결합체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매 2년마다 왕창 뽑아버리는 대의 민주주의(하원)와 매2년마다 1/3만 바꾸는 구조를 가진 귀족정(상원), 그리고 절대적 권력을 가지는 대통령(사실... 루스벨트 이전까진 몇 번 연임을 한다는 내용 자체가 미국 헌법에 없었다)의 삼위 일체로 미국 헌정체제가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럼... 휘그당 중도파와 미국 헌법 기초 위원들이 이상적으로 삼은 이 공화주의의 모델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물어보나 마나다. 고대 로마 제국을 얘들은 모델로 삼았었다.
애초에 나라 자체를 그렇게 생긴 넘들이 만들었으니 미국과 고대 로마 제국을 비교사학으로 정리해보면 붕어빵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철학박사인 이 필자가 쓴 이 책에... 결정적인 부분이 빠져 있다. 경제 구조 자체가 고대 로마와 현대의 미국이 워낙 차이가 남에도 이에 대한 제대로된 분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고대 로마 만큼 이어지는 미국 단극 체제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도 책의 원 저자가 경제적인 관점을 부러 뭉게거나 자신없기 때문에 그랬던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사실들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꽤 신기한 책일 수도 있겠으나(조선 대자보의 서평은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다), 당대비평 2001년 겨울호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접해본 분들에겐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번역 깔끔하고 꽤 잘만들었음에도 별점을 저렇게 줄 수 밖에 없는것도 이 때문이다.
아... 이런 이야기 볼때마다 '그럼 우리와의 연관성은?'이라는 좀 생뚱맞는 질문을 하는 분들을 위해 한반도가 미국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고대 로마의 다음과 같은 사례는 참고로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로마에게는 사르데냐를 소유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카르타고가 샤르데냐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