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 것이 없어라 : 김종서 평전 - 불우했던 완전주의자 김종서의 비장한 생애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이덕일의 다른 책에서 역사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며 기이하게 흥분했기 때문이다. 정말 잘 만든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만 있었다면 모르되, 그와 함께 역사의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판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80년 광주항쟁 세대들은 정의감에 약하다...)

조선의 역사이야기라는 것이 주로 조선의 지배계급인 왕조와 양반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일지라도 그들이 최소한 고려를 넘어뜨리고 조선을 일으키며 내세웠던 명분을 어떤 식으로 지키려고 노력했는지가 아마 오늘날의 '민주주의'처럼 정통성의 근거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걸 물끄러미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덕일의 사화/당쟁 시리즈나 개별적인 몇 권의 서술들은 참으로 괜찮은 교양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이덕일의 이름만으로 이 책을 집어드는데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별 흥미 없는 이름 '김종서'이긴 하지만...

내가 아는 김종서는 세종의 명을 받아 6진을 개척한 장군이자 수양대군의 반정 때 목숨을 잃은 단종 측의 거두... 그 정도였다. 그 이상 아는 바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 시기의 주인공은 김종서가 아니라 수양대군이었으니까. 수양대군을 나쁜 놈으로 그리던 60∼70년대 사극과 영화들은 반복되는 군사쿠데타를 겪으면서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그럴 수도 있다'를 넘어서서 객관적인 시각이라며 '냉정한 권력관계'를 표현한다는 명분으로 수양대군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비단 수양대군만이 아니라 이른바 반정세력, 이성계를 비롯하여 수양, 인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선의 인물들에 대해 편을 들지 않은 채 사실만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는 '이긴 놈이 장땡'이었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나, 해석하는 사람마저 그렇게 접근한다면 너무 편파적이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은 '낡고 전근대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치부당할 정도로 많이 변했던 80년대였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군사독재 정권을 걷어내고 민주공화국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지난한 노력들이 목숨을 걸고 수행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 결국 그 당시(80년대)의 조선역사에 대한 드라마들의 해석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상황'을 은근히 비껴가거나 때로는 '비웃는' 행위였던 것이다. 90년대의 사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도는 더욱 심해져서 KBS의 『용의 눈물』 후속으로 나온 『왕과 비』에서 4척 단신의 문관 김종서의 배역을 맡은 사람은 역도선수 출신의 거구 조경환이었다. 이 얼마나 새 하얀 역사왜곡인가!

졸지에 김종서는 어린 왕을 끼고 왕족과 왕권을 위협하는 깡패신하로 변모했다. 수양대군은 왕족과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떨쳐일어나는 제2의 태종으로 변모하셨다. 태종은 정말 명분이나 있었으나 세조도 그랬던가? 북괴의 남침위협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난 잘 모르겠다. 다만 이덕일이 '어제까지 한 왕을 섬기던 같은 신하의 부인과 딸을 오늘 공신들의 첩과 노비로 삼은' 기가 막힌 수양의 쿠데타가 결국 성리학 조선의 명분을 완전히 갈아뭉갰다는 분석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이덕일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그 때 그 모욕을 당해야했던 여자들을 위로한다는 뜻으로 이름도 없는 성과 출신을 3장이상 나열한다. 어찌보면 참으로 장엄한 역사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역사를 해석하며 최소한 가져야할 덕목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설령 그것이 오늘의 우리 조차 구현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은 여전히 거칠 것이 없는 법이고...그 안에는 객관적 역사만이 아닌 인간 김종서의 하염없이 감탄스러운 모습이 거칠 것 없이 살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