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식의 창조놀이
이차크 벤토프 지음, 이균형 옮김 / 정신세계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우주의식의 창조놀이 / A Brief Tour of Higher Consciousness>는 이차크 벤토프라는 공학자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이라는 책을 읽어야한다.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반쪽짜리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닌, 이차크 벤토프를 아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고 절대로 읽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이차크 벤토프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정보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는 신비주의나 명상가들이 알쏭달쏭한 이야기로 전해주는 초월계, 정신계, 비물질계의 모습을 중학교3학년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과 수학으로 설명하는 참으로 기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드물지 않지만, 이 사람은 꽤 오래전 사람이다. 이미 70년대 말에 세상을 떠난.

일찌기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을 번역한 류시화는 번역하는 내내 이차크 벤토프의 '의식'과 교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책을 읽지 못한 사람에게 그 고백은 귀신을 만나는 스산한 상상이겠지만, 책을 읽고나면 본인 스스로도 이차크 벤토프를 만나고 온 일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우주의 지혜가 문자로만 이해되겠는가. 당연히 책을 쓴 사람의 영혼과 만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이차크 벤토프가 니르바나, 즉 열반(涅槃)을 최고의 의식상태가 아니라 허공이 자신을 통과하도록 한, 진화의 한 단계에 불과한 상태라고 본 것이다. 열반을 지고의 경지로 알고있는 불교신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겠으나 서구적 배경에서는 그것을 지고의 경지로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봐야겠다.

열반과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이긴 한데 허공이 자신을 그대로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약간의 자기생각을 미치게 하는 것이 있다. 주로 한 행성계(지구같은)의 의식을 관장하는 높은 수준의 영혼들이 하는 일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행성수호신의 역할이다. 그는 이런 역할을 열반과 같은 수준으로 보고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소승과 대승을 그 나름대로 이해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열반은 혼자만을 위해 하는 것이고 수호신 역할은 보살행이라는...

허공에 최고 위에 있는 절대자를 찾았더니 그게 바로 나였고, 순수의식계에 있는 나를 물질계의 내가 찾는 것이 바로 구도의 끝이라는 이야기의 흐름은 정말 재미있다. 정신계에 대한 과학적 서술은 신비주의보다는 더 읽기가 쉽다. 그러나 숭산스님의 말대로 김치를 환상적인 경험으로 설명하든 과학으로 설명하든 직접 먹어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이차크 벤토프는 과학에 경도된 서양인들과 겉모습만 동양인인 오늘날의 우리에게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명상과 초월계의 이야기 입문서'에 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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