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 소리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타일 바닥 위로 기분 나쁘게 울려 퍼졌다. 면회를 담당하는 교도관에게 사형수를 만나러 방문한 법률 보조원이라고 설명하자 그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군요.」

질문이라기보다 확언에 가까운 말투였다.



「이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우리가 당신을 찾으러 올 거라고 장담할 수 없소.」


면회실은 좁았으며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면회실로 걸어 들어온 남자는 나보다 더 불안해 보였다. 나를 힐끗 바라본 그가 걱정스럽게 얼굴을 찡그렸고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면회실로 정말 들어오고 싶지 않다는 듯 문가에 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도관이 천천히 구속 장치를 풀었고 수갑과 발목의 족쇄를 제거한 다음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면회가 한 시간임을 상기시켰다. 


사형수는 당초 서 있던 자리에서 더 이상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나는 달리 어찌할 바를 몰라 그에게 걸어가서 악수를 청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악수에 응했다. 함께 자리에 앉자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헨리라고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그토록 준비하고 할 말을 연습했건만 자꾸 사과의 말만 나왔다.


「정말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그래요, 나는 아는 게 없어요. 음, 나는 법을 공부하는 학생일 뿐 진짜 변호사가 아니에요…. 당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요. 정말로 아는 게 별로 없어요.」


남자가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내 사건과 관련해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아, 그럼요. 당신에게 아직은 변호사를 배정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도록 SPDC의 변호사들이 나를 보냈어요…. 내 말은 아직 변호사가 배정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까지는 사형이 느닷없이 집행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에요…. SPDC에서는 당신에게 변호사를 찾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짜 변호사를요. 아마도 두세 달 안에는 진짜 변호사가 당신을 만나러 올 겁니다. 나는 학생일 뿐이지만 당신을 돕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혹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이에요.」


남자가 재빨리 내 손을 잡으며 말을 받았다. 「내년 중에는 사형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요?」


「네, 그래요. 당신에 대한 형 집행이 적어도 일 년 이상 남았다고 들었어요.」 


내 생각에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고 그의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헨리가 내 손을 더욱 세차게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진짜 좋은 소식이군요.」 

그가 어깨를 펴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에서 커다란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곳에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같은 사형수나 교도관이 아닌 사람을 만난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더구나 이런 좋은 소식을 듣게 되다니 너무 기뻐요.」 


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아내와 계속 전화 통화는 했지만 아내는 물론이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면회를 오는 것에는 내내 반대했습니다. 혹시라도 가족이 방문한 날 사형이 집행될까 봐 두려웠거든요. 그런 식으로 가족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제 집에 전화해서 면회를 와도 된다고 알려야겠어요. 고마워요!」


그가 그토록 행복해할 줄은 전혀 몰랐다. 덩달아 나도 긴장이 풀렸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동갑내기였다. 헨리가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고 나도 그가 걸어온 인생사에 대해 물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대화에 푹 빠져들었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밖에서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내게 할당된 면회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곳에서 세 시간째 머물고 있었다.



면회실에 들어온 교도관은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내게 으르렁거렸다.


「면회 시간이 한참 전에 끝났습니다. 그만 나가 주시오.」


그가 헨리에게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화난 교도관이 수갑을 너무 꼭 채우는 바람에 헨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수갑이 너무 꼭 채워진 것 같은데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 주시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만 나가라고 말하지 않았소? 내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오.」



아마도 내가 너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헨리가 연신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브라이언. 괜한 걱정하지 말고 또 봐요. 알았죠?」 


나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중얼대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해요. 정말 미안 ─」


그가 내 말을 자르면서 말했다. 

「이런 건 걱정하지 말아요, 브라이언. 또 보기나 해요.」


그는 무척 평온해 보였다.

그때였다.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로 눈을 감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강렬하고 맑은 굉장히 멋진 바리톤의 목소리였다.

헨리의 돌출 행동에 나는 물론이고 교도관도 그를 떠밀다 말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가 자란 동네의 교회에서 자주 들었던 오래된 찬송가였다.

최근 수년 동안 듣지 못했던 노래이기도 했다.

헨리는 느릿느릿 찬송가를 불렀다. 무척 경건하고 신념에 찬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린 교도관이 다시 문밖으로 그를 밀치기 시작했다.

발목에는 족쇄를 차고 등 뒤로 양손에는 수갑을 찬 터라 교도관이 앞으로 떠밀자 헨리는 거의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균형을 잡아야 했지만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노랫소리가 복도 반대편으로 점점 멀어졌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헨리의 목소리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당초 나는 그가 부족한 나를 참아 줄지, 걱정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서 교도소를 찾았다. 그가 다정하거나 친절할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아니, 내게는 사형수에게 그 어떠한 것도 기대할 권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뜻밖의 인정을 베풀었다.

바로 그때였다.

헨리는 인간의 잠재 능력, 구원, 희망 등에 관한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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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호수 2016-10-11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감사! 강조와 행갈이, 이미지 덕택에 읽기가 너무 편하네요. :)

galei 2016-10-11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편보다 더 흥미로운데요? 더 많은 경험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어요.

papariver 2016-10-11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별한 말도 아닌데 사형수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여유를 주는 말이네요.... ㅜ.ㅜ

water0_1 2016-10-11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하던 2화가 나왔네요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시소 2016-10-11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슴 뭉클한 이야기네요. 브라이언의 말을 듣고는 다시 걸어 들어가며 찬송가를 부르는 헨리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열정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브라이언이 헨리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갈지도 기대가 됩니다.

고귀한 수영이 2016-10-11 2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기다리던 2화다~ 정말 사형수라곤 해도 한사람의 인간인 헨리로 인한 변화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번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진짜 무지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고귀한윈터 2016-10-12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이 뜨뜻해지는 2화 잘 보았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다음 편은 언제 올라오나요?

배고파 2016-10-13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시울이 시큰.

노노 2016-10-1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오페라를 틀었던 게 생각납니다. 무서운 교도소에서 무서운 교도관에게 수갑이 채워졌을 때 찬송가를 부르다니.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멋있다고 생각해요.

딸기냥 2016-10-1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평한 대지에 발을 딛고 있을 때는 그저 모든 것이 당연스럽고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만 삶의 가장자리, 한 발만 내딛이면 떨어질 곳에 있게될 때 평지에서의 만족감보다 더 고귀한 무언가를 느끼기되는 것 같아요. 사형수의 안도감과 위로의 노래에서 우리가 울컥하게 되는 것처럼요..

Chloe 2016-10-20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ㅠ 왜 이리도 짠한지요... 벌써부터 울컥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