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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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밤이 노래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밤은 노래한다》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어쨌든 이 작품은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어딘가 아쉽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보았던 이 책에 대한 한 블로거의 《밤은 노래한다》에 대한 비평 중 그가 제시한 대안이 계속 머릿속에서 굴러다녔다. “그냥 연애담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차라리 연애에 집중하거나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한 팩션(faction)이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김연수는 인간 개인의 안팎에서 빚어지는 감정 묘사가 탁월하고 절절한 작가다. 김연수가 그의 장점을 살려 이 책 《밤은 노래한다》에서 역사적 상상력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덧붙여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 작품의 화자 김해연이 일했던 ‘만철’(남만주 철도주식회사)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와 그로 인한 신생 만주국에서 만철의 역할과 그 정체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고바야시 히데오의 《만철》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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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의 성공 -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
후쿠타 세이지 지음, 나성은.공영태 옮김 / 북스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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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학생들 개개인을 지도할 수 있는 전문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제도를 갖춤으로써 일류 교육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이런 핀란드 교육의 힘은 핀란드의 사회의 복지 정책에서 비롯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거두는 세금[i]으로 무상교육을 비롯한 핀란드 국민의 보편적 복지를 실행하는 것이다. 복지 정책으로 인해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평등한 교육 기회는 “사회적 배경이 학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위와 같은 핀란드의 교육을 성공이라 표현하려면 교육을 통한 사회적 생활 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교육이란 교육만의 독립적인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정치, 경제와 깊게 연관되는 것이다(한국의 대통령과 국회위원이 내세우는 공약에는 거의 다 교육에 대한 공약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핀란드는 기본적으로 복지 정책과 교육 정책에 있어 “교육에 관한 한 정당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이념적 일치가 이루어”진 나라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사회적 견해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핀란드의 사회적 합의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60년부터 40년에 걸친 “교육 개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84-85쪽 참고). 교육의 또 다른 성과는 핀란드인들의 “높은 생활 수준”이다. 교육을 사회적 자산으로 여기고 앞서 언급한 교육 개혁 같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교육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핀란드 교육에 대한 장점과 그 성과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지루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교육 낙원에 대한 문학 작품 읽는 것마냥 몽롱해질 텐데. 결국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한국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서 저자 후쿠타 세이지의 ‘들어가는 말’ 중 한 문단을 인용해 본다.

“아직도 아이들은 경쟁을 강요받고 있으며 시험을 치르기 위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잊어버리는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 고교나 대학 입학이 목적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다행히 대학에 입학하고 나더라도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점수를 따기 쉬운 공부에 모두들 매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와 같은 체제는 교사와 학교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화 속에서 학력에 대한 사고만은 과거 방식 그대로 인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저자가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다. 그런데 딱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그리고 후쿠타 세이지는 ‘PISA 2000, 2003의 읽기 소양의 득점 분포와 평균치와의 차이’로 볼 때, “일본은 미국형에 가까워져 있고, 한국은 핀란드형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의 교육도 핀란드 교육처럼 성공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PISA의 학력 조사에서 거의 모두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아래의 인용문을 보자.

“PISA 2003에서 평균 득점의 국제 비교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위권 1할, 즉 4위까지의 모든 영역에서 두드러진 국가는 단 두 곳뿐이다. 바로 한국과 핀란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국가의 교육은 매우 대조적이다.”

후쿠타 세이지는 한국의 학생들은 “방과 후의 공부 시간은 일본의 2배 이상이고 핀란드의 3배”에 가깝다고 말한다. 한국과 핀란드의 교육이 대조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한국의 양적 교육과 핀란드의 질적 교육의 차이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 방식에 핀란드의 성공적인 교육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서평의 서두에 핀란드 교육의 힘은 복지 정책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자본주의 무한 경쟁 시스템으로 사회 전체가 운영되고 있다. 핀란드와 같은 평등의 이념에서 비롯된 복지 정책의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핀란드 형 교육 방식을 억지로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교육에는 당장 눈에 띄는 문제들이 있고 이런 문제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가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도 영역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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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007년에 핀란드 국민들 1인당 세금 부담률은 43%(스웨덴 51.1%, 독일 34.7%, 캐나다 33.5%, 2006년 한국 26.8%, OECD 평균 36.2%)로 상대적으로 부담률이 높다.](프레시안, ‘핀란드 교육 탐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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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헤는밤 2009-02-1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으로 몇번씩 나오는 부분이지요 " 공부를 하든지 하지않든지 그 건 학생 자신의 책임입니다" 핀란드의 자율교육 밑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핀란드식 사고라고 저는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우리도 그 것을 좇아야할까요? 아니면 우리 정신문화속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핀란드 무작정 따라하기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legows 2009-02-1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심은 개인의 사고나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국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기고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펼쳐질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지음, 장석훈 옮김 / 지호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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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63년 11월 8일에 사보이(“1860년까지 독립 왕국으로 있다가 최종적으로 프랑스에 편입되었고, 오늘날 이탈리아 국경에 면한 프랑스 남동부 지방”) 왕국에서 태어난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사보이 왕국 군대의 사관(군인)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철저한 왕정주의자”였던 그는 토리노로 피신한다. 1790년 그의 나이 스물 일곱에 “사육제 전날, 피에몬테 출신의 사관인 페토노 르 마이랑과 결투를 벌여” 이기긴 했으나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했기 때문에 42일간 가택 연급을 당하게 되고 그 방에서 《내 방 여행》을 썼다. 이후 그의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자비에르에게 알리지도 않고 1795년 로잔에서 《내 방 여행》을 책을 출간한다.

8년 뒤인 1798년 자비에르는 “속편은 언제나 졸작”이라는 형의 만류에도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을 썼고 “1825년 파리에서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작품 《내 방 여행》,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은 그 이름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내 방 여행》은 42일간의 기록이며 하인 조아네티, 애견 로진이 함께 있었지만,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은 4시간의 기록이고 하인과 애견 모두 자비에르와 이별한 후에 쓴 것이다. “영혼”의 여행을 떠났다는 것과 전체적인 문체, 문학적 표상, 상징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의 철학에는 변화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내 방 여행》에서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최대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뜨거운 감성인 육체의 동물성을 차가운 이성인 영혼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차가운 이성은 열정과 감정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감정은 애매한 이성의 유약함을 비난한다. 어느 누가 이 둘을 조정하고 그 중의 한 가지 입장을 과감히 취할 수 있는가?  
   


그는 “결국 나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경우에 따라 때로는 머리로, 때로는 가슴으로 살기로 했다. 사실 이보다 더 나은 길은 없을 듯 하”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그의 철학은 젊은 시절보다 유연해졌다. 어쩌면 세상의 풍파를 견디지 못해 연약해 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왕정주의를 고수한 그의 성정으로 볼 때 연약해 졌다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도.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두 작품은 자유와 상상을 위한 처절함이 묻어있다. 인간의 육체가 물리적인 억압의 상태, 그 억압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영혼)마저 억압 당한 상태에 놓이지 않기 위한 처절함 말이다. 육체가 강제로 억압받아 갇혀버렸다고 해서 정신마저 갇혀버려서는 안 된다. 정신은 모래 한 알을 우주처럼 상상할 수도 있고 그 속을 여행하며 이 세상을 우주의 한 낯 모래 알로 상상할 수도 있다.

전작인《내 방 여행》에 비해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에는 익살과 여유, 웃음이 있다. 그는 인내심 있어 보이지만 내심 조급하다. 그가 끝내 그 방에서 여행을 하며 독자에게 전하려고 한 것은 영혼의 자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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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여행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지음, 장석훈 옮김 / 지호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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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63년 11월 8일에 사보이(“1860년까지 독립 왕국으로 있다가 최종적으로 프랑스에 편입되었고, 오늘날 이탈리아 국경에 면한 프랑스 남동부 지방”) 왕국에서 태어난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사보이 왕국 군대의 사관(군인)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철저한 왕정주의자”였던 그는 토리노로 피신한다. 1790년 그의 나이 스물 일곱에 “사육제 전날, 피에몬테 출신의 사관인 페토노 르 마이랑과 결투를 벌여” 이기긴 했으나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했기 때문에 42일간 가택 연급을 당하게 되고 그 방에서 《내 방 여행》을 썼다. 이후 그의 형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자비에르에게 알리지도 않고 1795년 로잔에서 《내 방 여행》을 책을 출간한다.

8년 뒤인 1798년 자비에르는 “속편은 언제나 졸작”이라는 형의 만류에도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을 썼고 “1825년 파리에서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작품 《내 방 여행》,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은 그 이름처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내 방 여행》은 42일간의 기록이며 하인 조아네티, 애견 로진이 함께 있었지만,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은 4시간의 기록이고 하인과 애견 모두 자비에르와 이별한 후에 쓴 것이다. “영혼”의 여행을 떠났다는 것과 전체적인 문체, 문학적 표상, 상징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의 철학에는 변화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내 방 여행》에서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최대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뜨거운 감성인 육체의 동물성을 차가운 이성인 영혼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차가운 이성은 열정과 감정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감정은 애매한 이성의 유약함을 비난한다. 어느 누가 이 둘을 조정하고 그 중의 한 가지 입장을 과감히 취할 수 있는가?  
   


그는 “결국 나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경우에 따라 때로는 머리로, 때로는 가슴으로 살기로 했다. 사실 이보다 더 나은 길은 없을 듯 하”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그의 철학은 젊은 시절보다 유연해졌다. 어쩌면 세상의 풍파를 견디지 못해 연약해 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왕정주의를 고수한 그의 성정으로 볼 때 연약해 졌다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도.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두 작품은 자유와 상상을 위한 처절함이 묻어있다. 인간의 육체가 물리적인 억압의 상태, 그 억압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영혼)마저 억압 당한 상태에 놓이지 않기 위한 처절함 말이다. 육체가 강제로 억압받아 갇혀버렸다고 해서 정신마저 갇혀버려서는 안 된다. 정신은 모래 한 알을 우주처럼 상상할 수도 있고 그 속을 여행하며 이 세상을 우주의 한 낯 모래 알로 상상할 수도 있다.

《내 방 여행》에 비해 《밤에 떠나는 내 방 여행》에는 익살과 여유, 웃음이 있다. 그는 인내심 있어 보이지만 내심 조급하다. 그가 끝내 그 방에서 여행을 하며 독자에게 전하려고 한 것은 영혼의 자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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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legows > <고미숙의 에로스 특강> 후기, "내 사랑을 하자"

081206, 고미숙, 그린비 출판사, 2~4pm



이 강연후기는 고미숙 선생의 직접적인 ‘강연’과 그린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영상’을 보고 고미숙 선생이 자신의 글을 읽고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울 지도 모른다는 날에 홍대입구 역 부근에 있는 그린비 출판사로 들어갔다. 이중의 책장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공간에는 귀여운 탁자가 있었고 초록의 식물이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강연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도착했는지, 출판사에 낯선 사람이 등장해서인지 그린비 출판사 사람들은 낯선 웃음과 분주한 움직임으로 간식과 음료수를 그 귀여운 탁자에 올려 놓고 간단히 강연 준비를 마쳤다.

2시. 고미숙 선생 등장. 고미숙 선생은 “대학에서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지식인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이 영화를 보라》 등의 책을 썼다. 이번 강연은 얼마 전 출간한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이하 《호모 에로스》)의 출간 기념 “에로스 특강”이었는데, 강연 형식으로 고미숙 선생이 많은 발언권을 가졌고, 주고받는 대화가 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점심 시간에 밥 한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다.

출간 기념 강연이든 아니든 책을 쓴 모든 저자는 자신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강연의 핵심 주제로 삼고 그 핵심 주제로 나아가는 저자 자신을 설명하기 마련이다. 고미숙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호모 에로스》를 쓰게 된 계기와 문제의식이 강연의 핵심 주제였다.

인간의 신체는 본능적으로 사랑과 성을 갈구하는데 왜 인간은 그 본능을 억압하는지, 어떻게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의 문제의식으로 시작해 연애와 성적인 욕망을 공부를 통해 발전시키고 분출하는 것에 대한 강연이 시작되었다.

강연을 들어보니 고미숙 선생이 《호모 에로스》를 쓰게 된 계기는 ‘사랑’, ‘성’이라는 대상이 그 “인과의 사슬”에 따라 인간의 삶에 변하지 않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미숙 선생은 《호모 쿵푸스》를 출간한 후 대중 강연에서 청중들이 ‘사랑’, ‘성’과 같은 주제에서 보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관심을 보일 때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20세기 이후 민주주의 시대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정치경제적으로 구성된 사회에 살면서 현대인들은 외형적으로 자유롭게 사랑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분출하며 삶을 향유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은 사회의 도덕과 윤리라는 억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고미숙 선생이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규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의 체험에 굉장히 빈곤하다



한국 남성 중 대다수 혹은 일부가 첫경험을 사창가에서 돈을 주고 경험하는 것과 성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 이런 삶의 현상이 아닐까. 여성에게 의무처럼 강제로 주어진 ‘순결’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회의 강제로 인해 원하고 본능적으로 섹스를 비롯한 성적 행위를 원할 때에도 원치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 그로 인해 ‘여자는 튕기니까 몇 번 더 시도하라’는 남성들의 술자리 여담이 일반적인 남성들의 생각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규정짓는 도덕과 윤리가 존재했었다. 이 도덕과 윤리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기계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한다. 먹고 사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20세기에 산업 사회가 대두하면서 남성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에서 소위 집안 일을 해야 했다. 여성의 출산 기능과 남성에 비해 연약한 신체가 이에 한 몫을 했다. 산업 사회는 그 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도덕과 윤리가 필요했다. 노동을 통한 성취감이나 삶의 희로애락 따위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어쩌면 21세기를 사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20세기 산업 사회가 규정한 도덕과 윤리의 잔재와 본능의 솟구침 사이에서 허덕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과 성이 제도로 인해 ‘소유’와 ‘재산권의 확장’으로 왜곡되어 사랑의 힘이 소진되고 부부끼리 칼부림이 나서 죽거나, 죽이거나 한다. 가장 깔끔한 경우는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이 되어버린 상황이 현실이다.

고미숙 선생은 이런 강연의 핵심 주제를 문학 작품과 텔레비전 드라마, 고전을 예로 들며 강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공부’를 통해 “외부 세계와 나의 리듬”에 대해 고민하고 진리와 삶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사회의 도덕과 윤리(Moral)가 소리 없이 행하는 에로스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공부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망상과 표상을 내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미숙 선생이 ‘공부’라는 개념어를 고전 공부 이외에 어디까지 규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회가 주입한 기존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것들을 수용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사는 삶의 방식이 꼭 공부만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편지 한 장을 쓰더라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텍스트를 다루며 사는 고미숙 선생의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는 아닐까. 연애 편지를 쓸 때는 공부가 아니라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연애 편지의 진심처럼 삶은 공부만을 통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잡아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각자가 잡아야 할 것들이 있고 고미숙 선생은 공부를 잡은 것이다. 공부가 삶의 억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을 한 잔 들이켜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살고 있는 내가 싫어요

 

친구의 그 말은 자본과 권력이 그들의 지속된 팽창을 위해 주입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식이었을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 때 나는 그 동생이 책을 읽고 현실을 받아들일 때(볼 때), 공부할 때 그리고 그 주입된 삶의 욕망(일류 대학을 나와 일류 기업에서 일하고 나이든 후에는 유능한 일류 CEO가 되어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에서 벗어날 때 그런 의식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친구를 지금은 만나지 않는다. 친구가 잡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각설하고 《호모 에로스》와 고미숙 선생의 강연의 핵심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사랑하는 방식, 사랑하는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 본능과 맞대어 보고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공부요, 사랑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입된 사랑 방식으로 너무 본능에 치우친 방식으로 “인연을 갉아 먹는” 짓은 하지 말자. 내 사랑을 하자.

 

<작가와의 만남 1기 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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