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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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앎 없이 삶은 없다. 앎이 삶이고 삶이 곧 앎이다. 그러니 내게 읽기 없는 삶 또한 있을 수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읽음이 앎이다. 앎은 삶이다. 그렇다면 읽기가 삶이고 삶이 읽기이다. 이건 자명한 일이다.  
   


이 책에서 저자 김열규의 ‘읽기’에 대한 심적 속성을 열정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하다. 이건 읽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생사를 걸고 읽는 사생결단의 읽기다. 좀 과장해서 말했지만 저자의 읽기에 대한 ‘열망’을 보면 이런 과장도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저자의 자전적 읽기에 대한 수사가 너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70세 이상 나이를 먹은 노인이 지난 날을 돌아보며 썼기 때문에 자신의 ‘읽기’의 과정을 미화한 것 같이 느껴졌다는 말이다. 아직도 그런 의문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차분히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김열규의 책과 읽기에 대한 ‘열망’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책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앎과 지식에 대한 열정’ 같은 지루한 수사들이 많아 온 몸에 닭살이 돋기도 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우리는 글이나 책만 읽는 게 아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그리고 만지는 것, 이 모두를 읽는다. 오늘날 기호론은 그걸 가르쳐주었다. 세계, 우주, 하늘, 파도, 그 모두를 읽는 것은 사람이다.  
   


김열규의 ‘읽기’에 대한 ‘열망’은 영화 <고고 70>의 젊음과 닮았다. 시대와 권력의 억압을 무시하고 지하 클럽 ‘닐바나’에서 “열반”에 도달하는 그 젊음들. 온 몸이 군부독재의 매질로 상처투성이지만 “니네 놀고 싶지?”란 한 마디로 음악과 춤을 열망하는 젊음과 인생 자체를 ‘읽기’로 일관해 온 김열규의 열망은 그 방식과 정도를 빼면 같다고 할 수 있다.

   
  재미가 먼저다. 신명이 앞서야 한다. 교양이니 지식이니 하는 그 고상한 소득은 나중 문제이다. 흥청거리는 게 독서의 제일보이다.  
   


김열규의 읽기는 ‘재미’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의 읽기는 선∙악, 좌∙우 같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구애 받지 않는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고 생각한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이다. 김열규의 읽기는 그런 의미에서 편협함을 이겨낸 균형적 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균형적 읽기로 김열규는 자신만의 ‘마지막 어휘’를 창조해 냈다. 책을 쓴 작가나 책을 평가하는 평론가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책의 텍스트를 창조해 낸 것이다. 정확한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책 속에서 김열규 자신이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 책 속에 인용되어 있는 시나 소설은 거의 다 김열규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출처도 정확하지 않고 원문과 비교해 같은 문장들인지 따지지 않는다. 읽기를 통해 텍스트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고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만의 ‘마지막 어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행간과 행간 사이에 나만의 ‘읽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 읽기의 시작 그리고 앞으로의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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