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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할 의무
작가로서 항상 한계를 경험하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이 책은 여행할 “권리”가 아니라 여행할 ‘의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한계(경계, 국경)를 넘어서야 할 의무가 있고, 인간은 그 존재의 가치 확인과 팔딱거리는 생명의 힘을 느끼기 위해 여행할 의무가 있다. 나는 이런 의무의 관점에서 작가 김연수의 여행에 대해 그리고 김연수 자신이 경계를 넘기 위해 어떤 문학론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그 결심이란 이제 저 입국게이트를 빠져나가면 내게 어떤 일들이 막 벌어질 텐데, 그리고 나는 그게 어떤 일일지 상상도 못할 텐데, 어떤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절대로 넘겨짚지 말자. 인간성을 신뢰하자.
작가 김연수에게 여행은 한계의 극복을 위한 수단이며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이다. 2003년 중국 지린셩 룽징을 여행할 때 위와 같이 결심하고 입국장으로 나가자 바로 인간성을 신뢰해야겠다는 결심을 재확인해야 할 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여행은 이전까지 자신의 생활양식과 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어야 하고 그 새로운 것들이 자신의 예상 범위를 빗나가거나 어긋난다는 점에서 내면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임을 알았기 때문에 김연수는 위와 같은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스트리드와 겐게쯔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피를 물만큼이나 묽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럴 때 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다른 공간의 작가로서 아스트리드와 겐게쯔의 소설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그들 역시 내 소설을 이해할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현대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고, 다양한 인간적 문제를 대면하며 이를 언어 예술로 표현하려고 한다. 우리의 리얼리티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소통해야만 한다.
김연수는 문학 또한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극복해야 할 한계로 보고 있다. 김연수는 민족주의에 사로 잡혀 국내용 문학을 생산하는 것이 그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피를 묽게 만들어야만” 했다. 애초에 문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특정 지역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김연수의 문학론이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가 “지한파”로 불릴 만큼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르 클레지오가 국내용 문학을 통해 제한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작품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연수는 작가로서 한계(경계)를 넘은(김연수의 표현대로라면 김연수 자신이 꿈꾸는 “문학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 천당과 지옥의 접경”을 경험한) 이상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보통 때 가격의 두 배에 달하는 비행기 표”값을 지불하면서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일본 도쿄의 이상이 묶었던 하숙집을 찾았던 것이다.
김연수의 경계 넘기
작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문제의식이자 창작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작가로서 문학의 한계를 넘으려는 김연수의 문학론을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작품 활동의 원동력과 아이디어를 책에서만 찾는 방법을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은 가장 큰 원천이죠. 상상하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책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그 자료들이 기술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소설을 씁니다. 역사책에서 배제된 인간의 감정 같은…. 예를 들면 ‘전쟁에서 일본군이 나를 포위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같은 의문들이죠. 그렇게 개인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은 몸으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어요.
(출처: http://blog.naver.com/w_wonho?Redirect=Log&logNo=60039512311)
위 출처의 글에 따르면 문학 계간지 <파라21>에 연재했고 얼마 전 출간된 작품 《밤은 노래한다》도 경계를 넘으려는 김연수의 시도가 담겨있고, 최근에는 “국경마저 무화시키는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