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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세상의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다 비판하자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이타카로 돌아오는 끈질긴 모험의 시간보다 오래 걸릴 것만 같다. 짜증의 고통은 고스란히 내 자신의 것이 된다. ‘도서관에서’ 소근 소근 대화하는 어른들, 필통을 뒤적거려 달그락 소리를 내는 학생들, 도서관 바닥을 질질 끌며 걷는 사람들,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또깍 또깍 걷는 여자들, ‘지하철에서’ 문이 열리면 내리는 사람이 먼저 임에도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의 어깨를 시간차로 밀치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무신경한 사람들, ‘좌파 강연자의 강연에서’ 좌파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며 궤변을 토하며 조롱하다 자신의 논리가 좌파 강연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롱당하자 분을 이기지 못해 “국민들은 항상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좌파는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없어요.”라고 소리치며 달아나는 자칭 우파 인기 누리꾼, 그 누리꾼을 조롱하는 좌파 강연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좌파 강연자의 강연을 들으러 모인 200여명의 청중 혹은 대중, 강연 중에 후루룩 소리를 내며 뜨거운 커피를 몇 차례에 걸쳐 나눠 마시고 자신의 지도 교수 차례가 끝나자 기립박수갈채를 보내고 사라지는 몰상식한 지식인. 한참 남았지만 아껴두고 묵혀둔 후 차례차례 웃어주기로 하자.
2.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짜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자신에게 짜증을 유발한 이들을 유머로 조롱함으로써 자신에게 고스란히 남아야할 짜증을 익명의 사람들에게 전달하거나 증발시킨다. 진중권이 “네 무덤을 침을 뱉으마”라며 극우꼴통들은 상대할 필요도 없는 조롱해야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진중권의 ‘조롱문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규항의 경우 “나는 왜 불온한가”라고 자신에게 묻고 있는데 이는 꽤 진지하다. 조롱보다 혐오를 담고 있다. 일종의 ‘혐오문체’다. 에코나 진중권은 조롱체를 통해 짜증을 분출하지만 김규항은 혐오체를 통해 짜증을 다시금 몸에 담아둔다. 정말 불온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3.
에코는 서로 다를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을 어설프게 일반화시켜 조롱하기도 한다. “독일의 택시 운전사들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는 것이 그 직접적이 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에코는 이렇게 적었어야 한다. “독일에서 내가 탔던 택시의 운전사들은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었다.” 에코는 일반화와 동시에 맥락을 잃었는데 독일의 택시 운전사는 날씨가 무더울 땐 예의 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에코는 “독일의 택시 운전사들은 날씨가 무더워 불쾌지수가 올랐을 때도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라고 적었어야 했다.
4.
기호학자로서 에코는 책 전체에서 언어의 유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언어의 미학, 함의의 미학이다.
5.
그러나 상대의 백치를 조롱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내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이명박을 조롱하는 지식인들은 ‘대통령(어찌되었든 투표를 통해 당선된)’ 이명박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함정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나는 고스란히 나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백치를 조롱해 깨우치게 하는 것도 백치에 경종을 울리는 한 가지 방법이라 하겠다.
6.
에코의 글이 가지는 현실적인 쓰임새는 「도둑맞은 운전면허증을 재발급 받는 방법」에 정확히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