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나도 구술문화의 감정적인 비관주의와 상상력을 가진 한국인이다.

보통 진보적인 저자의 진보적인(?) 책을 탐독하고 있자면 개그콘서트를 보고 터뜨리는 폭소와는
다른 개념의 웃음이 터져나오기도하고 정신적인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이유인 즉, 진보적인 책들은 항상 현상에 의문을 갖고 조목조목 따져보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빙빙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금 잔잔해졌지만 김규항님의 를 읽을 당시만해도 피 끓는 젊음을 느끼며 분개하고
항상 "이 놈의 세상, 정말 그지 같아서, 확 뒤집어 엎어야지 원" 비관적으로 지껄였다.
이 책에서 저자 진중권님이 언급한대로 나는 구술문화의 감정적인 한국인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조건적으로 감성이 비관적으로 치달아 현상을 파악하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황우석 논문이 조작임을 모두가 알았을 즈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세종문화회관에 내려
5호선 광화문역으로 걷고 있는데 정면의 조선일보 건물에 박힌 대형TV에서
'미국, 줄기세포 신기술 개발'이란 문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상상력이 발동했다. "혹시 미국의 공작으로 황우석 교수의 기술을 미국에 빼앗긴 것은 아닐까"
사건의 진실 여부는 이미 내 관심 밖에 있었고 오로지 "역시 미국 더러운 새끼들"이라고 비관했다.
그리고 이 상상력을 여러 사람들에게 진실인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구술문화의 최전선이다.

지금은 사실과 관계 없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내 상상력을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지껄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현상에 대한 끈임없는 의문을 통해 삼천포에서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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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체는 정보적인 신체에 조금 더 가까운 산업적인 신체다.

"압축 성장으로 한국인의 몸속에는 전근대와 근대와 탈근대의 세 지층이 압착되었다.
물론 세대마다 이 세 층위가 배합되는 비율은 달라, 가령 노년층은 농경적 신체, 장년층은 산업적 신체
신세대는 정보적 신체가 우세하게 나타날 게다."
내 신체는 산업적 신체와 정보적 신체 중간에서 정보적 신체에 조금 더 가까운 신체가 아닌가 싶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내 신체를 정보적 신체로 개조-이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끔 아니 자주 정보적 신체로 변해가는 내 몸이 산업적 신체의 내 몸과 불화를 빚어
정보적 신체의 훈련을 대표하는 조교인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래 작업하는 것이
신체 노동하는 것보다 괴로울 때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신체 노동 못지 않게 '디지털 노가다'도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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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상상력과 필요한 것들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오늘의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존재의 미학, 즉 요소들을 선택하는 테크네(techne)와
그것들을 배치하는 매트릭(matrik)이다."
과거의 파시즘을 제거하고 지금의 천민자본주의를 제거해야한다.
가끔 물건을 다루거나 컴퓨터를 다룰 때 직감적으로 '아, 이거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한 시간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의 한국이 그렇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불안하다. 새로운 상상력과 필요한 것들의 재배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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