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화제를 돌려 발가벗은 책에 대해 말해보자.
난 어릴 적 많은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도서관에 자주 갔는데, 도서관 책들은 종종 벗겨져 있었다. 재킷이 없었고 어떤 이미지도 없었다. 딱딱한 표지에 종이 낱장들이 묶여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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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백 권의 책, 거의 모든 문학서적을 읽으며 성장했다. 그 책에는 날개에 내용이 요약되어 있지도,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지도 않았다. 어떤 채인지 알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비밀스러웠다. 그무엇도 먼저 드러내지 않았다. 책을 알려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 P47

내가 보기에 전집은 배타적인 세계, 일종의 동아리 같다. 궁금하다. 어떻게 전집 안에 들어갈까? 영국 오리지널 펭귄 포켓북에서도 그렇지만 적어도 이탈리아에서 전집은 동시대 작가들까지 포함한다. 아델피 작은 서재는프리드리히 니체와 야스미나 레자, 베네데토 크로체와 자메이카 킨케이드 작품을 출간한다. 유럽에서 전집은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국제적이고 절충적이고 살아있는 하나의 공동체다. - P58

내 책은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사이 내 표지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가만히 살펴보면 내 책 표지들은 둘로 갈라져서 서로다투는 정체성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표지들은 종종 내정체성을 투사해주고 추측케 한다.
평생 나는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둘 다 내게 강요된 정체성이다. 이 갈등에서 자유로워지려 했지만 작가로서 나는 늘 같은 올가미에 사로잡혀있다.  - P65

나에게 잘못된 표지는 단순히 미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느낀 불안이 다시 덮쳐오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일까? 난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옷을 입고있고, 어떻게 인식되고, 어떻게 읽힐까? 난 그 질문을 피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대답을 찾기 위해서도 글을 쓴다. - P66

(화가 리처드 베이커) 그가 표지를 그린 책 모두가 살아 있는 책, 매일 손에쥐게 되는 책이다. 표지는 찢어지고 누렇게 변색되고 햇볕에 바랜다. 마치 사람 얼굴처럼 주름이 지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결국 살아 있는 표지다. - P78

나는 어딘가에 속하고자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한편으로 어딘가에 속하는 걸 거부하고, 혼란스러운 여러 정체성이 날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영원히 이 두 길, 이 두 충동 사이에서갈등을 겪을 것이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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