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든, 그는 홀로 사네.
제 몸을 빼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자기 자신이 온전히 보물임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해할 따름이지.
-윌리엄 쿠퍼, 달팽이 (1731)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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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학생들에게 시민으로서 살아갈 최소한의 규범을 가르치되,도덕적으로 그 이상의 인격을 갖추는 일은 강제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사회 규범과 도덕에 순종하는 학생은 도덕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크다. 학교는 학생의 자유 실현을 도와야 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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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
주디스 바니스탕델 지음, 김주경 옮김 / 바람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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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으로 진행될 때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그래픽노블을 좋아한다. 이 책을 언박싱할 때 주변 동료들이 책을 휘리릭 넘겨보며 조금 당혹스러워했다. 성생활이 적나라하게 나온다며 아이들이 있는 곳에선 보기 조심스럽겠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전연령 그래픽노블에 의아해지긴 했다.

표지가 강렬하다. 무심해 보이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빨간 자국,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령처럼 무서운 여자아이가 있다. 부제의 전쟁터, 의사 그림 힌트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연상된다. 이 유령 아이는 전쟁 트라우마, 환영일까. 당연히 표지만으로 짐작되는 내용 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남편과 나, 어머니와 나, 딸과 나, 언니와 나 등 가족관계의 미묘한 감정들이 잘 녹여져 있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저 고맙고, 그리운 관계가 어딨는가. 변덕스럽고 화나는 마음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둔 점이 특히 좋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넬로페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다. 남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돌아올 때까지 지조를 버리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구혼자들에게 시달려 시아버지 수의를 핑계 대며 낮에 짠 천을 밤에 몰래 다시 풀어버리기 계속하면서 시간을 끈 일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페넬로페는 베를 짜지 않고 남편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신화 속 페넬로페와 달리 남편이 아닌 자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고 아들이 아닌 딸이 있다.

같은 시간 안온한 일상의 공간 벨기에 브뤼셀과 전쟁의 혼돈에 휩싸인 시리아 알레포가 대비를 이룬다. 두 곳 모두 페넬로페가 돌아갈 곳이자 돌아온 곳이다. 이곳에 머물며 그곳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적이면서 은유적인 공간설정이다. 공간뿐 아니라 존재, 관계, 자아도 양가적 대비를 보인다. 전쟁이라는 심각한 생사의 고통 속에 살았던 붉은 유령 아이와 고작 라틴어 문법이나 큰 코 등으로 고민하는 딸의 존재. 그리고 내 새끼라고 불러주며 안심시켜주는 엄마와 딸의 일터를 불안하고 못마땅해하며 내내 똑같은 대화로 갑갑하게 하는 엄마와의 관계. 모두의 삶이 산산조각 나도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나와 요셉보다 마리아가 아기를 더 편안하게 안아준다고 자각하는 나.

여러 겹으로 찾을 수 있는 대비들에 다양한 감정들이 쌓인다. 좋은 책이다. 편견 없이 들여다보면 한 걸음 내딛는 사유의 길이 열릴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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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언제나 잠정적이고 불완전하다. 
오늘의 확신은 내일의 헛소리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뿐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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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의 작가 - 한국과 프랑스의 어린이문학 작가, 편집자, 아트 디렉터, 번역자 들의 생생한 문화 교류 바깥바람 8
최윤정 엮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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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책을 읽니?” 지인이 물었다. 미리 생각해둔 답지는 없어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실제 삶의 작은 반경 내 엇비슷한 사람살이 안에서는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 하지만 책에는 범접하기 힘든 다양한 사람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시로 밀도 있게 만날 수 있다. 말해놓고 보니 과연 그렇구나 싶다. 듣기를 좋아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알고 싶은 누군가의 가지런한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다. 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끄덕이는 시간이 평화롭다. 내 머리와 가슴 속 우주가 드넓어지는 느낌이 황홀하다.
책 속에만 빠져 있는 것을 넘어 책 밖으로 기웃대기도 한다. 북토크, 강연회 등이 열리는 학교, 도서관, 서점 등으로 분주히 쫓아다녔다. 코로나 시대에는 ZOOM, 인스타 라방 등으로 지역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퇴근 후 서울 강연을 들을 기회가 더 많아졌다. 작가를 마주하고 집필 동기나 작품의 숨은 이야기 등 책 밖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다.

이 책은 ‘프랑스 작가에게 듣는다’, ‘프랑스 편집자, 아트디렉터, 번역자에게 듣는다’, ‘한국 작가에게 듣는다’ 크게 세 장으로 이뤄진다. “듣는다”, 듣는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이국의 작가, 출판 관련 직업군의 이야기는 접하기 힘드니 더욱 그러하다. 이메일 대담, 전화 인터뷰 등 새로운 시도를 포함한 다양한 소통의 형식과 내용이 흥미로웠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이 쓰고 만든다는 생각을 새삼 확인했다.
이름만으로는 낯선 작가였는데 작품을 보니 다 연결고리가 있는 작가들이어서 뒤늦게 환호했다.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는 내가 너무 좋아해 해마다 아이들에게 애정 듬뿍 담아 읽어주던 책이었다. 그 저자가 수지 모건스턴이었다니! 언제 사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글쓰기 다이어리’도 책꽂이에 꽂혀 있다. 그리고 미카엘 올리비에 작품도 읽었다. 바람의 아이들 꼬독단이 되면서 랜덤으로 선물 책 꾸러미를 받았다. 그 중 ‘뚱보 내 인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어떻게 알았지? 당혹스러웠다. 그다지 호감 가는 표지와 제목은 아니었지만 왠지 끌렸다. 재미, 의미를 다 채우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었는데 알고 보니 진작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작가 이름보다는 작품 제목만 알았는데 이제 이 두 작가는 확실히 기억하고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다. 얼핏 ‘사고’를 ‘살고’로 잘못 보고 놀라 다시 본 ‘나는 사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 소비문화에 대해 관심과 걱정이 많은 터라 더 궁금하다. 최근 주목하게 되어 신진작가인 줄만 알았던 김혜진 작가가 오래된(?) 작가라는 걸 알게 돼 놀랐다. 그 외 좋아하는 작가 유은실, 평론가 김지은도 반가웠다.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낱말 하나도 굉장히 고민을 하는데, 사실은 애들이 이걸 다 이해하나? 애들은 엉뚱한 거 하나에 꽂히는데 내가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한국 작가 좌담 중 이 고민에 무척 공감했다. 이렇게 알려주고, 저렇게 가르쳐주고 싶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소화하고 있나 회의가 드는 순간이 많다. 다른 직업군 고민과 이렇게 겹치다니 아이들 대하는 일이 그런 건가 보다. 하지만 최윤정의 정리처럼 답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무엇을 보든지 자기 안에 무의식적으로 쌓이는 게 많은 시기이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한 인간의 내면의 질, 감성의 질을 좌우한다는 데 백프로 동의한다. 어차피 배부른 건 똑같다고 하면서 아무것이나 욱여넣어도 되는 것이 아니듯 우리 영혼의 양식은 더하지 않겠는가.

프랑스 작가 미카엘 올리비에는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우리 안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은 똑같다. 사회는 진화하지만 인간성의 밑바닥을 이루는 것은 그렇지 않다. 바로 그 점이 우리를 세계 시민으로 만든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 책을 읽는 것도, 이전 세대의 책을 읽는 것도, 지금 작가가 다음 세대 이야기를 쓰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경계선 밖의 낯선 것들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이 자기 안에 잊혀졌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계속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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