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넬로페 -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
주디스 바니스탕델 지음, 김주경 옮김 / 바람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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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으로 진행될 때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그래픽노블을 좋아한다. 이 책을 언박싱할 때 주변 동료들이 책을 휘리릭 넘겨보며 조금 당혹스러워했다. 성생활이 적나라하게 나온다며 아이들이 있는 곳에선 보기 조심스럽겠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전연령 그래픽노블에 의아해지긴 했다.

표지가 강렬하다. 무심해 보이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 빨간 자국,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령처럼 무서운 여자아이가 있다. 부제의 전쟁터, 의사 그림 힌트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연상된다. 이 유령 아이는 전쟁 트라우마, 환영일까. 당연히 표지만으로 짐작되는 내용 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남편과 나, 어머니와 나, 딸과 나, 언니와 나 등 가족관계의 미묘한 감정들이 잘 녹여져 있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저 고맙고, 그리운 관계가 어딨는가. 변덕스럽고 화나는 마음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둔 점이 특히 좋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넬로페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다. 남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돌아올 때까지 지조를 버리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구혼자들에게 시달려 시아버지 수의를 핑계 대며 낮에 짠 천을 밤에 몰래 다시 풀어버리기 계속하면서 시간을 끈 일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페넬로페는 베를 짜지 않고 남편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신화 속 페넬로페와 달리 남편이 아닌 자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고 아들이 아닌 딸이 있다.

같은 시간 안온한 일상의 공간 벨기에 브뤼셀과 전쟁의 혼돈에 휩싸인 시리아 알레포가 대비를 이룬다. 두 곳 모두 페넬로페가 돌아갈 곳이자 돌아온 곳이다. 이곳에 머물며 그곳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적이면서 은유적인 공간설정이다. 공간뿐 아니라 존재, 관계, 자아도 양가적 대비를 보인다. 전쟁이라는 심각한 생사의 고통 속에 살았던 붉은 유령 아이와 고작 라틴어 문법이나 큰 코 등으로 고민하는 딸의 존재. 그리고 내 새끼라고 불러주며 안심시켜주는 엄마와 딸의 일터를 불안하고 못마땅해하며 내내 똑같은 대화로 갑갑하게 하는 엄마와의 관계. 모두의 삶이 산산조각 나도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나와 요셉보다 마리아가 아기를 더 편안하게 안아준다고 자각하는 나.

여러 겹으로 찾을 수 있는 대비들에 다양한 감정들이 쌓인다. 좋은 책이다. 편견 없이 들여다보면 한 걸음 내딛는 사유의 길이 열릴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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