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공주와 마법 거울
나타샤 패런트 지음, 리디아 코리 그림, 김지은 옮김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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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그런 바보 같은 질문 안 한다. 훌륭한 공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도 그닥 좋은 질문인지는 모르겠다. 질문보다 답을 구하는 방법이 훌륭하다. 이 넓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눈과 귀를 열고 겪는 것이다. 겪어 아는 앎이 참 앎이다.(물론 슬쩍 겪어놓고 다 아는 양 어설프게 잘난 체를 하는 건 모르는 것보다 너무 못하다)

어린 시절 봤던 책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온통 백인 금발 연약한 공주가 백마 탄 왕자 도움을 받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만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내가 공주가 아님을 알고 슬펐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그런 잔상은 남아있는 것같다. 세심히 신경 써서 그런 자국을 지우고 새롭고 다양한 대안을 말하는 책을 찾아 읽혀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노력에 대한 답이다.

기사와 마녀가 있는 과거, 옛날 옛적이라고 하지만 현재와 유사한 도시, 사막, 바다 등 시공을 달리하는 여덟 공주는 공통적으로 용기 있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애쓴다. 그러면서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닌 문제해결 과정에서 배우고 다져지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워간다. 메시지도 좋지만 여덟 공주 각각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 밖 마법사와 마법 거울 이야기까지 골고루 흥미롭다. 중간중간 삽화도 사랑스럽다. 포장지와 내용물 다 알찬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책이다.

공주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한 건 우리 안에 다 조금씩 공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공주 대접받을 생각하는 공주 말고, 진정한 공주다움이 무얼까 고민하고 스스로 어떤 공주가 되어야 하는지 답을 구하는 당당한 아름다움의 공주가 되자. 그러면 우리가 다 마법 거울이 찾을 아홉 번째 공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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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가 옷을 입어요 사계절 그림책
피터 브라운 지음,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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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독자는 먼저 프레드의 성별을 짚고 넘어가려 할 수 있다. 프레드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긴가민가 해할 수도 있고, 이름이나 생김새로 남자아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분별하려 한다. 남자야? 여자야? 모호한 것은,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은 때로 혐오의 구실이 된다. 남자 여자 명백한 이분법은 세상을 가르고 해친다.

옷도 성별과 연결된 분별이 끼어든다. 옷은 뭘까? 벌거벗은 본성을 감싸 덮고 사회화되는 일, 세상을 알아가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해해본다. 가족은 본성을 향유하면서도 큰 세상의 입구에서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들이다. 프레드의 부모는 유연하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프레드가 들어설 수 있도록 손잡아준다.

이 책에서 내가 꼽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프레드와 엄마, 아빠가 마주하는 장면 바로 뒷장 가족의 표정이 클로즈업된 장면이다. 프레드의 한바탕 어른 놀이가 정점을 찍고 그 모습을 부모와 맞닥뜨리는 앞 장면은 지레 긴장하게 된다. 보통의 식상하나 일반적인 전개로라면 아이는 들켜 놀라며 죄지은 듯 움츠러들고 부모는 노발대발 대체 이게 다 무슨 짓이냐 하며 야단을 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상적이지만 당연하고 당연하게 현실이 되길 바라는 장면이 펼쳐진다. 한참 같이 그 표정을 보고 따라 하며 그 마음을 적신다. 그래, 그래, 이런 표정으로, 마음으로 보살펴 살면 되는 거지 한참 끄덕인다.

픽사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될 듯 그림톤은 발랄하다. 편안한 녹두 색감과 환한 핫핑크가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설명한다. 집안 책장이 계속 유의미한 배경이 된다. 읽는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지금보다 나은 사람으로 달라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글자만 읽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읽는 것만 못하다. 책을 읽고 생각함으로써 내 안의 품을 넓혀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독서라고 생각한다. 프레드 부모님은 처음부터 이리 훌륭했을까. 아니, 많이 읽고 그래서 품을 넓힌 사람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프레드를 나무라지 않고 포용하며 더 북돋아 함께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된 것이다.

엄마, 아빠 흉내 내보는 시기 아이를 그저 묘사한 책이 아니다. ‘선생님은 몬스터!’,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피터 브라운의 책이다. 이 작가는 위트 가득한 글과 그림 뒤에 늘 더 크고 중요한 말을 시나브로 들리게 스윽 깔아둔다. 따뜻하면서 뜨끔하게 하는 피터 브라운!

남자거나 여자거나 그냥 사람으로 프레드를 만나자. 얼마 전 한 남자배우가 여자 한복을 입고 공개석상에 서 찬사를 받았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경계가 희미해지고 서로 넘나들고 그렇게 더 많이 물들면 어떨까 이 책이랑 같이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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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끝나고 밤이 찾아옵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낸 아이가 묻습니다.
"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엄마가 하늘로 떠오르는희미한 은빛 달을 가리키며
낮이 끝나야 밤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낮이 끝나면 해는 어디로 가나요?"
아이가 묻습니다.
"낮은 끝나지 않는단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한단다."
엄마가 나직이 설명합니다.
〈바람이 멈출 때>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낮과 밤, 바람과 파도, 비와계절,
그 각각이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끝나는 것은 없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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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기를] 원하는 것보다 스스로 되어버리고자 하는 것이 더주체적인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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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된 각자의 서사는 위계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이야기, narrative)는 잘 쓰인 놀라운 문학작품이 아니라 자신에게 찾아온 어떤 상황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자기 삶에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자기 서사를 존중하고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각 개인의 고유성을 보여주기때문이지, 개개인의 뛰어난 예술성을 드러내는 지표라서가 아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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