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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눈 ㅣ Dear 그림책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최혜진 옮김 / 사계절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럴싸한데 모르겠는... 내게 요안나 콘세이요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같다.
‘잃어버린 영혼’도 만만치 않았는데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보고 또 보며, 눈으로 읽고 소리 내 읽으며, 어떻게든 알고 싶은데 쉬 해석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동봉된, 옮긴이 최혜진의 감상을 위해 묻는 편지에 기대본다.
질문 하나, ‘세네갈의 눈’을 읽고 난 뒤의 감상으로 하나의 형용사를 고른다면 어떤 형용사로 이 책을 표현하시겠어요?
아름다운, 쓸쓸한, 스산한, 아련한, 서글픈... 그런 형용사들이 떠오른다. 이 중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쓸쓸한. 일곱 살 어머니의 노래를 들은, 지금도 듣고 있는 아이의 마음도, 그 시절 기억 속 어머니도 쓸쓸하다. 국어사전에서 “쓸쓸하다: 외롭고 적적하다.”로 확인된다. 내가 곁에 있는데 외로운 엄마가 불안하고 어찌할 수 없어 또 불안하다. 엄마는 내가 있어도 외롭고 적적하여 쓸쓸하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렇게밖에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다.
세 번째 질문, 이 작품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녀의 목소리로 쓰였습니다. 책 속 화자는 ‘팔월에 내리는 눈’의 이미지로 엄마의 기억을 풀어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는 몇 월의 느낌에 가까운 분인가요?
우리 엄마는... 내게 절대적 사랑을 주시는 전형적인, 헌신적인 엄마다. 나의 어머니... 몇 월의 느낌일까? 사월의 벚꽃.. 봄에 태어난 어머니는 봄꽃을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그러나 막 화사하고 아름답고 그렇지는 않으시다. 고생 많고 눌린 삶에 어울리는 달이 없다. 이월? 짧다.. 춥다.. 그래도 봄을 기다린다.. 우리 엄마한테 이월밖에 줄 수 없어 안타깝고 죄송하다.
마지막 질문, 책 속에서 ‘눈’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자유롭게 자기만의 의미를 덧대어 본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싶나요?
눈.. 팔월의 눈, 헛된 희망, 환상,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다른 것을 향한 기대, 꿈, 벗어나고 싶은 욕망, 현재의 정지, 일탈, 해방... 처음에는 그렇게 다가왔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 추억, 화양연화, 수용, 포용, 받아들임 등 다른 빛깔로 비친다.
자꾸 읽으니 쓸쓸함에 매몰되지 않은, 슬프지 않은 용감한 엄마가 보인다. 노래를 부르고 울고 있는 엄마가 너무 명징해 그 뒤의 글들이 흘려졌나 보다. 다시 보니 그제야 보인다. 엄마는, 사람은 그런 존재다. 강인하기만, 여리기만 할 수 없는 존재다. 엄마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가 엄마의 다일 수도 없다. 끝 장면 파랑새가, 노래를 부르고 울던 엄마가 바라보던 그 방향으로 향해 있다. 엄마는 체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내내 간직했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섣불리 안다고 단정하면 안되는 사람, 엄마다. 무한히 내 안에 울리는 엄마의 노래, 울음을 계속 들을 것이다.
그리고 미뤄둔 두 번째 질문, 열대 지방인 ‘세네갈’에 ‘눈’이 내린다는 표현처럼 이 책에는 얼핏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가 나란히 놓여 자주 등장합니다. 단어-단어의 조합뿐 아니라 단어-그림, 그림-그림의 조합도 찬찬히 눈여겨보세요.
게으른 독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정답을 못 맞출까봐, 엉뚱한 답을 말해 우스워질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만 외치고 싶다. “모르겠어요. 답지를 보여주세요!” 그러나 그런 해답지가 있을 리 없다. 느린 독자는 한 번에 찾을 수 없어 오래오래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같이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각자의 엄마를 소환하며 각자의 그림책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