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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호 ㅣ Dear 그림책
권윤덕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평점 :
‘꽃할머니’ 마지막 장면이 유독 긴 잔상으로 남았다. 베트남과 이라크 여성이 돌아서 물끄러미 이쪽을 보는 모습은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또 바라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전쟁의 폐해를 각인시키며 지속적인 관심과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우리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세계 모든 피해자와의 연대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피해자로 일본에 사과받아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해자로 베트남에 용서를 구해야 할 역사가 있음을 환기해 주었다. 누군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 아니냐고, 아이들도 보는 그림책에 이런 역사까지 담는 것이 옳은 일이냐며 화내고 다그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벼랑 끝에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도 스스로 벼랑에 서고 같이 서는 사람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 심달연 할머니, 권윤덕 작가, 그리고 나, 우리 아이들 모두의 역사이다. 마땅히 돌아보고 각성하고 반성해야 할 역사이다. 아이들에게 전쟁의 위험, 고통, 절실한 평화를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악랄한 일본의 만행만 들추며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듯 우리 아이들이 가질 부끄러움과 혼돈을 지레 염려해 쉬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 큰 그림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 세계 평화의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써 알려주어야 한다. ‘꽃할머니’를 출간해 일본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라고 충격받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른들이 가리고 숨기지만, 알아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일본 아이들이 아프지만 꼭 알아야 하듯이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앞서 제주 4‧3을 다룬 ‘나무도장’, 5‧18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 ‘씩스틴’보다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게 계속 고민하는 작가님의 노고가 크게 다가온다. 권윤덕 작가님은 고맙고 고마운 작가님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이나 만만찮기에 쉬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러한 작업을 계속 꿋꿋이 해나가고 계신다. 아프고 불편한 역사 그림책을 만드는 일 같지만 실은 궁극적으로 다 평화를 키워내는 씨앗을 심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내 응원하고 아이들에게 읽히는 일밖에 없다. 이것도 작가님께 받은 씨앗을 내 땅에 심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작가님 다음 책은 잠시 숨고르기로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와 같은 책이어도 좋겠다. 우리 현대사 아픈 역사가 많아 숙제처럼 짐지워드리고 있는 것같아 죄송스럽다. 역량이 되는 다른 작가님들이 함께 해나갈 수 있길 소원해본다.